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과 내면의 성장 이야기
선택은 그 자체로는 색이 없다.
그 위에 흘린 땀과 눈물, 웃음과 시간들이 색이 된다.
4-1.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던 선택의 지도
20대의 선택은 비교적 쉬웠다.
“이렇게 하면 빨리 간다”, “이렇게 해야 성공한다”
그런 공식과 정보들이 넘쳐났다.
하지만 박사과정을 마치고 나서부터,
삶은 갑자기 매뉴얼 없는 세계가 되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얼 기준 삼아야 하는지.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20대는 100미터 단거리 같았다.
얼마나 빠르게, 얼마나 정확하게 들어오느냐가 관건이었다.
30대는 예고 없이 장애물 경주로 바뀌었다.
연습한 적도 없는 높이뛰기와 허들 넘기를 동시에 해내야 했다.
40대에 들어서자, 나는 넓은 광장에 던져졌다.
방향도, 사인도 없다.
그런데 누구는 잘 뛰고 있다고 방송이 나오고,
누구는 이미 다음 코스로 넘어갔다.
그 속에서 우리는 계속 ‘선택’을 해야 한다.
나는 그 속에서 배웠다.
아무도 기준을 제시해주지 않으면,
내가 나만의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누구도 답을 주지 않으면,
내가 내 삶의 정답을 살아내야 한다는 것을.
4-2. 실패해도 괜찮다, 돌아올 수 있다
수능을 망치고, 지방 국립대로 진학했다.
친구들은 서울대를 갔고,
나는 창피함과 생존의 경계 위에 서 있었다.
그때부터 내 선택은 철저한 전략이었다.
주어진 리소스를 최대한 활용해
최고의 결과를 뽑아내야 했다.
장학금을 받고, 교환학생에 도전하고,
유학은 경쟁에서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였다.
도전했고, 성취했고, 살아남았다.
20대 후반, 박사과정 2년 차에 결혼했고,
박사학위를 받을 즈음에는 첫 아이가 돌을 맞았다.
그 뒤로는 경계인의 삶이었다.
아이 둘을 키우며 연구를 병행했고,
철야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둘째를 임신 중이라는 이유로 계약 해지를 통보받았다.
출산휴가 100일조차 기다릴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출산휴가를 마칠 때까지
내 자리는 비어 있었고,
내 동료들이 나 아니면 안된다고 보스를 설득해서
결국 그 자리로 다시 돌아갔다.
육아와 복귀까지의 여러가지 상황으로
나는 마음도 상하고, 꾸역꾸역 일을 했더랬다.
내가 계약서대로만 일을 하자
보스는 나를 다시 해고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남성 연구원이 곧 아빠가 될 예정이라
그의 월급을 올려야 했기 때문이다.
일본인처럼 말하지만 일본인이 아닌 나,
연구자이지만 엄마이기도 한 나.
이중의 정체성은 시스템에서 늘 밀려났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이 선택이 실패처럼 보일지라도,
그것조차 내가 껴안기로 한다면,
결국 그것도 내 삶의 일부가 된다는 것을.
4-3. 선택 이후가 나를 만든다
그렇게 나는 연구자의 커리어를 잠시 내려놓고
‘연구지원자’라는 새로운 길을 걷기 시작했다.
자의는 아니었지만,
선택한 삶이 되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나는 ‘기획’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생각하고, 설계하고, 실현시키는 일을 사랑했다.
누군가를 돕기 위한 기획에는
예상치 못한 자유로움이 있었다.
고객의 필요를 중심에 두고
그들을 위한 방향을 짜는 일.
매일이 새롭고, 도파민이 도는 날들이었다.
그즈음 이혼을 했고, 그 이후,
처음으로 오롯이 나만의 삶을 설계할 수 있었다.
더 자유롭게, 더 진심으로 일에 몰입할 수 있었다.
그때까지는 약점이라 생각했던
“한 우물을 파지 못한 경력”이
오히려 나의 강점이 되었다.
일본어도, 일 처리 방식도, 성실함도
모두 높이 평가받았다.
국적도, 성별도 중요하지 않았다.
마치 20대 때처럼
기회들이 나를 향해 열렸다.
그리고 나는,
그 모든 것을 흡수하며 성장했다.
점점 나답게,
행복하게,
빛나게 되었다.
참고로, 나를 해고했던 교수는 곧 정년퇴임을 앞두고 있고,
나는 그 학교의 정교수가 되어 같은 회의 테이블에 앉아 있다.
묘하게, 나는 이긴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살포시 웃어본다.
틀릴 수도 있었던 선택을,
내가 정답이 되게 살아냈다.
그렇게 내 선택은, 나만의 색으로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