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아홉 싱글 생존기, INFJ의 고백>
“네? 아, 네 이거요? 아, 이거 말고 그거요? 네네. 아, 죄송합니다.”
"으아, 죄송합니다. 다시 하겠습니다!"
나의 첫 직장은 잡지사였다.
처음 간 회사에서는 주로 버티는 게 일이었다. 패션이나 뷰티 업계가 늘 그렇듯 야근도 많고 업무량 역시 사회 초년생인 나에겐 살인적이었다. 선배들은 주로 빠르게 일을 쳐내는 '일잘러' 혹은 워커홀릭인 탓에 일과 삶의 경계가 모호한 그들 속에서 나는 늘 애매하고 모호한 채로 부족한 곳을 메우려 애썼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모든 것을 최대한 많이 흡수해서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내놓는 것이었다. 물론 대부분은 실패했지만 말이다.
하루 종일 ‘죄송하다’를 반복하다 보면 나중에는 그냥 죄송한 사람이 돼버린다. 또렷한 정신으로 일의 순서나 경중을 따져 일을 순서대로 해내면 좋으련만 부족한 경험을 메꾸느라, 여기저기 눈치만 보느라 하루의 끝엔 녹초가 되고 마는 것이다. 그저 버티는 것만으로 바닥난 정신과 체력으로는 일을 잘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뿐더러 그렇게 부족함과 불가능을 오가다 보면 생각은 늘 어두운 방향으로 흐르고 만다. “나는 대체 왜 이 모양이지?!”
어린 난 사람들이 말하는 게 나인 줄 알았다. 선배가 '너는 좀 특이한 얘 같아'라고 말하면 나는 특이한 사람이 되었고 상사가 '왜 이렇게 덤벙거리니?' 물으면 나는 곧 덤벙거리는 얘가 됐다. 한 번은 친분 없는 선배가 아무렇지 않게 던진 ‘천만 원 정도 들이면 완벽해질 얼굴’이라는 말에 며칠을 거울만 들여다보기도 했다.
반면 나도 모르는 장점을 발견해 준 사람들도 많았다. 편집장님은 내가 일을 끝낼 때마다 매번 “빠르게 잘했다”라고 말해주었고 팀장님은 나조차 읽기 싫은 내 기사를 보고 ‘깔끔하고 센스 있게 썼다’고 칭찬해 주었다. 눈치 없는 나에게 “이런 신박한 막내는 처음이라 오히려 재미있다”라고 말한 선배도 있는가 하면 가끔 말도 안 되는 내 패션에 대해 “네 나름의 패션철학이 있어서 좋다”라고 말해준 선배도 있다. 한 번은 며칠 밤을 새우며 마무리한 꼭지가 있었는데 차장님의 “잘했다”는 한마디에 눈물이 왈칵 쏟아지기도 했다.
멘털이 약한 사람은 껍질이 약한 대신 부들부들하다. 외유내강의 ‘겉바속촉’이라기보다 어설픈 ‘외강내유’가 되기 쉽지만 그만큼 타인의 말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모든 것을 흡수한다.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 나는 주변의 모든 말을 빨아들였고, 그가 나를 못난 사람이라고 하면 못난 사람으로, 잘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뭐든 잘하는 사람으로 변모했다.
연애를 하면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살면서 참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사랑에 빠졌는데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나의 좋은 면을 발견해 준 사람이었다. 그는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고 호기심 넘치는 나를 언제나 신기해하며 ‘닮고 싶다’고 했다. 늘 산만하고 정신없는 태도 역시 ‘에너지가 많아서 좋다’고 해석했고 이것저것 벌려놓고 수습하지 못하는 성미도 ‘매사에 추진력이 있다’고 말해주었다.
정 반대의 사람도 있었다. 그는 늘 에너지가 많은 나에게 ‘과하다’고 핀잔을 주거나 내가 무언가 조잘대기 시작하면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어, 어, 그래서 결론이 뭔데’라고 무성의하게 답하곤 했다. 늘 지나치게 하이텐션인 나에게 ‘뭣하러 그렇게까지 사냐’며 잔소리하기 일쑤였고 내가 뭔가에 대해서 말할 땐 ‘그건 네가 아직 잘 몰라서 하는 말’이라고 하며 나를 어린애 취급했다.
그럴 때면 늘 힘이 빠지고 주눅이 들었다. 그를 만날 때면 오히려 외모에 더 신경 쓰고 입은 닫았다. 그런 극적인 경험을 하고 나니 신기했다. 누군가에겐 호기심 많고 발 빠른 내가 누군가에게 피곤하고 산만한 사람으로 비치다니.
심리학에 ‘로젠탈 효과’라는 개념이 있다. 로버트 로젠탈이 발표한 이론으로 초등학생 20%를 무작위로 뽑아 그 명단을 교사에게 주며 지능지수가 높은 학생이라고 말하자 8개월 후 명단에 오른 학생들이 다른 학생들보다 평균 점수가 높은 것을 발견했다. 교사가 학생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실제 아이의 기량이 달라진다는 의미다.
좋은 면을 봐주는 상대 앞에서 나는 무엇이든지 해낼 수 있는 사람이 되는 반면 부정적인 면을 보는 사람 앞에서는 부족한 사람이 되기 쉽다. 내면이 약하고 남의 말에 쉽게 흔들리는 나 같은 사람에게 누구와 있느냐가 더욱 중요한 건 이 때문이다. 곁에 있는 사람의 에너지를 여과 없이 모두 흡수하기 때문에 부정적인 피드백에 익숙한 사람일수록, 가만히 두면 의식의 흐름이 어둡게 흘러가는 사람일수록 주변의 평가를 조심해야 한다. 특히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 나와 긴밀한 사람이 나를 함부로 평가하지는 않는지, 그의 평가가 나를 정의하고 있지는 않은지 의도적으로 주변을 환기해야 한다.
나는 그 이후 습관적으로 단점을 지적하거나 나를 바꾸려 드는 사람을 곁에 두지 않는다. 긍정적인 기운을 빼앗아 가는 에너지 뱀파이어나 불평불만을 달고 사는 사람은 의도적으로 피한다. 시간만 나면 나의 지적하거나 평가하려는 사람, 타인을 쉽게 비난하며 나의 동의를 구하려는 사람 역시 확실하게 쳐낸다. 그의 그런 기질이 쉽게 변하지 않는 만큼 나의 예민한 성격 역시 쉽게 고쳐지지 않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가 불쾌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보다 나의 불쾌함을 먼저 걱정해야 하니까.
당신이 주변에 좋은 사람을 두었으면 좋겠다. 쉽게 사랑에 빠지는 사람일수록, 늘 애정이 고픈 사람일수록 나를 멋지게 바라보는 이를, 나를 귀하게 여기는 사람을 곁에 두길. 때로는 누굴 사랑하는가 보다 누구를 곁에 두는가가 나를 더 나은 곳으로 데려가기도 하니까. 자꾸 이상한 사람에게 마음이 갈 때마다,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사람에게 끌릴 때마다, 나의 장점을 발견해 주는 사람을 발견하길. 그가 곤궁한 내 팔자를 곧게 펴줄 귀인일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배경이미지 Unsplash, Vince Flem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