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아홉 싱글 생존기>
“아이고, 그만 뛰어!!”
“쉬~ 잇! 너 그러면 저기 삼촌이 이놈 한다!”
명절 연휴 카페에는 가족 단위 손님이 많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 엄마 그리고 아기. 손주의 재롱에 온 가족 입가에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특히 할머니 할아버지는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해 보인다.
옆에서 바라보던 나는 기분이 묘하다. 명절날 시집 안 간 딸이 가져야 할 부채감에 시달리며, 집에서 간신히 밥만 먹고 나왔는데 도망온 카페에는 더 큰 산이 있을 줄이야. 왁자지껄 화목한 가족들을 보며 마음속 내가 말한다.
'이런 불효녀 같으니라고. 남들은 손주를 한 명, 아니 두 명씩 안겨 드리는 동안 너는 지금껏 뭐 한 거야? 그렇다고 뭐 대단한 걸 한 것도 아니면서 ‘
사실 나도 얼마 전 고모가 되었다. 아들 노릇 충실히 한 우리 오빠 덕이다. 조카의 탄생으로 온 집안 행복지수가 +10은 상승한 것 같다. ‘아기는 원래 다 귀여운 거 아닌가’ 여겼던 나도 조카가 예뻐 죽겠다.
손주 욕심 없다던 엄마도, 무뚝뚝한 아빠도 매일 밤 둘러앉아 새언니가 보내 준 아기 사진을 보며 할아버지 할머니 놀이에 푸욱 빠지셨다. 나는 개구리처럼 벌어진 발가락이 나를 꼭 닮은 꼬맹이가 신기하면서도 묘한 죄책감에 짓눌려 급히 방으로 도망쳤다. 아아, 불효자는 웁니다.
생애주기(Life Cycle)란 개념이 있다.
사람의 생애를 취업이나 결혼, 출산과 육아 등의 특정 단계를 기준으로 구분한 것이다. 인간은 보통 20, 30대에 취업과 결혼, 출산의 단계에 있다고 하는데 나는 왜 서른아홉 먹도록 취업 다음 단계에는 근처에도 못 간 건지 모르겠다. 지금의 내 모습이 과거의 내가 내린 선택의 총합이라는 걸 알면서도 오히려 나이가 들 수록 확신이 줄어든다. 과연 이게 맞는 걸까?
지금의 내가 1인분의 몫을 해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사회가, 타인이 바라는 역할 놀이는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건만 그렇다고 진정한 주인공의 삶을 살고 있는 건지. 누군가는 아내 역할도 하고 엄마 역할도 한다는데 나는 과연 떡볶이 1인분이나 다 먹을 자격이 되는 걸까?
이 와중에 친구는 마흔 전 난자를 얼릴 거라 선언하고 지인은 셋째를 낳으려고 시험관 시술 중이란다. 나는 당장 오늘 저녁에 뭘 먹을지도 모르겠는데.
아직 덜 힘들어서 그런가 보다. 시간이 많으니 생각이 많은 거지. 아기 키우느라 진이 쭉 빠지던가 연애라도 정신이 팔려있어야 하는데 아마 나는 너무 한가한가 보다. 허허.
초능력자들의 서사를 그린 시리즈 <무빙>에서 기운이 빠진 주원과 아내의 대화다.
“일이 힘들어?”
“힘들지 않아서 힘들어. 세상에서 아무 쓸모가 없어진 기분이야”
....
잠시 뒤 아내가 정색하면 대답한다.
“(무슨 말씀!) 넌 나의 쓸모야!”
근데 뭐 쓸모가 뭐 별 건가, 아내로서의 쓸모가 없다면 애인으로 쓸모 있으면 되고, 엄마로 쓸모가 없으면 이모 역할을 잘하면 된다. 나는 나 자신의 쓸모고 엄마 아빠에게는 빨리 치워버려야 딸내미로서의 쓸모고 오빠에겐 혀를 끌끌 찰 정도로 걱정스러운 여동생으로서 쓸모인 것을. 직장에서는 의외로 일 잘해서 한 쓸모 하고, 친구에게는 어느 때나 나올 수 있는 술친구로 꽤 쓸모가 있다.
이뿐이랴,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요정으로, 월급 받는 족족 해외여행에 쓰니까 원활한 달러 유통에도, 자주 가는 떡볶이 집 사장님에게는 단골로써, 손세차할 때는 카센터 사장님께 아주 쓸모가 있는 것이다. 헤어진 남자 친구에게는 술안주 정도의 추억으로, 앞으로 만날 연인에게는 밝은 미래로의 쓸모가 있을지니!
그러니 청승 떨지 말아야겠다. 아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어서 빨리 퇴근해서 오늘은 노가리집 사장님의 쓸모가 되어야겠다. 언제가 이인분, 삼인분 하겠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