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아홉 싱글 생존기>
요즘 방송인 하하 가족이 나오는 예능을 즐겨 본다. 별과 드림, 소울, 막내 송이까지 다섯 가족이 보여주는 꽁냥꽁냥 알콩달콩 화목한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까지 다 행복해진다. 특히 막내딸 송이의 애교가 킬링포인트다. 아빠를 ‘왕자님~’이라고 부르는 딸을 바라보고 있는 아빠 하하의 눈에서는 시종일관 꿀이 뚝뚝 떨어진다.
귀염둥이 송이를 보고 있으니 갑자기 부끄러워진다. 나는 애교는커녕 늘 아빠한테 짜증내기 바빴는데. 사춘기를 기점으로 아빠와 대화조차 잘 나누지 않았는데 말이다.
“다녀왔습니다”
“... 왔냐”
퇴근하고 들어오면 부녀는 같은 공간에서 따로 있다. 안방을 슬쩍 들여다보면 비스듬히 누워 있는 아빠의 등이 보인다. 아빠는 언제부터인가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이것 좀 한번 봐줘라”
“어떤 거?”
“이거, 왜 또 라디오가 안 나와”
“... 아빠 내일 해드릴게요, 저 지금 나가야 돼요”
집을 나오는 동시에 후회가 밀려온다. 나는 도대체 왜 송이 같은 딸이 아닐까?
집마다 ‘아빠의 구멍’이 하나씩 있다. ‘아빠가 그때 그 돈을 날리지만 않았어도...’ ‘아빠가 그 집을 팔지만 않았어도...’ ‘아빠가 보증을 서지만 않았어도...’ 안 좋은 일은 다 아빠 탓, 내가 이모양인 것도 다 아빠 탓. 도대체 왜 전부 아빠 탓일까?
어릴 적 아빠는 슈퍼맨이었다. 놀이공원에 가면 늘 목마를 태워주고 나를 번쩍번쩍 안아주었다. 집에선 못 고치는 게 없었다. 작은 전등부터 자동차, 오래된 담장까지 그야말로 맥가이버였다. 힘쓰는 일은 늘 아빠가 도맡아 했고, 주말에는 청소에 빨래에 어느 것 하나 아빠의 도움이 없던 곳이 없었다. 네 식구가 사는 복작복작한 부엌도, 베란다도, 화장실도 모두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으니.
나는 어릴 적 담배를 태우는 아빠가 멋있다고 생각했다. 아빠에게서 솔솔 풍기는 매캐한 88 라이트 냄새가 좋았다. 아빠는 늘 운전하기 전 오래된 감색 엘란트라 옆에서 담배를 태우곤 했는데 나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때는 아빠가 조지 클루니처럼 보였다.
아빠를 짝사랑했던 것 같다. 어렸을 땐 엄마에게 아빠를 뺏길까 조마조마했고 아빠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 졸졸 따라다녔다. 시장도, 상가 집도, 다섯 살 때까지 바득바득 우겨 오빠와 남탕도 쫓아갔다.
근데 그런 아빠가 지금은 전등 하나 고치는 것도 힘겨워한다. 여기저기 아픈 곳도 많아서 밤마다 자주 깨고 가끔은 이유 없이 아파서 괴로워한다. 디스크로 기울어진 걸음걸이는 이제 제법 티가 난다. 그런 아빠를 보고 있으면 안쓰러운 마음보다 화부터 나는 이유는 뭘까.
내가 가장 사랑했던 남자가 늙어간다. 나도 그와 함께 나이들고 있다. 아빠의 늙음을 인정하기로 했다. 우리는 함께 늙는다. 세월을 탓해 뭐 하랴.
아빠는 모든 딸들 첫사랑이었다. 딸은 아빠를 통해 세상을 배우고, 남자에 대해 배우고, 사랑에 대해 배웠다. 나를 번쩍번쩍 들어 올리던 단단한 어깨가, 바다같이 넓은 등짝이 점점 야위어가는 모습을 보며 세월의 무상함, 나의 나이 듦을 느낀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아빠가 일흔, 나 역시 마흔이 다됐다. 지금까지 잘한 것도 없는데, 제대로 효도도 못했는데. 누군가 나에게 시간이 많이 남았다고 이야기해 주었으면 좋겠다. 내가 이토록 형편없는 딸 역할을 그만둘 수 있도록, 온전히 아빠를 대면할 시간이 충분하도록.
*배경 사진 Unsplash, Caleb Jon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