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에서 만난 진상 손님
‘쨍그랑…!’
“악!! 뭐예요 정말??!”
“어머!! 죄송합니다, 안 다치셨어요?”
잔이 깨지는 소리와 동시에 내 심장도 덩달아 철렁 내려앉았다. 일부러 깬 게 분명했다. 퇴근 후 부모님 가게를 도와드리고 있을 때다. 들어왔을 때부터 얼굴에 짜증이 가득했던 그 손님은 무슨 일로 서빙을 하던 나에게 유난히 시비를 걸고 있었다. 연인으로 보이는 일행과 싸운 게 아닐까 싶었지만, 결국 그 화풀이 대상은 내가 되었다. '똥은 피하는 게 상책이다…' 가능하면 자리를 피해보려 했지만 추가로 주문한 고기를 서빙하는 사이 그녀가 팔꿈치로 잔을 건드려 그만 와장창 깨지고 말았다.
“아이고, 손님 괜찮으세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 사이 어느새 엄마가 달려오셨다. 엄마는 능숙하게 나와 손님 사이에 쏙 들어오더니, 심기가 잔뜩 불편해 보이는 그녀를 침착하게 달랬다. 결국 고기 값은 받지 않고, 두 사람을 조용히 돌려보냈다.
“아니, 뭐 저런 인간이 다 있지?!”
“저런 사람은 그냥 빨리 보내면 돼. 안 다쳤지? 오늘은 그만 들어가. 고생했다.”
별 것도 아닌데 눈물이 쏟아질 뻔했다. 마음이 복잡했다.
'엄마는 어떻게 이런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해내는 걸까?'
어렸을 때부터 엄마는 원더우먼이었다. 그녀는 모르는 게 없었고 못하는 게 없었다. 살아가면서 맞닥뜨리는 크고 작은 일들을 그녀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해결했다.
“엄마, 이 얼룩 어떻게 지워?” “엄마, 보일러가 갑자기 안 되는데 어떻게 해야 해요?” “엄마, 미역국에 뭐부터 넣어야 하더라?” 소소한 살림부터 인간관계까지, 그녀는 모르는 게 없었다. 사실 인터넷을 찾아보면 금방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지만 나는 굳이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만의 포털에는 웹에는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완벽하진 않지만 더 빠르고, 정확하진 않지만 디테일이 살아있는. 그건 아마 엄마들만이 가지고 있는 삶의 정수, ‘비법’ 같은 것이다.
한 번은 엄마를 태우고 운전을 하다가 가벼운 접촉사고를 냈다. 뒤에 있던 오토바이를 미처 보지 못하고 살짝 박은 것이다. 흠집도 나지 않을 만한 경미한 사고였지만 나는 적잖게 당황했다.
“잠깐만 있어봐, 엄마가 말하고 올게”
이번에도 그녀가 나섰다. 그리고 잠시 뒤 엄마는 정말 이 모든 일을 말끔하게 처리했다. 오토바이 주인에게 돈 한 푼 주지 않고 언성 한번 높이지 않은 채로. 심플하고 깔끔하게. 상대방과 몇 번의 인사를 나눈 뒤 엄마가 차에 탔다.
“어서 가자. 늦었어”
“저렇게 갔어요? 정말? 끝?”
“흠집도 없었어. 이런 건 아줌마가 말하는 게 훨씬 빨라”
나는 그날 이후 엄마를 더 신뢰하게 되었다. 그녀만이 가지고 있는 비법은 내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것이었고 말로도 설명할 수 없으며 공식화하기는 더욱 어려운 것이었다. 그리고 함께 살고 일도 함께 하는 요즘 나는 그걸 더욱 절실히 느낀다.
가게에서 엄마는 대략 몇 시쯤 손님이 들이닥칠지 정확히 알고 있다. 손님 얼굴만 봐도 무엇을 시키고 몇 시간 정도 앉아 있을지도 가늠이 가능하다. 고기를 반쯤 먹었을 때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손님을 또 오게끔 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다. 이제는 허리가 불편한 아빠를 대신해 무거운 것도 번쩍번쩍 잘 들고 무엇보다 표정만 봐도 내 마음을 정확하게 파악한다. “너 피곤하지? 이제 그만 들어가”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그녀의 작은 가게 안에서 이루어진다.
엄마가 가게에서 보여주는 능숙함은 마치 작은 마법 같았다. 예를 들어, 엄마는 손님이 들어올 때마다 빠르게 눈빛을 교환하고 상황을 파악한 뒤, 가장 적절한 대응을 한다. "저 테이블은 얼음물로, 저쪽은 따뜻한 물로 준비해"라며 정확하게 지시하는 모습은 단순히 경험을 넘어서는 감각이 느껴진다. 나는 한창 바쁜 저녁 시간에도 엄마가 당황하지 않고 조용히 가게의 질서를 잡아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감탄하게 된다. 어떻게 보면 그녀는 가게라는 작은 무대 위에서 완벽한 연기자이자 감독인 셈이다.
이런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나는 그동안 너무나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새삼 고마워졌다. 나는 그녀를 보며 매일 배운다. 엄마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따뜻하고 안정된 에너지가 흐른다.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듯 하지만, 그 안에는 오랜 시간 일하며 쌓아온 지혜가 담겨 있다. 이런 순간들이 모며 나도 언젠가 그녀처럼 강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는 위대하다. 나이가 들며 이것을 더욱 느낀다. 그것은 하루에도 여러 번 진상을 상대해 낸 결과이며 일하면서 두 아이를 길러낸 모성애의 합작이다. 쟁반을 하도 들어 생긴 그녀의 기립근은 위대한 것이고 주방 일을 하면서 생긴 수많은 상처는 그녀의 인생을 대변하는 자랑스러운 무언가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우리 엄마다. 지금도 그 나이에 가게 테이블과 테이블 사이를 미끄러지듯 능숙하게 오가는 그녀를 볼 때마다 나는 그녀에게 자부심을 느낀다. 그녀가 매일 같이 하고 다니는, 빨간 앞치마가 슈퍼맨의 망토처럼 보이는 건 기분 탓일까.
사진: Unsplash의lauren lulu tayl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