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유연한 커리어, 아메바 같은 나

스며들고, 연결하며, 살아남아온 방식

by misroom

5-1. 실타래 같은 경로, 하나의 그림

“커리어가 참 특이하시네요.”

내 소개를 들은 사람들이 종종 하는 말이다.


처음엔 그 말이 부끄럽고 불안했다.

전공과 지금 하는 일이 너무 달랐고,

연구를 포기했다가 다시 시작한 경력은

단절로 보일까 두려웠다.


행정, 기획, 교육, 연구—

뾰족한 한 분야에 정착하지 못한 채

흘러 다닌 내 커리어는

실타래처럼 얽혀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말이 달리 들리기 시작했다.

“참 특이하시네요”가

그래서 더 입체적이시네요”로 들렸다.


예측 불가능한 퍼즐 조각들이

하나의 그림을 만든다는 걸,

나는 나의 길을 걸으며 알게 되었다.


흔들리듯 흘러왔지만,

나는 늘 나만의 기준으로 구조를 보고,

의미를 만들어내려 했다.

아메바 같은 커리어는,

일관된 ‘탐색의 태도’가 만든 궤적이었다.




5-2. 단단한 직선이 아니라, 유연한 아메바

나는 단단한 직선이 아니다.

어떤 형태에도 스며들 수 있는,

유연한 존재다.


그래서 나는 나를 ‘아메바’라고 부른다.


아메바는 형태가 없다.

필요하면 넓게 퍼지고,

필요하면 다른 것과 융합한다.

경계를 넘고, 틈을 지나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생존자다.


나는 전공의 경계를 넘었고,

언어의 장벽을 넘었고,

담론과 제도 사이의 틈을 지났다.


단단해졌다기보다는, 유연해졌다.

부러지지 않기 위해,

나는 흐르듯 살아남아야 했다.


연구를 내려놓았지만, 나는 여전히

삶을 연구하듯 살아왔다.

문제를 정의하고, 현상을 관찰하고,

원인을 분석하고, 구조를 설계하는 방식.

직함보다 중요한 건,

그 태도가 내 삶에 남았다는 것이었다.




5-3. 연결자라는 이름의 정체성

누군가는 묻는다.

“그럼 당신은 뭐예요? 교수예요? 연구자예요? 행정가예요?”


나는 하나의 타이틀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보다 더 정확한 정체성은

연결자’라는 말이다.


내가 가진 능력은

단일한 전문성이 아니라,

낯선 것들을 엮어내는 감각에 있다.


연구와 교육, 사람과 사람,

현장과 제도 사이의 틈.

그 사이에서 나는 언제나

흐름을 만들고 구조를 설계한다.


그래서 나는 경계에 선 사람들을 좋아한다.

그들은 늘 중심은 아니지만,

가장자리에 서서 전체를 바라볼 수 있다.


나는 교수이지만,

그건 나의 정체성 중 하나일 뿐이다.


나는 연구자이고, 기획자이고,

그리고 무엇보다, 연결자다.

연결자라는 나의 정체성은,

어쩌면 연구자로 살아온 태도에서 출발했는지도 모르겠다.


경계를 넘으며 쌓아온 유연한 감각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나는 오늘도 스며들고, 연결하며,

내 자리를 만들어간다.

아메바처럼,

어디에서든 나답게 살아남는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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