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복을 위한 일상의 전략
3-1. 멈춤을 두려워했던 과거
‘쉬면 안 된다’는 강박이 있었다.
원치 않았던 이직의 트라우마인 것이다.
교수라는 타이틀을 얻고 나서도 마찬가지였다.
기회를 잃을까 봐, 뒤처질까 봐, 나 혼자 멈추면 모두 앞서갈까 봐 불안했다.
매년 번아웃이 연례행사처럼 찾아왔지만, 쉬는 법을 몰랐다.
상담에서도 가장 많이 반복한 이야기는 이 불안이었다.
‘멈추면 발밑이 꺼져버릴 것 같다.’
누군가에게 내 자리를 빼앗기기라도 하듯, 일상을 잠시 멈추는 일조차 용납되지 않았다.
그 두려움 안에서 나는 살아남기 위해 계속 달렸다. 멈출 줄 모르는 자전거처럼
일이 쌓이면 체력이 감당하지 못했고, 감정은 점점 메말랐다.
그런데 어느 순간, 더 이상 그렇게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우울증이 다시 찾아왔고, 그때 비로소 나 자신에게 말할 수 있었다.
“쉬어야겠다.”
그 말은 내가 나에게 건넨 첫 다정한 문장이었다.
3-2. 쉼은 사치가 아니었다
골든위크를 포함해 겨우 일주일이었다.
하지만 그 일주일은 내게 아주 큰 변화였다.
쉬겠다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낸 것도,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것도 처음이었다.
처음엔 세상이 무너질 줄 알았는데, 의외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나를 더 살게 했다.
주변 사람들은 무심하게 말했다.
“응 쉬면 되지, 왜?”
그 무심한 말이 의외로 나를 가볍게 했다.
거창한 계획 없이 쉬는 것도 가능하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다.
그 1년 후 자궁근종 수술로 6주간의 휴식을 가졌다. 연차를 모아 만든 시간.
네가 돌오기를 기다렸다고 네 오피스에 불이 켜지기를 기다렸다고 말해주는 옆방 교수님,
한동안 안보이던데 만나서 반갑다고 말해주는 동료,
네가 없어서 보고 싶었다는 지인들,…
내 자리는 없어지지 않았었다.
나는 먹고, 자고, 걷고, 나를 돌보는 루틴을 하나하나 만들었다.
몸이 회복되면서 마음도 차분해졌고, 쉬는 시간이 오히려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친한 여자 교수님이 해준 말이 있다.
“힘들면, 저공비행해. 멈추면 다시 날기 힘들어.
힘을 빼고 낮게 비행하면서 가.
그러다 에너지 차면 다시 고공비행하면 되지.”
그 말이 나를 오래 지탱해 주었다.
쉼은 사치가 아니었다.
생존의 방식이었다.
3-3.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에 피어나는 나다움
나는 이제 나만의 방식으로 쉰다.
일주일에 하루쯤은 누구와도 연락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나를 충전하는 날로 둔다.
좋아하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거나, 공원에서 천천히 걷거나, 익숙한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신다.
그렇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가 나를 다시 살아 숨 쉬게 한다.
수술 후에는 다짐했다.
하루에 6시간은 나를 돌보는 시간으로 쓰자.
잘 먹이고, 운동시키고, 쉬게 하고, 잘 재우려는 준비.
그 기본이 지켜질 때 비로소 나는 온전한 컨디션으로 일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건 절제나 통제가 아니라 회복의 루틴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나는 여전히 의미 있는 시간을 살고 있다.
‘생산성’이라는 말에 쫓기지 않고도, 나는 존재하고 있고, 나를 잘 살아내고 있다.
쉼은 내게 ‘나다움’을 회복하는 시간이다.
나답게 살기 위해서,
나는 오늘도 천천히 쉬어간다.
나는 쉬는 법을 배웠다.
그것은 내가 살아내는 또 하나의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