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나는 그들에게 무어라 말할까?

by 새로운



영화 <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




내 첫 번째 남자친구는 잘생겼다.

길거리를 다닐 때면 사람들이 그를 흘끔흘끔 쳐다봤다. 나는 그런 시선이 좋았다. 그 시선은 나를 뿌듯하게 만들었다. 마음 같아선 한 명 한 명에게 가서 ‘봤어? 이런 사람이 내 남자친구야’라며 자랑하고 싶었다. 나는 그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감탄하며 그에게 쏟아지는 시선과 관심, 부러움을 즐겼다. 그 시절 나는 아름다워지고 싶었고 내 외모에 집착하듯 상대의 겉모습에 집착했다.



다음 만난 이는 헌신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나를 많이 사랑해 주었다. 그는 나를 세상에서 값비싼 보석인 듯, 깨지기 쉬운 유리인 듯 소중히 대해주었다. 나는 그를 통해 사랑받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누군가에게 기댈 수 있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알게 됐다. 나는 내가 나를 미워하는 만큼 그가 나를 사랑해 주길 바랐다. 나는 그의 사랑을 먹고 무럭무럭 자랐다.




세 번째 남자 친구는 경제적으로 풍요로웠다.

나를 그를 통해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 누리지 못하 는 것들을 누렸다. 그의 고급세단을 타고 그가 좋아하는 비싼 식당에 가서 그의 지인들을 만날 때면 마치 내가 그런 사람인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었다. 나는 그런 착각이 좋았다. 나는 이런 분위기에 흠뻑 젖어 살고 싶었다.



네 번째 사람은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그는 사회로부터, 제도로부터,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동떨어진 사람 같았다. 나는 그의 여유로움과 몽환적인 눈빛, 느린 말투를 사랑했다. 그의 피부는 서핑으로 늘 검게 그을려있었다. 나는 그의 운동으로 다져진 널따란 어깨와, 잘게 쪼개진 다부진 팔, 그리고 세상사에 달관한 듯한 태도,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는 듯한 자신감에 빠져들었다. 그와 함께 있을 때면 나도 모든 속박으로부터 벗어난 듯 자유롭고 가벼웠다.



<내가 사랑한 모든 남자들에게>



생각해 보면 나에게 사랑이란 자아실현의 한 방법이 아니었을까.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통해 나를 보고 배우고 얻고 만족했다. 사랑은 내 마음속 구멍 난 곳을 채워주고 부족한 부분을 메꿔주었다. 물론 그것은 영원하지 않았다. 내면의 홀은 헤어지면 푹 꺼지고 또 누군가를 만나면 다시 후욱 차올랐다. 사랑은 그런 것이었다. 바람 빠진 풍선에 공기를 채우고 다시 넣는 것과 같은.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내가 아니다. 연애란 마치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 같아서 끊임없이 움직이고 진화한다. 유기체는 앞으로 나아갈 뿐 후퇴하거나 퇴화하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연애란 일종의 진화였다. 그래, 나는 분명 발전했다. A를 만날 때의 나와 B를 만났을 때의 나는 달랐고, C를 만났을 때의 나는 분명 D를 만났을 때의 내가 아니었다. 그렇다. 적어도 퇴화하진 않은 것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베르베르 씨, 오늘은 뭘 쓰세요?>에서 흥미로운 전생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가 만난 영매이자 친구 모니카의 말에 따르면 ‘현재의 우리의 삶은 전생에 우리가 바라던 것들의 합’이라고 한다. 베르나르는 현재 약 112번째 생을 살고 있으며 각각의 전생이 그의 생에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미쳤다고.


나는 지난 사랑으로 인한 진화의 산물이다. 마치 그의 전생처럼 (111번 까진 아니지만) 지난 사랑의 순간들을 통해 나는 일종의 진화를 거듭한 것이다. 그들과 끊임없이 상호작용하고, 사랑을 나누며 더할 건 더 하고 뺄 건 빼면서 생존을 위해 더 나은 개체로 자체 진화한 건 아닌지.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꽤 뿌듯하다. 그렇다. 유기체는 뒤돌아보지 않는다. 유기체는 나은 상태로 진화하며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퇴화는 곧 죽음이다. 나는 오늘도 더 나은 개체로 진화하는 중이다. 그것이 지금도 내가 혼자로 존재하는 필연적인 생존의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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