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쳐라
상사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
도망쳐라. 인간은 모두 외롭고 타인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직장 상사가 굳이 그걸 당신에게 티 낸다면 일단 적당한 구실을 붙여 피하는 것을 추천한다. 물론 맞춰주고 싶다면 그것 또한 좋은 일이다. 그 상사가 누군지는 몰라도 복받은 사람이다. 평소에 동료들에게 잘했거나, 흐린 눈을 하고 맞춰줄만한 모종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엮이면 피곤하니 혼자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둬라.
꼭 직급이나 직책에 국한된 것은 아니지만 조직 안에서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구분해야 하는 위치가 되었을 때, 외로움이 찾아온다. 예전 같았으면 주절주절 아무말을 떠들었을 텐데 ‘내가 지금 이 얘기를 해도 되나?’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면 당신도 이제 짬이 좀 찼다는 거다. 그리고 그런 고민이 될 때는 무조건 안하는 게 맞다. 외로움을 달래주는 부사수 또는 동료가 있더라도 입을 다물어야 한다. 그건 내 몫이니까.
너도 늙고, 나도 늙고, 예전에 팀원이었던 친구들이 이제 짬이 차서 종종 고민을 털어놓는다. 이제 그들도 ‘장’을 하나씩 달기 시작하며 언니는 그때 어떻게 했냐며 물어오는 것이다. 사실 나는 좀 극단적인 케이스였다. 나도 애들이랑 회사 뒷담화 하고 떠들고 싶고 놀고 싶은데 이 뚫린 입으로 실수를 하게 될까봐 고립을 자처한 케이스였다. 누구랑만 친하다는 소리 들을까봐 밥도 같이 잘 안먹고 혼자 먹었다.
어떤 친구들은 내가 본인들을 싫어하는 줄 알았다고 하고, 어떤 친구들은 우리 팀장님은 혼밥 잘하네 하고 넘어가기도 하고, 오히려 당시에는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몰랐는데 시간이 많이 지나 하나 둘 들려오는 얘기들이 재미있다. 여대에서 강하게 길러진 덕분에 혼밥은 사실 타격감이 없었고, 혼자 뭔가 하는 것에 대한 큰 거부감은 없어서 그래도 그 외로움의 시기를 아주 힘들게 보내진 않았던 것 같다.
혼자 일하는 지금도 외로움은 내가 잘 달래야 하는 감정이다. 예전에는 외로워하는 감정도 들키고 싶지 않았는데 이제는 나도 모르게 줄줄 새지만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런 자리가 주는 외로움을 잘 감당했을 때, 나도 한 인간으로서 잘 성숙하는 것 같다. 부족했던 나를 모른척 잘 따라와주었던 그들에게 다시 한 번 깊은 감사와 응원을 보낸다. 물론 나보다 훨씬 더 잘해낼 것이다.
260312 미솔랭가이드 : [미솔랭 떠들랭] 상사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