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아홉 싱글 생존기, 사랑의 기동성>
서른하나.
내가 처음 장거리 운전을 시작한 나이다. 고속도로는 처음, 머나먼 출퇴근 길도 처음이었기에 나는 운전석에 앉을 때마다 보잉 747기의 파일럿이 된 듯 사뭇 비장해질 수밖에 없었다. 널따란 도로를 달리는 차들은 흡사 러시아산 제트기 같았고 내가 조금이라도 선을 넘으면 미사일 쏘듯 날카로운 클락션을 울려댔기 때문이다.
당시 남자친구 역시 나 때문에 인내심을 테스트받기 일쑤였다. 평소 온화한 그도 조수석에 앉기만 하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되곤 했는데 그의 입에서는 놀라움, 짜증, 비난, 분노 등을 내포한 말이 각종 감탄사와 함께 흘러나왔다.
“어어어- 아니, 너무 붙었잖아”
“아니, 여기서 끼어들면 어떻게 해엣!”
“으으으- 하아..”
간신히 목적지에 도착하면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후아... 주차는 내가 할게..."
남자친구의 양면성을 확인한 것 외에도 많은 것을 알게 됐다. 첫째로 운전이 출근길 최소한의 품위를 지킬 수 있게 도와준다는 것이다. 아침에는 아무리 신경 쓰고 나와도 지하철에서 내릴 때면 찌그러진 샌드위치나 푹 익은 파김치가 되어버리곤 했는데 운전을 하면 아침의 뽀송함을 유지할 수 있어 좋았다.
능동적인 태도와 여유도 늘었다. 나는 더 이상 친구의 차를 얻어 타지 않아도, 밤늦게 탄 택시에 불안해하지 않아도 안전하게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뿐인가, 함께한 지인들을 집에까지 데려다주는 호의도 베풀 수 있었고 가끔 부모님을 마중 나가는 효녀 역할도 할 수 있게 됐다.
이동의 자유와 심리적 자유와 여유도 얻었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 홀로 운전할 수 있게 되면서 혼자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사실에 자존감이 높아졌고 주체적인 사고가 가능해졌다. 인간의 이동 거리는 심리적 가능성의 크기와 비례하는 것 같다. 언제 어디든 갈 수 있으니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뿐이랴, 운전을 통해 나쁜 남자도 거를 수도 있었다. 스물한 살 내 첫차는 90년식 소나타 쓰리였다. 호프집 아르바이트로 모은 100만 원으로 폐차 직전의 똥차를 산 것이다. 당시 나는 이 차를 마치 포르셰처럼 자랑스레 타고 다녔는데 당시 남자친구에게는 영 창피한 모양이었다. 그는 내 차만 보면 ‘범죄용 차’라고 놀려댔고 함께 차 타는 걸 꺼려했다.
한 번은 그가 나 대신 주차를 하다 오른쪽 문을 심하게 긁었는데 미안해 하기는커녕 ’곧 폐차할 걸 뭘 그렇게 신경 쓰냐’며 적반하장으로 굴었다. 결국 얼마 후 멈춰버린 차와 함께 그도 말끔하게 정리했다.
드라이브의 묘미도 알게 됐다. 출근길 도로 위에서 뜨는 태양을 맞이하고 퇴근길에는 일몰을 즐겼다. 가끔 도로 위 나와 차만 있을 때는 영화 <델마와 루이스>의 주인공처럼 황홀경에 빠지기도 했다. 머리가 복잡할 때 드라이브를 하면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고 연애 센스는 없어도 운전 센스는 키울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뻤다.
지금은 제법 운전을 잘한다. 웬만한 장거리는 끄떡없고 난도 높은 주차도 능수능란하다.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약 세 차례의 접촉사고가 났고 앞뒤 범퍼를 한 번씩 갈아 끼웠으며 오른쪽 왼쪽 타이어도 한 번씩 펑크가 났다. 내비게이션을 보느라 무리한 끼어들기 할 때는 석고대죄하는 마음으로 깜빡이 켜듯 머리를 조아렸으며 “운전 똑바로 해!”라는 고함에 눈물을 글썽인 적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전을 놓을 수 없었던 이유는 늘어나는 실력과 함께 대처능력, 문제해결력, 메타인지, 평정심, 당황하지 않는 태도 등이 함께 늘었기 때문이다. 이런 경험은 나에게 ‘무엇이든 하면 된다’는 중요한 인생의 법칙을 깨닫게 해 주었고 좁은 세상에 갇혀 있던 나에게 사고의 확장을 가져다주었다. 무엇이든 하면 된다는 자신감, 독립심, 끈기, 당당함, 그리고 남자를 보는 눈까지, 이 모든 것이 운전이 나에게 준 선물이다.
지금 내 차는 오래전 아빠에게 빌린 13년식 K5다. 비싼 외제차나 고급 세단은 아니지만 나는 이 오래된 은색 차가 좋다. 나의 오랜 손때가 묻어서인지 두 개의 심장을 지닌 하이브리드라서 그런지 왠지 모르게 정감이 가고 든든하기까지 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좋은 차를 타는 남자의 여자이고 싶었다. 조수석에 앉아 본넷 위에 번쩍이는 엠블럼을 지켜보고 있으면 마치 호박마차를 탄 신데렐라처럼 의기양양해졌다. 하지만 그렇게 12시의 마법을 몇 번 겪어 보니 정작 중요한 건 마차나 왕자가 아니라 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차피 마차는 12시가 되면 호박으로 변한다. 내 발사이즈는 워낙 흔해서 그가 나를 찾을 확율도 낮다. 그러니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기 보다 내가 직접 마차를 몰고 왕자님을 찾아 나서는 수밖에.
근 10년의 운전이 나에게 준 건, 상대에게 바라는 대신 스스로 해내라는 다소 뻔한 교훈이고 나는 대단하진 않아도 그 교훈을 잘 실천 중이다. 아직 운전을 시작하지 않은 여성들이 있다면 최대한 빨리 시작해 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좋은 차도 필요 없고 대단한 기술도 필요 없다(내 첫차는 100만 원이었다는 걸 기억하라).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무엇이든 하면 된다. 혹시나 여자는 안 된다고, 김여사는 집에서 밥이나 하라는 꼰대가 있어도 가볍게 무시하자. 그렇다면 지는 F1 경기장에 있지 왜 여기에 있담. 운전 덕 꿈도 생겼다. 나의 꿈은 내가 산 멋진 포르셰를 끌고 미래의 신랑을 마중 나가는 것이다. 언젠가 이룰 꿈을 기대하며 나는 오늘도 10년차 단짝 K5와 함께 출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