영화가 나쁘지 않은데 말이죠
<휴민트>는 왜 잘 안됐을까?
이제야 휴민트를 보고 왔다. 거의 내리는 중인 것 같던데 그래도 내가 박 사장님께 꼭 극장가서 보겠다고 약속을 했기 때문에 부랴부랴 다녀왔다. 결론만 말하면 나는 생각보다 괜찮았다. 내가 쫄보가 아니었으면 더 재밌게 즐겼을 만한 영화였다. 그런데 관객들이 잘 찾지 않은 이유도 잘 알 것 같았다. 크게 흠잡을 것은 없는데 ‘멋진 액션’, ‘박정민 멜로’ 말고는 크게 입소문을 탈 만한 쎈 포인트들이 잘 안보인다.
북한을 다루는 스토리가 식상한 건가 생각해봤는데, 그렇게 보기에 나는 얼마 전에 2D 애니메이션 <광장>도 재미있게 보고 와서 그런 건 아닌 듯하다. 근데 영화를 보며 북한 사투리, 인신매매, 비리 간부 등등 이런 소재들을 마주하는 순간, ‘옛날 스타일이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충분히 소재로 갖다 쓸 수 있는 것들인데 사람들이 이제 저런 소재들을 좀 뻔하다고 먼저 판단해버리는 느낌이 들었다.
류승완은 잘하는 걸 했는데 이상하게 안 멋있다. 조인성이 긴 팔과 다리로 말아주는 액션도, 박정민과 함께 시원하게 갈겨주는 총기 난사쇼도 즐길 수 있다. 류승완 감독이니까 만들어낼 수 있는 장면들이 확실히 있었고, 로케 촬영으로 그림도 근사하다. 근데 뭔가 ‘나 액션 잘하지~’하는 느낌. 맞아. 잘해요. 잘해. 근데 이상하게 지루했다. <밀수> 액션신에서는 그렇게 북치고 장구치고 잘만 하더니 희한한 일이다.
박정민도 잘했는데 조인성을 다시 봤다. 구)인성군자 출신이긴 하지만 솔직히 오래 못갈 줄 알았다. 피지컬도 그렇고 연기도 뭔가 빠짝 느는 느낌이 아니라서. 근데 너무 근사한 40대 남자 배우가 되어있다. 정우성이 헛짓거리 하기 전에 했던 좋은 역할들을 조인성이 대신 해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가 아니었으면 휴민트는 더 애매하고 그저그런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부족한 영화의 당위성을 만들어보려고 애쓴 흔적이 보였다.
<왕과 사는 남자>에 이어 <휴민트>가 개봉하는 걸 보고 ‘에이그, 왕사남 손익분기나 넘어라~’ 했는데 세상일은 알 수가 없다. 엄청 혹평 받을 만한 것도 없고, 때깔도 좋은데 이번에는 우주의 기운이 장항준 감독의 손을 들어준 것뿐. 류승완 감독은 그동안 흥행의 맛을 많이 봤으니까 뭐 또 다음 작품 잘 하면 되지 않겠나. 아예 <다찌마와리>나 <아라한 장풍대작전>처럼 초심으로 돌아가보는 건 어떨지? (내가 좋아함 ㅋㅋ)
260309 미솔랭가이드 : [미솔랭 야매평론] <휴민트>는 왜 잘 안됐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