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과 남자의 공통점
나는 맥시멀리스트다.
언제나 그렇듯 사야 할 이유는 많지만 사지 말아야 할 이유는 별로 없다. 나는 특히 옷을 좋아하는데, 정확히 말해서 옷 ‘사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밥벌이를 시작한 후 가장 행복했던 때는 내가 사고 싶은 옷을 실컷 살 수 있을 때였으니까. 늘 소박하고 귀여운 월급이었지만 눈치 보지 않고 사고 싶은 옷을, 주문하고, 결제하고, ‘언박싱’할 때의 그 짜릿함은 늘 새로웠다.
하지만 즐거움은 거기까지. 쌓여가는 옷이 늘어날수록, 아침마다 옷을 고르는 시간이 더 늘어났고, 사면 살수록 입을 옷은 줄어드는 ‘옷의 저주’가 분명 나에게도 찾아왔다. 이뿐만이 아니다. 언젠가는 겨울옷을 세탁소에 맡기는데 드라이클리닝비만 100만 원이 넘게 나왔다. 오 마이갓. 나는 100만 원짜리 옷을 사본 적도 없는데.
정리가 필요했다. 대대적인 옷 정리에 돌입했다. 일정한 기준을 가지고. 지난 2년간 한 번도 입지 않은 옷은 모두 처분했다. 아까운 마음이 들 때는 당근을 하거나 지인에게 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못 버리겠는 건 일부러 현관에 놔두고 며칠 후에도 버리고 싶은지 마음을 살폈다.
보관하는 옷은 4계절은 통틀어 한쪽 벽면을 넘치지 않도록 양을 정했다. 나에게는 빈 공간마다 무언가를 채워 넣는 신통방통한 재주가 있어서 금세 그 공간이 새로운 물건으로 채워지는 마법을 부린다. 그래서 생각해 낸 방법이 바로 ‘플러스 원, 마이너스 원’ 법칙. ‘하나를 사면, 하나는 버린다’는 의미다. 이렇게 하면 무언가를 살 때 버릴 게 아까워서라도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어 좋다. 물론 자기 합리화 기술이 더 늘긴 했지만.
가지고 있던 옷을 반 이상 줄이고 나니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얻게 됐다. 시간과 돈, 그리고 에너지. 무언가를 구매하는 일은 생각보다 품이 많이 든다. 단순히 티셔츠 하나만 사려고 해도 인터넷에서 아이템을 검색하고, 고르고, 후기를 읽어보고, 사이즈를 가늠하고, 그것도 모자라 배송료가 붙지 않도록 가격까지 맞추다 보면 진이 다 빠진다.
이 의미 없는 행동을 삶에서 빼고 나니 시간도, 돈도, 마음에도 여유가 생겼다. 이제 쓸데없이 무엇을 살까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어떻게 처리할지 생각하지 않아도 되니 이렇게 생긴 에너지를 다른 곳에 사용할 수 있었다. 나는 새로 생긴 시간에 운동도 하고, 책도 읽고 새로운 사람들도 만났다.
남은 에너지로 새롭게 생긴 공간을 아름답게 꾸미는데 집중했다. 혼자 이것저것 인테리어를 생각하보니 미적 감각이 늘어난 건 덤이다. 불필요한 것에 매달리지 않아도 되는 삶은 단순하고 평화롭다. 무언가에 ‘매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 자체가 마음의 공간을 주기 때문이다.
연애도 비슷했다.
처음에는 누군가가 좋아서 연애를 했다. 나중엔 입지도 않을 옷을 사듯 당장의 스트레스를 없애기 위해, 감정적 허기를 채우기 위해, 남들 다 하니까 연애를 했다. 혼자 나이 드는 삶은 무료했고, 직장 생활은 달라질 게 없었으니.
물건을 사는 일 외에 나를 즐겁게 해 줄 일은 사랑밖에 없었다. 그래서 남자를 만나고 소개팅을 하고, 나중에는 결혼을 핑계로 만남을 이어갔다. 심심하니까, 남들 다 하니까, 혼자 있으면 외로우니까, 안 하면 초라하니까 등등의 이유로 연애는 점차 습관이 됐다.
나중에는 내가 그를 좋아하는지도 모른 채 누군가를 만나고 떠나보냈다. 그 일련의 과정을 한차례 겪고 나면 진이 다 빠졌다. 다시는 연애 따윈 하지 않겠다 다짐했지만 다시금 소개팅에 나가서 웃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마다 죄책감까지 들었다.
연애에도 기준이 필요하다. 우리의 감정은 복잡 미묘해서 스스로 풀어내지 않으면 결국 뒤돌아 나를 공격한다. 스트레스받아서 옷을 살 때 그렇듯, 외로워서 누구든 만날 때가 그렇듯. 인생의 결핍과 불만을 쇼핑으로 풀어내면 안 되듯, 감정의 해소를 위해 관계를 유지하고 있진 않은지.
부정적인 감정을 처리하기 위해 연애할 때, 관계를 유지하고 있음에도 자꾸 헛헛한 마음이 들 때, 자신의 옷장을 정리하듯 관계를 다시 한번 돌아보는 건 어떨까? 내가 이 옷을 왜 사야 하는지 다시 한번 점검하듯, 이 관계가 정말 무엇을 위함인지 돌아보도록.
배경이미지 Unsplash, Jacek Dyla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