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도 못 갔는데 부모님이 아프다

<서른아홉 싱글 생존기>

by 새로운



아빠가 아프다.



요사이 부쩍 체중이 줄어서 걱정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갑상선이란다. 아직 괜찮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한 시름 놓았지만 여전히 걱정이다. 그러고 보니 어느덧 엄마가 예순셋, 아빠가 일흔. 와아, 세월 참 빠르다.


엄마 아빠도 이제 부쩍 늙었다. 아빠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아침 앞 산을 쏜살 같이 오르내리곤 했는데 이제는 설렁설렁 가도 내가 항상 저만치 앞선다. 엄마는 부쩍 자주 붓고 관절마다 안 아픈 데가 없단다.


당장 부모님이 쓰러지시기라도 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만 해도 망막하다.



친구들은 저마다 짝을 찾고 나름의 가정을 꾸렸지만, 든든한 남편도, 아이도 없는 나는 여러 모로 부모님께 기대는 중이다. 물론 부모님과 나, 평균나이 57세가 함께 사는 것도 쉽지 않기에 적당히 공생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가장 먼저 서로에게 민감한 이야기는 피한다. 틈만 나면 시집가라고 노래를 부르던 엄마도 이제는 말을 아끼고 아빠 역시 더 이상 김사장 아들 이야기는 꺼내지 않는다. 함께 늙어가는 마당에 적당히 서로의 눈치를 살피게 되는 모양이다.


생각 없이 내뱉던 막말도 칭찬으로 바꾸었다. 이 나이가 되니 밖에서 칭찬받을 일이 없다는 걸 잘 알기에 집에서라도 서로를 띄워주려 노력하는 것이다. "엄마 이거 너무 짜!"는 “어머, 짭짤하니 맛있다”로 “앜! 이건 건조기 돌리면 안 된다고!”는 “푸하하, 아기 옷이 됐어! 조카 주지 뭐, 큭큭” 정도로 말이다.


서로 살기 바빠 평일에는 얼굴 마주치기도 쉽지 않기에 서로의 작은 변화도 놓치지 않으려 애쓴다. “아빠, 이발했어요? 장동건인 줄" "엄마, 청소했어? 너무 깨끗해서 미끄러질 뻔했잖아"


이 밖에도 무위도식 중인 동거인으로써 나름의 역할에 충실 중이다. 부모님의 저녁 장사 긴급 투입 인력으로 상시 대기 중인 것은 물론 노부부의 디지털 문맹을 타파를 위해 정기적으로 휴대폰 스팸 거르기, 새로운 기능 설명하기, 온라인 세금 업무 처리 등 디지털 전반에 관한 민원을 담당하고 있다. 이밖에도 운전기사, 심부름, 개그 담당 등 다양한 역할을 소화 중이니 이러니 내가 연애를 못하지.



이 밖에도 내가 감내할 부분은 많이 남아있다. 건조기를 사드린 이후 엄마는 모든 옷을 건조기에 사정없이 돌려버리기에 내 옷은 대부분 아동복이 돼버렸다. 맥시멀리스트인 아빠는 내가 내다 놓은 걸 죄다 들고 오는 것은 물론 남이 버린 것도 주워 오는 걸로 봐서 은퇴 후 콜렉터로서의 삶을 준비 중이신 게 분명하다.


요즘은 종종 아침밥을 차려주는 엄마에게 ‘아이고 자매님, 아침부터 고생이 많으십니다.’ 라며 실없는 농담으로 미안함과 고마움을 대신한다. 그때마다 엄마는 ‘어휴, 저걸 누가 데려가...’ 라며 혀를 끌끌 차지만 나는 알고 있다. 매일 저녁 내가 좋아하는 보리차를 끓여놓고 주무시는 엄마의 마음도, 다 큰 딸의 옷을 계주는 아빠의 사랑도.


그런 의미에서 우리 셋은 각자의 자리에서 꽤 괜찮은 공생 중이다. 나는 주말 아침 엄마가 달그락 거리며 끓이는 된장국 냄새에 외로움을 잠시 잊고, 부모님은 아직도 풀어야 할 숙제를 준 딸 덕분에 심심하지 않고.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공조 아닌가?


누구나에게 정서적 안전지대(safe zone)가 필요하다. 물리적 장소는 물론 자신이 힘들고 지칠 때 쉼을 얻을 수 있는, 정서적으로 안전하다고 느껴지는 심리적 공간 말이다. 어렸을 땐 그 자리를 친구가, 커서는 남자친구가 대신하곤 했는데 이제 내게 그곳이 부모님이 된 듯하다.


그래서 나는 이 노부부가 내 곁에서 아프지 말고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그동안 차곡차곡 쌓아 올린 불효의 덕을 천천히 AS 할 수 있도록 말이다(아, 그렇다고 평생 혼자 살겠다는 말은 아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