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솔랭 떠들랭] 더 깊이 빠져 죽어도 되니까

오 암 드라우우우넹~~~

by 미솔랭가이드
스크린샷 2026-03-16 오후 11.33.25.png 조승연 상병, 군복이 퍼컬이었을 줄이야

더 깊이 빠져 죽어도 되니까


나를 중학교 때부터 봐온 절친에게 물었다. “나 어릴 때부터 원래 영화를 이렇게 좋아했니?”, “그 정도는 아니었을걸?”에 이어지는 그녀의 대답이 대단했다. “너는 망해가는 것들을 사랑하지” 그리고 책을 만드는 프로젝트에 내 모든 걸 갈아넣는 나를 보며 또 다른 친구들은 말한다. “어쩜 저렇게 귀신 같이 돈 안되는 것만 좋아할까…” 저 안타까움과 탄식이 섞인 말줄임표도 그대로 옮긴 것이다.


무언가를 엄청 따지고 셈을 하는 편은 아니지만 고민이 많은 것치고 나는 늘 엉뚱한 선택을 한다. 누군가의 눈에는 여러 선택지 중에 제일 고된 것을 고르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나도 뭐 일부러 그런 걸 택하는 건 아니다. 고생은 불 보듯 뻔한데 그래도 저걸 해내고 나면 확실히 얻는 게 있을 것 같은 것에 자꾸 홀린 듯이 내 발로 걸어가는 것이다. 내 등에 마른 나뭇가지가 한가득 있는 줄도 모르고 불구덩이로 걸어들어간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것들은 이상하게 뭔가 좀 수월한 게 없다. 좀 수월한 것에는 매력을 못느끼는 변태적인 성향이 있나? 손이 많이 가고, 시간도 많이 걸리고, 깊이 알아야 하고 뭐 그런 것들이 끌린다. 대단한 취향을 가진 것도 아니고, 어려운 것들을 다 이해할 수도 없는데 무언가에 공을 들이는 그 과정과 그것을 좋아하는 나 자신에게 좀 취하는 것 같다. 미처 떨치지 못한 비대한 자아가 몸에 새겨진 것이다.


하지만 중년이라면 이런 나도 받아들여야 한다. 아니, 받아들이게 된다. 나랑도 싸울 에너지가 없기 때문이다. 의외로 편하다. 그리고 이제 내가 되는 것과 안되는 것이 조금 구분되기도 한다. 그게 좋다. 안되는 것에 연연하지 않는다. 이 역시도 연연할 에너지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나도 요즘은 슬슬 내 삶의 노선(?)을 하나 둘씩 정하게 되는 것 같다. 선택이든 타협이든 포기든, 정리가 좀 된다.


장항준 감독이 했던 말이기도 한데, 어차피 망할 거 좋아하는 거 하다가 망할 작정이다. 더 깊이 빠져 죽어도 되니까, 되는 걸로 밥벌이도 하고, 좋아하는 걸 더 많이 사랑하고, 안되는 거에 스트레스 안받고 그렇게 살아야지 하는 마음이 점점 더 커진다. 어릴 때 막연히 기대했던 속세의 기준에서 벗어난지는 이미 한참 되었다. 이미 여기저기 고장이 나긴 했지만 그래도 앞으로 가긴 가는 에잇톤 트럭 아닌가.


+ 좀 놀라운 것은, 불구덩이에 들어간 직후에는 ‘아, 나새끼가 또…’라는 생각이 들지만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 그때를 돌아보면 나는 늘 필요한 선택을, 그때 할 수 있는 최선의 했다. 그 점이 늘 신기하다.


*사진 출처 - KBS 레전드 케이팝 유튜브 채널



미솔랭가이드 260317 : [미솔랭 떠들랭] 더 깊이 빠져 죽어도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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