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마라톤 후기] 드디어 찾았다 나의 중년 도파민

고양하프마라톤 10km 참가 후기

by 미솔랭가이드
미솔랭 게시물 (15).png 아니 근데 다들 왜 이렇게 잘 달리는 거예요?


드디어 찾았다 나의 중년 도파민


혼자 요란을 떨던 고양마라톤을 무사히 마쳤다. 이렇게 말하니까 막 하프 정도 뛰는 것 같은데, 귀여운 10km 코스였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쫄리고 비장해질 수밖에 없었다. 일단 연습으로라도 10km를 뛰어본 적이 없었고, 생전 아침에 뛰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침 8시에 레이스 시작이었는데, 전날 숙소를 잡아서 대회에 나간 게 정말 신의 한 수였다.


같이 뛰는 친구는 충분히 뛸 수 있다고 했는데, 나는 사실 마음 속으로 ‘안되면 그냥 중간에 포기해야지’ 하고 달렸다. 하지만 이 추운 날씨에 반팔 차림의 사람들과 떠오르는 아침해를 보니 내 안의 도파민이 팡팡 터져나오는 느낌이었다. 대단한 도구를 사용하는 것도 아니고, 엄청난 스킬이 필요한 것도 아닌, 그저 달리는 것인데 이 많은 사람들이 이 아침에 들뜬 표정으로 나와있다니. 그 에너지만으로도 충분했다.


동생이 ‘1시간 동안 무슨 생각하면서 뜀?’ 하고 묻는데 나의 대답은 ‘아무 생각 안하려고 뜀’이었다. 달리기의 장점은 정말 아무 생각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몸을 너무 강력하게 조지느라 그런 것인지 달리기 자체의 순기능인지는 모르겠지만 ‘급수대의 물을 마실까 말까’ 말고는 가장 잡념이 없는 1시간이 아니었을까. 기록은 1시간 6분 8초다. 처음 혼자 제대로 뛰는 것치고는 아주 선방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페이스가 들쭉날쭉하지 않고 끝까지 아주 고르게 갔다는 점을 스스로 칭찬해주고 싶다. 중간중간 ‘아이고 죽겠다’ 싶은 순간들도 있었지만 그동안 다져놓은 체력이 꾸역꾸역 나를 끌고간 것이 아닌가 한다. 어제는 달리고 난 직후라 다리도 아프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는데, 하루가 지난 오늘의 기분이 남다르다. 내가 심어놓은 근심과 걱정을, 내딛은 뜀박질 하나하나로 꾹꾹 밟아놓고 온 기분이라 너무 상쾌하다.


요즘 개나 소나 러닝을 한다고 하지만, 기꺼이 개나 소가 되겠다 결심하고 러닝을 시작한 건 아주 잘한 일이었다. 달리는 것 자체로도 좋았지만, 이렇게 스스로에게 이벤트를 열어줄 수도 있는 것이 즐거웠다. 대회를 앞두고 마치 소풍을 앞둔 것처럼 긴장되고 설레기도 했다. 무언가 좋아지는 것이, 좋은 게 많은 것이 인생에는 무조건 좋은 일이다. 10km를 1시간 안에 들어오는 것을 목표로 또 달려보겠다!


미솔랭 게시물 (16).png 다음엔 1시간 안에 들어온다...

260310 미솔랭가이드 : [고양마라톤 후기] 드디어 찾았다 나의 중년 도파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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