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충 남자요? 으으으...

<서른아홉 싱글 생존기>

by 새로운



<나 혼자 산다>에 배우 이유진이 나왔다. 지난번엔 반 지하 월세 집을 멋지게 꾸며 두더니 이번에는 평범한 아파트를 완전히 새로운 공간으로 만들어 놓았다. 평범한 침실이 그의 금손을 거치자 금세 ‘미드 센츄리 모던’ 풍의 방이 되었고 작은 방은 올화이트 뉴욕풍 작업실로 탈바꿈했다.



‘와아-’하는 감탄과 함께 같이 있던 친구가 물었다. “저런 남자 어때?” 나는 고민 없이 대답했다. “너어무 피곤해”



젊었을 때라면 너무 멋지다고 생각했을 법한 사람이 지금은 되려 피곤하게 느껴진다. 그 이유는 아마 그의 세계가 너무 견고해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좋아하는 것도 뚜렷하고 하고 싶은 것도 뚜렷한, 본인의 취향과 세계관이 확고한 사람들을 보면 인간적으로 멋있다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그를 이성으로 생각했을 때 쉬이 피로해진다. 그 취향을 갖게 되기까지의 과정과 이를 유지하기 위해 쏟은 시간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는 성격도 취향도 모두 타고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누군가의 고급스러운 취향이나 특별한 센스를 볼 때, 옷 잘 입고 세련된 이들을 볼 때 주로 부럽고 신기했다.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난 그런 사람들을 따라가기 바빴다. 그들과의 격차에 분개하거나 불공평함을 느끼면서.



그래서인지 사람을 볼 때도 당장 눈에 보이는 것들만 봤다. 외모, 재력, 직업, 집안, 재산 등 타고난 것들은 겉으로 티가 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의 눈에 띄기 위해 노력했다. 타고나길 나은 사람들의 눈에 띄기 위해 최대한 화려하게 치장했다.



소개팅을 할 때는 평소에 잘 입지도 않는 원피스를 입고 불편한 스틸레도 힐을 꺼내 신었다. 재미없는 말에도 거침없는 리액션으로 화답했고 집으로 돌아갈 때면 데려다주겠다는 호의에 못 이기는 척 그의 자동차를 스캔했다.



가끔 그런 나의 전략이 통해 내가 좋다고 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럴 때면 좋은 차를 타고 좋은 곳에 가서 비싼 음식을 먹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생각처럼 행복하지 않았다. 떳떳하지 못하고 쉽게 주눅 들었다. 자주 눈치를 보고 하고 싶은 대로 하지도 못했다.


항상 내 진짜 모습을 들킬까 전전긍긍했고 함께 있어도 늘 외롭다고 느꼈다. 생각해 보면 나도 그리 이상하거나 나쁜 형편이 아니었는데 늘 자신을 궁지로 내몰았다. 스스로 가지지 못한 사람이라고 몰아가면서.





감성에 죽고 감성에 사는 남자를 만난 적이 있다. 그의 차에 타면 늘 좋은 냄새가 났다. 차는 언제나 깨끗했고 그 역시 항상 말끔했다. 성격은 깔끔했고 말투는 나긋나긋했다. 취미로 사진을 찍고 영상을 만드는 사람이었다. 함께 간 여행에서 열심히 무언가 찍더니 며칠 만에 멋들어진 영상을 뚝딱 멋지게 만들어내는 모습을 보고 반했다.



문제는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그는 물건을 하나 사더라도 디자인을 가장 먼저보고 식사를 하러 가더라도 분위기에 지나치게 신경 썼다. 물건을 하나 배치하더라도 각도와 구도를 신경 쓰고 데이트에서도 감성사진을 찍는데 많은 에너지를 쏟았다.


물건을 살 때는 실용성, 맛집을 갈 때는 노포, 물건 배치는 깔끔함, 데이트는 가성비를 최우선 가치로 여기는 나와 잘 맞지 않았다. 감성적인 남자와 만나면 나 역시 감성적인 여자가 될 줄 알았것만. 역시, 현실과 이상은 늘 어긋난다.



누군가를 만나면 내가 그런 사람이 될 줄 알았건만. 돈 많은 사람을 만나면 나도 부자가 될 줄 알았고, 외모가 훌륭한 사람을 만나면 나 역시 그렇게 될 줄 알았다. 센스가 좋은 사람을 만나면 나 역시 센스 있는 사람이 될 거라고 생각했고 유명한 사람을 만나면 나도 유명해질 줄 알았다.



타인의 세계로 들어가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사람이 멋져 보일수록 단단한 사람일수록 더 그렇다. 운동에 빠져있는 사람을 만나면 함께 운동을 해야 하고 패션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을 만나면 나 역시 옷에 신경 써야 한다. 부지런한 사람과 함께하면 더불어 일찍 일어나야 하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과 가까워지려면 책을 읽어야 한다.



모든 것에는 에너지가 든다. 좋아 보이는 것들은 더 그렇다. 나이가 들어 알게 된 건 세상이 무조건 재능과 운으로 양분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운동을 시작하면 체력이 좋아졌고 열심히 일하면 성과가 돌아왔다.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대하면 그도 나에게 진심을 보여줬다. 그럴듯한 인테리어를 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발품을 팔거나 돈을 써야 하고 감성이나 그럴듯한 센스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비용, 노력이 든다는 걸 알았다. 철없는 부잣집 남자를 만났다가 호되게 당하면서 깨닫게 된 것들이 있고, 가진 게 없음에도 성실한 연인을 만나면서 역으로 배운 것도 많다.


결과만 가득하던 세상에서 인풋과 아웃풋이 공존하는 경험들을 하게 되면서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진리를 깨닫게 된 것이다. 그러니 대충 묻어가거나 적당히 퉁치려고 했던 것들이 오히려 내 발목을 잡았다.


잘 찌지 않는 체질이라고 생각해서 먹었던 야식들이 볼록 튀어나온 똥배를 불러왔고 타고난 편이라고 생각했던 피부도 이제는 관리를 소홀히 하면 금세 어디 아프냐는 소리를 듣는다. 겉보기에 멋져서 만났던 남자들이 사실을 빛 좋은 개살구였다는 것을 알게 됐고, 그가 가진 것이 절대 내 것은 될 수 없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인지 나는 이제 남의 것을 바라기보다 내 것을 견고히 하는데 집중한다. 거저 되는 건 없다는 건 바꾸어 말하면 나도 그만큼 노력한다면 얻을 수도 있다는 말. 그래서 쉽게 남을 부러워하거나 질투하기보다 어떻게 해서든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한다. 될지 안 될지 모르지만 우선 해본다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