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아홉 싱글 생존기>
‘요즘 세상에 결혼은 선택이지’라고 말하는 건 대부분 결혼한 사람들이다.
결혼을 해봤으니 꼭 안 해도 된다는 것을 알았고, 이제 와 보니 그건 일종의 선택이었다는 말은 그것을 진정 겪어 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어쩌다 보니, 나도 모르게, 어라, 어라, 어, 어, 어, 엇? 하다 보니 어영부영 결혼하지 않은 ‘상태’가 되었고 정신을 차려보니 여전히 혼자일 뿐. 결혼을 안 하기로 선택한 적도, 결혼을 하겠다고 선택하지 않은 적도 없는데 말이다.
나는 올해 서른아홉 싱글이다. 곧 마흔에도 혼자인 나는 시대의 트렌드라는 토네이도에 휩쓸려, 행복한 기혼과 당당한 비혼 사이에 끼어 미혼임을 적극적으로 증명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비혼이란 개념이 생긴 이래로 미혼이라 함은 ‘결혼할 마음이 있음’을 의미하는 단어가 되어 버렸으니. 나는 그 사이에서 ‘여전히’ 혼인의 의사가 있음을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 비록 누군가 ‘늦었어 아줌마’라고 비난하거나 ‘그래 어디 한 번 잘해봐라’며 비웃을 지라도.
미혼이란 단어가 좀 올드한 느낌이 있으니 ‘싱글’이라는 단어를 쓰기 시작했고, 나이 많은 싱글을 ‘골드 미스/ 미스터’ ‘브론즈 미스/미스터’라고 부르는 괴상한 명칭까지 등장한 걸 보니 ‘결혼’이라는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참 많은 이해관계가 얽혀있나 보다. 나는 이 복잡한 관계에서 어디쯤 놓여 있는 걸까? 아마도 상위권은 아닐 테니 아, 저어기 끝자락 어디쯤인가 보다. 아, 모야 정말. 예전에는 꽤 잘 나갔는데.
요즘 들어 ‘하자’라는 단어가 자꾸 발에 차인다. 얼마 전 지인과 나눴던 대화에서 튀어나온 말 때문이다.
“소개팅 안 할래?”
“누구?”
“우리 아기 봐주시는 이모님 큰아들인데, 키도 훤칠하고 훈남이더라. 직업도 괜찮고.”
“몇 살?”
“마흔둘”
“... 언니, 그 나이까지 못 간 데는 다아 이유가 있는 거야. 한번 갔다 온 거 아니야?”
어머나, 이렇게 꼰대 같을 수가.
사람은 자신은 쉽게 평가되길 원치 않으면서 타인은 쉽게 판단해 버린다. 나이가 들수록 자신을 방어하는 측면에서 모든 것을 좀 더 보수적으로 판단하게 되는데, 아무래도 이건 좀 그렇다. 그간 해온 수많은 소개팅이, 흐지부지하게 끝나버린 썸이, 시작도 전에 끝나버린 밀당이 상당히 피곤했고, 소모적이었으며 조금은 낭비였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그래도 사람 일은 모르는 건데.
만약 누가 나를 이렇게 생각한다면 정말, 섭섭하다. 조금 더 생각해 보니 그 하자가 바로 나다. 내가 누군가를 특정한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그것은 나에게 그런 모습이 있기 때문이란다. 그렇다면 나는 아마도 나를 ‘하자 덩어리’로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내 삶에서 연애와 결혼은 절대 빼서는 안 되는 주제다. 엄마는 아빠와 그다지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는 것 같지 않았고 그래서 나에게는 결혼이 더욱 중요하게 느껴졌다. 내 삶에서 극적인 선택의 기로에 놓일 때마다 이 두 가지는 ‘스탑’ 인지 ‘고’인지, ‘예스’인지 ‘노’인지를 결정하는 기준이 되었으니까.
나는 늘 고민했다. 어떻게 하면 연애를 잘할지, 어떻게 하면 남자들에게 잘 보일 수 있을지. 학창 시절에는 점심시간 매점에서 멋진 오빠들을 보는 게 낙이었다. 대학교에서는 멋진 선배들이 많다는 소문에 스노보드 동아리에 가입했으며, 첫 직업이 남성지 기자인 것도 핫한 남자들을 실컷 볼 수 있겠다는 기대에서였다. 기자를 그만두고 교사가 된 이유도 무엇보다 '시집을 잘 갈 수 있다'는 어른들의 말 때문이었다. 이렇게 남자를 좋아하는(?) 내가, 열심히 연애한 내가 아직도 혼자라는 건, 분명 문제다. 아무 생각 없던 내 친구도 잘 갔는데, 왜 유독 나만 이런 걸까?
열정적으로 사랑했고 몇 번의 진지한 만남이 있었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늘 결혼의 문턱에서 넘어졌다. 두려워서인지, 자기 객관화가 부족해서인지, 운이 없어서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다른 사람이었다면 어떻게든 잘 넘어갔을 텐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는 거다. 맞다, 이게 바로 내가 생각하는 하자다. 열심히 달려왔음에도 아직 피니시 라인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것. 그렇게 사십 년이 다 되도록 아직도 부모님 댁에 얹혀산다는 것.
누군가 말해줬으면 좋겠다. 뭐,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열심히 했는데도 잘 안될 수도 있는 거니까. 내가 주제 파악이 잘 안 돼도, 어딘가 많이 부족한 사람이라도, 매번 허탕 치면서도 소박한 희망을 걸고 기어이 또 소개팅에 나가는 것도, '언젠가는 되겠지, 힘내' 위로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오늘부로 나는 '하자 없는 싱글'이 되기로 했다. 남들이 뭐라고 생각하든, 주변에서 뭐라고 욕하든 내가 나를 곧게 바라봐야 남도 곧게 보이는 법이니까. 서른아홉에 혼자인 게 뭐, 죄인가, 살다 보니 그럴 수도 있는 거지 뭐! 그렇게 하자 없는 싱글은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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