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아홉 싱글 생존기>
이 말은 언제부턴가 엄마의 주 무기가 됐다. 처음에는 여느 부모가 하는 잔소리려니 여기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하지만 어느 날부턴가 그러지 못하게 됐다. 엄마의 잔소리에 ‘노처녀’라는 워딩이 추가됐기 때문이다.
“너 그러다 진짜 노처녀 된다” “노처녀 안 되려면 제 때 제 때 남자 만나서 시집가” 하던 말이 점점 “어이구, 노처녀가 따로 없네” “누가 노처녀 아니랄까 봐”로 바뀐 것도 모자라 이제는 잔소리가 맥락도, 이유도 없이 시도 때도 없이 튀어나왔다. 한 번은 오랜만에 집에 들른 오빠와 밥을 먹는데, 엄마가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
“너는 요즘 만나는 사람 없어?”
“없지”
“얘, 노처녀잖아”
....
엄마는 나에게 화가 난 게 틀림없다. 그녀는 일부러 나에게 상처 주려고 분명 저렇게 시대에 뒤떨어지고 교양 없는 단어를 심사숙고해서 고른 게 분명하다. 다른 집 딸들은 시집만 잘 가는데 당신 딸만 이 나이 먹도록 못 가고 있으니 속이 터질만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도 할 말은 있다고.
학창 시절 엄마아빠는 자주 다투곤 했다. 그 사실이 나에게 지금껏 트라우마로 남을 만큼 그때는 집이 싫었다. 나는 특히 아빠를 미워했다. 매일 같이 마시는 술에 오빠도 나도 엄마도 모두 지칠 대로 지쳤기에, 모든 문제의 근원이 아빠인 듯했다.
지금도 마음 둘 곳 없어 남자를 찾다가도 정작 누군가 다가오면 도망가는 건 아마도 아빠로 투영되는 남자를 믿지 못하기 때문일 거다.
그래서인지 엄마는 아빠와 함께 사는 고단함을 나에게 자주 하소연하곤 했다.
‘네 아빠란 사람이 말이야...’
‘글쎄 네 아빠가 오늘 뭐라고 했는지 아니?’
‘네 아빠는 참 이해할 수가 없다...’
나는 엄마의 말을 모두 흡수했고 엄마를 힘들게 하는 아빠가 싫어졌다. 부모를 미워하는 아이는 나중에는 자신의 존재 가치까지 의심하게 된다. 어쨌든 나의 뿌리는 그들이고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에 결국 자신의 가치를 하향조정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그저 참는 게 서로에게 좋을 게 없다고 생각한 건, 내면에 깊숙이 박혀있는 상처의 맥락과 출처를 정확히 인지하면서부터다. 나는 아빠뿐만 아니라 엄마에게도 상처받고 있었다. 서로 아끼고 사랑하기에도 부족한 두 사람이 서로를 가차 없이 헐뜯는 모습을 지켜보며 내 마음도 함께 병들어 가고 있었다.
그녀의 한탄을 그저 듣고 묵인하는 것이 건강한 사랑의 방법은 아니었기에 , 무엇보다 나의 미움과 원망이 이제 아빠를 넘어 그녀에게까지 향하고 있었기에 당장이라도 이 일방적 관계를 멈추어야만 했다.
엄마가 다시 한탄을 시작했다.
“아니, 글쎄 네 아빠가 말이야...”
"엄마, 아빠에 대해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그것 때문에 남자도 못 믿겠어. 이제 아빠 흉 그만."
“아니, 내가 너 아니면 이런 이야기를 누구한테 해?”
“어쩔 수 없어. 그건 엄마의 몫이야. 그리고 노처녀란 소리도 금지! 내가 엄마한테 늙은이라고 하면 싫지? 나도 그래."
“....”
엄마는 나의 말에 놀란 듯했지만 이내 적응해 갔다.
부모는 본인의 한숨이 자식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자신의 인생이 자식에게 어떤 세상을 안겨줄지 생각해야만 한다. 그래서 아무리 힘들어도 되도록 성실하고 근면하게 하루하루를 살아 내고 버텨야 한다. 부모는 아이의 거울이기에 더욱 밝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봐야만 한다. 힘든 삶을 악착같이 이겨내고 자신을 아껴야 한다. 스스로를 사랑하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자연스럽게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때문에.
나는 엄마의 노고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또한 그녀를 진심으로 존경한다. 내 기억 속 엄마는 강하고 뭐든 열심히 하는 사람이었다. 아침 일찍 나가 밤늦도록 열심히 일하고 아무리 피곤해도 오빠와 나에게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아침밥을 차려주는 사람, 목소리 크고 강단 있고 뭐든 해내는 여장부 같은 사람. 무엇보다 잠시도 견뎌내기 힘든 아빠의 변덕과 유약함을 가장 많이 이해하려 노력하고 다독여준 사람이란 것도.
하지만 때로는 가까이에서 쏜 화살이 더 깊게 박히듯, 가까운 사람일수록 서로에게 더욱 조심하고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가족이라고 모든 것을 이해하고 받아주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니까. 상대가 누구든 그 의도가 무엇이든,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에겐 반드시 말해야 한다. 이제 그만 상처 주는 일을 그만두라고.
나 역시 그녀에게 더욱 조심하기로 다짐했다. 다만 엄마의 감정에 귀 기울이되 모두 받아주진 않는다고 다짐해 본다. 그녀를 누구보다 사랑하기에, 무엇보다 나도 노처녀로 늙어 죽긴 싫으니까(웃음).
배경이미지 Unsplash, Nadine Shaaba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