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아홉 싱글 생존기>
“야, 조용히 들어와! 동네 창피하다”
본가로 다시 들어가던 날 엄마는 영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 뺑덕어멈처럼 두 볼에 심술이 그득해서는 이사하는 내내 사사건건 트집이었다.
“조심히 좀 옮겨. 근데 무슨 짐이 이렇게 많니? 짐 좀 줄여오라니까! 아니, 그건 이쪽!”
아니, 그래도 하나뿐인 딸인데 같이 사는 게 그렇게 싫을 일인가 싶다가도 남들은 한창 손주 재롱 볼 나이에 다 큰 딸내미가, 사위도 없이, 그것도 혼자 다시 집으로 들어온다고 하니 한편으로 그 마음이 이해가 가기도 하지만.
큰 소리 떵떵 치며 독립했던 나였다. 결혼할 줄 알았던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상실과 절망감에 충동적으로(?) 수도권에 아파트를 샀다. 한창 부동산이 과열된 시기에 거의 꼭지에, 신용대출에 직장 대출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영혼을 잔뜩 모아 모든 것을 탈탈 털어 산 집이었지만 그게 어디냐며, 부모님이 평생에 걸쳐 산 집을 나는 혼자 샀다고 어깨 뽕이 잔뜩 들어가서는 집을 나갔다.
독립이라는 타이틀을 달았지만 사실 도저히 맨 정신으로는 집에 있기 힘들어서, 뭐라도 해야 했기에 내린 결정이었다. 결혼하겠다면 온갖 호들갑은 더 떨어놓고 막상 남자친구와 허무하게 헤어지고 나니 슬슬 부모님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나는 그때부터 집에 있는 하루하루가 가시방석이었다. 서른이 훌쩍 넘은 딸이 부모님 집에 얹혀사는 모습이 스스로도 썩 멋져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는 오지 않을 것처럼, 도망치듯 집을 나왔건만.
인간은 역시 겸손해야 한다. 갑자기 금리가 가파르게 오르면서 이자를 감당하기가 어려워졌다. 대출을 최대로 당겨서 산 집이었기에 공무원 월급으로 이자를 감당하기 무리였다. 외로움도 한 몫했다. 도대체 누가 혼자의 삶이 아름답다고 했는가. 텅 빈 냉장고와 적막한 거실, 온기라고는 하나 없는 집에서 나는 얼마 못 가 도망... 아니 잠시 휴전.... 그래, 깔끔하게 패배를 인정하자.
사실 오래전부터 혼자 사는 멋진 삶을 꿈꿔왔다. 하지만 지갑이 마음만큼 따라주지 않았고 높은 월세를 핑계로, 언제인지 기약할 수 없는 결혼을 무기로 서른이 넘도록 꾸역꾸역 부모님 집에 얹혀살았다. 물론 이런 내 마음도 편하기만 했던 건 아니다. 부모님과 사는 집이 편했던 적이 있었을까?
나는 부모님의 불행을 지켜보며 자랐다. 회사에 다니던 아빠와 주부였던 엄마가 함께 가게를 차리면서 집의 분위기 달라졌다. 두 분은 매일 같이 다투셨는데, 정말 하루라도 그냥 넘어가는 때가 없었다. 싫은 소리 못하는 아빠와 목소리 큰 엄마가 작정하고 싸울 때면 나는 말리는 것도 포기하고 방에 들어가서, 음악을 튼 채 전쟁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서로를 가장 아끼고 사랑해야 할 두 사람이 서로에게 얼마만큼 잔인할 수 있는지를 두 눈으로 보면서 내 안에는 사랑에 대한 불신과 불안, 냉소가 자라났다. 엄마와 아빠의 불행이 커질수록 내 안의 불행도 무럭무럭 자라났다.
그러던 중 결혼이 깨졌다. 이번에는 잘 될 줄 알았건만. 처음에는 이 모든 불행이 엄마 아빠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남들처럼 화목한 가정에서 자라지 못해서, 매일 서로를 할퀴고 상처주기 바쁜 집에서 자라서 이토록 불행한 인간이 되었다고. 그래서 독립의 탈을 쓰고 집에서 도망쳐 나왔다. 이대로 있다가는 그나마 남은 행복이 모두 바닥날 것만 같아서.
하지만 몇 년이 지난 후에도 나는 별만 달라진 게 없다. 나는 여전히 혼자고 불완전하며 외롭고 쓸쓸하다. 큰소리 떵떵 치던 나는 사라지고 작고 소심해졌다. 그렇게 바라던 결혼도, 더 튼튼한 인간이 된 것도 아니다. 나는 어느새 마흔이 다 됐고, 할 줄 아는 요리라고는 라면과 계란 프라이, 전공은 어지르기, 철이 들었냐고? 어림없지.
하지만 부모님은 정 반대였다. 내가 없는 사이 두 분은 조금 달라졌다. 서로가 한결 편해 보인다. 아빠는 예전보다 술을 덜 드시고, 공황장애로 고생했던 엄마도 훨씬 좋아졌다. 이제 제법 서로를 아끼고 작은 것에서부터 서로를 배려한다. 엄마는 '이제 늙어서 싸울 힘도 없다'라고 무심하게 말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지겹게 붙어살던 딸의 빈자리가 오히려 서로의 소중함을 깨닫게 했다는 걸.
부와 행운에 관한 책 <더 해빙>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주연이 부자들의 정신적 지도자, 구루(guru)인 서윤을 찾아가 부자가 되는 방법에 대해 묻는다.
“Having. 그것이 답입니다. 지금 가지고 있음을 느끼는 것. 단어 그대로예요.” 서윤은 덧붙인다. “우리가 느끼고 집중해야 할 것은 바로 이 순간이에요. Having은 지금 이 현실에서 출발해야 하요. 미래형이 아닌 현재진행형인 셈이죠.”
우리가 매 순간 느끼고 집중해야 할 것은 현재, 바로 이 순간이다. 나는 그동안 지나치게 과거에 매달려 나의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핑계로 현재를 낭비한 건 아닐까? 손에 잡히지도 않는 미래를 미리 끌고 와서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걱정한 건 아니었을까?
그러고 보니 지금의 나는 모두 부모님의 희생의 산물이다. 하루 12시간 이상 일만 하고 살아온 부모님 덕분에, 살면서 단 한 번도 먹고사는 문제를 걱정해 본 적이 없다. 지금까지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먹고 싶은 것 다 먹을 수 있었던 건, 그토록 지겹도록 싸우면서도 현실에 집중하며 가정을 지킨 부모님 덕분이었다.
두 분은 하루 종일 중노동을 하면서도 한 번도 싫은 소리를 한 적도 없다. 정신없이 바쁜 날이면 일을 돕게 할 만도 하건만, 엄마는 단 한 번도 그러지 않았다. 쟁반 나르는 일에 익숙해지면 안 된다는 게 그녀의 교육철학이었다. 두 분이 현재를 사는 동안 나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산 걸까? 하루 종일 고무장갑을 끼고 있어 퉁퉁 부운 엄마의 손을 보며, 하도 서있어서 핏줄이 다 튀어나온 아빠의 다리를 보며 말이다.
책에서 서윤은 또 이렇게 말한다. “행운은 우리의 노력에 곱셈이 되는 것이지, 덧셈이 되는 건 아니에요. 내 노력이 0이면 거기에 아무리 행운을 곱해도 결과는 0이에요. 아무것도 업을 수 없다는 말이에요. 공짜를 원하는 사람이 부자가 되는 일은 없답니다.”
나는 그동안 부모님을 위해 무슨 노력을 했을까. 아무 노력도 하지 않아서 0인 것을, 또다시 부모 탓을 하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이제는 내가 나설 차례다. 열심히 자식들을 위해 고생하신, 그토록 치열하게 싸우고도 서로를 지킨 두 분을 위해서 이제는 내가 노력할 차례다. “엄마, 이제 내가 정말 잘할게! 나한테 다 맡겨줘.” 그럼 분명 엄마는 분명 이렇게 말씀하시겠지. “시끄럽고, 시집이나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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