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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운 May 11. 2023

전 남친이 10살 어린 여자와 결혼한대

<서른아홉 싱글 생존기> 




세상에, 이 인간이 결혼을 한다니.  


 SNS 활성화 창에서 그의 사진을 본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세상에, 이 인간이 결혼을 한다고? 사진에는 멀끔하게 차려입은 그, 그러니까 전 남자 친구 놈이 환하게 웃고 있다. 어머어머, 저 가식적인 표정 봐. 평소에는 잘 웃지도 않으면서. 그래도 저렇게 차려입으니 그럴듯하다. 근데 가만, 신부로 보이는 이 여자는... 나보다 훨씬 어리고 예쁘다.


그는 외모, 직업, 능력 다른 건 모두 훌륭했지만 성격만큼은 너무 달라서 사사건건 부딪혔다. 내가 A라고 하면 B라고 하고, 뭐만 이야기하면 내가 어려서 뭘 모르는 거라고, 공감능력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볼 수가 없고 위로라도 좀 받아볼까 징징대면 네가 군대를 안 갔다 와서 그렇다고 했던 인간이다. 


회사 욕을 할 때면 늘 내 잘못을 먼저 짚어냈고, 바쁘다는 핑계로 연락하는 게 쉽지 않았으며 데이트할 때조차 나 말고 주로 책을 쳐다보던 그였건만. 시간이 지나고 둘 사이에 날씨 말고는 할 말이 사라졌을 때 우리 사이는 끝이 났다. 그런데 그런 남자를 저렇게 어리고 예쁜 어린 여자가 데려간다. 물어보니 10살이나 어리단다. 세상에. ‘도대체 왜?, 아니 왜?’ 


그런데 굳이 지금에 와서 그와 좋았던 순간들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생각해 보니 그를 통해 많이 배웠다. 그는 사회 초년생이었던 나에게 온갖 고급문화를 경험하게 해 주고 맛있는 것도 많이 사주고, 좋은 곳도 많이 데려갔다. 비록 생색은 엄청 냈지만 그로 인해 많은 것들을 얻었으며 열등감 덕분에 하루라도 빨리 능력을 키워야겠다 다짐도 했다. 나도 잘한 건 없을 거다. 나이 차 많이 나는 오빠에게 절대 지지 않고 아득바득 우기고 매번 부딪힐 때마다 끝까지 지지 않았으니 말이다.


질투가 극에 달하다니 타인을 향한 생각이 불법 유턴을 해 나에게로 되돌아온다. 되돌이켜 보니 그가 나에게 했듯 나에게도 학을 떼며 떠나갔던 연인들이 있었다. 뭐든 내 멋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던 성질머리를 받아주다 못해 도망갔던 A, 사사 건건 100분 토론을 벌이던 내게 백기를 들었던 B, 꼬이고 뒤틀렸던 내 말투에 '꼭 그렇게 말해야 시원하냐'라고 말하고 이별을 고했던 C. 




문득 지인과 나눈 대화가 떠오른다. 


"내 주위 사람들은 나랑 참 잘 맞아"
"음... 누군가 너에게 일방적으로 맞춰주고 있는 것일 수도 있어"  


예상치 못한 그의 답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어쩌면 상대를 배려하지 못한 건 그가 아니라 나였을지도. 그의 말에 귀를 닫으려고 한 것도, 매번 아저씨 같다고 놀리며 그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은 것도, 그가 나에게 보여준 인내심에 눈을 감은 것도 모두 나다. 


그렇게 그를 나를 떠났고 그녀는 그를 발견했다. 내가 그에게 바랐던 것이 배려심이었다면 그걸 먼저 보여준 건 일찍이 철든 그녀였는지도 모르겠다.  상대에게 무엇을 바랐다면 내가 먼저 주는 건 어땠을까 아쉬워지는 밤이다. 


세상에 완벽한 커플은 없다. 서로의 뾰족함이 돌고 돌아 둥글어지는 것이 사랑인 것을. 상대에게 불만족이 커질 땐 나를 먼저 돌아볼 일이다. 귀한 줄 모르고 바닥에 버린 구슬이 누군가에게 진주였다는 걸 나의 속 쓰림이 증명하고 있으니 말이다. 



**배경이미지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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