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아홉 싱글 생존기>
나는 알아주는 금사빠다.
금사빠 대회가 있다면 순위권을 목표로 도전하고 싶을 정도로 이 분야에선 꽤 자신 있다. 나는 누군가에게 쉽게 반하고 쉽게 사랑에 빠지며 그만큼 쉽게 빠져나온다.
그렇게 시작한 사랑은 대부분 실패했지만, 괜찮다. 나는 아마 사랑을 나누는 것보다 사랑에 빠지는 것 자체를 즐긴 것 같으니.
하지만 사람이 단기간 펄펄 끓는 열탕과 차가운 냉탕을 지속적으로 오가다 보면 머리가 띵 해지는 순간이 온다. 냄비처럼 끓었다 얼음처럼 식어버리는 회전율 높은 연애를 반복하니 피로감만 쌓이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나는 도대체 왜 이 모양인가'를 반성할 틈도 없이 다시 사랑에 빠지기 때문에 이쯤 되면 나의 애정을 담당하는 뇌의 어느 한 부분이 고장 난 게 틀림없다고 느끼게 된다. 어느 병원에 가도 금사빠를 치료하는 약 따위는 없기에 이 불치병에 가까운 비정상적 애정 질환을 팔자인 듯 체념하게 되는 것이다.
변덕에 가까운 단기적 애정의 변화도 20년 넘게 겪다 보니 면역력이 생긴 건지, 생각이 긍정적으로 바뀐 건지, 지금은 이런 금사빠 기질이 한편으로 나를 인생의 똥통에서 구해주었다고 느낀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잘생긴 남자들에게 쉽게 반했다. 학창 시절 짝사랑한 남자도 첫사랑도, 위에서 말한 사람들도 모두 수려한 외모를 지녔다. 하지만 잘생긴 남자들은 대부분 자기가 잘났다는 걸 잘 아는 듯했고 나는 이런 남자를 사랑한 죄로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멀쩡해 보였던 한 사람은 알고 보니 분노조절 장애가 있었고 온몸을 명품으로 휘감았던 전 남자 친구에게는 큰돈을 빌려줬다가 한참을 고생했다. 알고 보니 사기꾼이었던 사람도 있었고 양다리를 걸치다 걸린 남자도 있었다. ‘얼빠’와 ‘금사빠’의 콜라보가 인생에 커다란 역경을 안겨준 결과, 내가 왜 이렇게 남자의 외모에 집착하는지 그 이유를 스스로 밝혀내는 지경에 이르렀다.
내가 상대에게 반하는 요소는 내가 인생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와 일치한다. 즉, 내가 상대에게 좋아하는 면이 나에게도 적용된다는 말이다.
나는 ‘외모를 가꾸지 않는 사람은 가치가 없다’고 믿었다. 지금도 남아있는 폭식 습관이나 다이어트 강박, 겉모습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는 태도 등은 모두 뿌리 깊은 외모 강박에서 시작됐다. 중학생 때 살이 빠지며 처음으로 또래 친구들의 관심을 받았고 바쁜 부모님과 냉소인 집 분위기로 애정결핍에 시달렸던 나에게는 이 관심이 뼛속 깊이 박혔다.
그때부터다. 내가 병적으로 외모에 집착한 것이. 어렸을 때부터 다이어트를 혹독히 한 까닭에 살을 빼겠다고 쫄쫄 굶다가 걸신처럼 먹어대기를 반복하거나 살이 조금이라도 찌면 집 밖에 나가지 않았다. 날씬하지 않으면, 예쁘지 않으면 아무도 나를 사랑해주지 않을 것만 같았다. 허벅지 사이즈로 스스로의 가치를 가늠했고 옷이나 헤어스타일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인생을 다 망친 듯 유별나게 굴었다.
사람은 스스로를 보는 거울로 상대를 판단한다. 내가 나에게 잔인하게 구니 남에게도 똑같이 못되게 구는 것이다. 나는 유독 살이 찐 사람이나 자신을 가꾸지 않는 상대에게 잔인해졌다. 매력이 없다고 생각한 것은 물론 게으르며 불성실하다고까지 생각한 것이다. 그 결과 나는 얼빠에 금사빠라는 심각한 합병증까지 얻게 됐다. 다른 중요한 것들은 모두 다 놓친 채로.
심리적 질환에 가까운 이 습관을 치료하는 일은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자’는 단순한 다짐이 아니다. 진정한 치유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사랑하는 것이었다.
남들보다 예쁘지 않아도, 유난히 꾸미지 않아도, 평균치를 한참 밑도는 체중에 기뻐하지 않아도 나를 아껴줄 수 있는 마음을 기르는 것, 그것이 병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체중이 나를 대표하는 가치가 되지 않도록, 내가 그 자체로 존엄한 존재란 걸 잊지 않도록 요즘도 매일 명상과 자기 암시로 심리적 허기를 채우는 중이다.
지금은 금사빠의 휴지기다. 애쓴 덕분인지 자신을 조금 더 사랑하게 되었고 집착에 가까운 외모 강박도 줄었다. 어쨌든 기억은 좋은 방향으로 흐르는 것 같다. 나를 똥통에 처박았던 금사빠 녀석이 오히려 뚱뚱에서도, 똥통에서도 건져주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잘생긴 남자도 많이 만나 보고, 설렘에 잠 못 든 적도, 미친 사랑에 빠진 적도 많으니 오히려 고맙다.
연애세포 마저 늙어버린 요즘은 녀석이 다시 돌아왔으면 좋겠다. 굳어버린 나의 심장을 다시금 뛰게 해 줄 누군가를 기다리며. 그러니 금사빠여도 뭐 어떤가.
*배경이미지 Unsplash, Faris Mohamm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