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버른에서 만난 소주 리타

일타쌍피의 힘

by 미쓰양푼이

태즈매니아에서

생과 사의 기로에

서 있다 와보니

서울만큼 좋은 곳이 없었다.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을 달래기 위해

멜버른으로 돌아와

한국 음식점을 찾았다.


집밥으로

심리적 안정감을

찾고 싶었다.


때 마침

저녁시간이었기 때문에

사람이 많은 건지

멜버른에서 한국음식이

인기가 많은 건지

대기하는 사람이 많았다.


번호표를 받고

매장 안 의자에 앉아 있는데,

이곳은 기다리는 곳이 아니라며

밖에 나가서 기다리라고 한다.


딱 봐도 어린 한국 여자인데

쌀쌀맞은 영어로 나를 내쫓는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길래

매장에서 좀 떨어진 지붕이 있는

버스 정류장에 가서

내 순서를 기다린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밖에 나와 내 번호를

부르지 않는다.


도가 지나친 것 같아

들어가 보니

이미 식당엔 붐볐던

사람들이 쫙 빠지고

테이블이 몇 개나 남아 있다.


손님을 내쫓을 줄 만 알았지,

손님을 들어오게 하는 것은

관심 밖의 일이었다.



자리를 잡고

메뉴판을 받아

주문을 하려고 하는데

주문받는 사람이

한국 남자인 것 같아 보인다.


"한국어로 주문해도 되죠?"

라고 말했다.

"그럼요."


아까 불친절했던

여자 직원과 달리

남자 직원은 친절하게

주문을 받아주었다.


메뉴를 보니

전통 한국 음식점이라기보다

퓨전 한식 레스토랑이다.


내가 사랑하는

치즈 토핑을 얹은

김치볶음밥을

주문했다.



여행을 왔는데

또 술이 빠질 수 있으랴.


메뉴를 보니

특이한 것이 있다.


멕시칸 레스토랑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코로나리타'의

한국 버전이었다.


마가리타에 코로나를

꽂은 것이 아니라

참이슬을 꽂아주는

'소주 리타'라는 것이

있는 것이다.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그것을 주문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초록색으로 물들여진 마가리타에 초록색 소주병을 꽂은 '소주 리타'가 나에게 다가와 손짓하며 말한다. '태즈매니아에서 지친 너에게 안정을 되찾아 줄게.'


혼자 먹기엔

많은 양이었지만

시간적 여유가 있었던

나는 오랜 시간 식당에 머물며

음식을 다 해치웠다.


밥심으로

다시 안정감을 찾았다.


반주로

마신 소주 리타 덕분에

기분도

알딸딸하니 좋았다.


여기에 커피로 입가심만 하면

금상첨화겠다 싶었다.


음식 값 계산을 하면서

스타벅스가 어디에

있는지 물어봤다.


오랜 시간 동안

음식을 먹으며

레스토랑을 지켜본 결과,

직원들끼리는 한국어를 주고받으며

서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도

한국어로 물어봤다.


호주인 것은 상관없었다. 언어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이기 때문에 각자 편한 언어를 사용하고 서로 알아듣기만 하면 된다.


계산을 하는

여직원의 표정이

좋지 않다.


여기는

영어 쓰는 곳인데

왜 한국어로

물어보냐는 듯 한

얼굴이었다.


이 여자도 아까 그 여자처럼

퉁명스럽게 모른다고 한다.


계산을 다 마치니까

방금 썩어있던 표정은

온데간데없고

기계적으로 웃으며

영어로 고맙다고

잘 가라고 한다.


문득 나의 20대가 떠올랐다. 어학연수의 목적을 실현시키기 위해 한국인을 피해 다녔던 그때 말이다. 저들도 영어를 익히기 위해 호주에 왔는데 한국인 아줌마가 와서 계속 한국어로 말 거니깐 싫겠구나 싶었다.



정처 없이 걷다가

스타벅스의 초록색 간판이

눈에 띈다.


초록색 소주 리타의 안주들을

혼자 해치우느라

빵빵해진 배를

소화시키기 위해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

책을 펼치기가 무섭게

한 여자가 말을 건다.


이야기인즉슨

자기는 노숙자인데

돈이 필요하단다.


그 여자가 원하는 대로

돈을 줬더니

신이 날 축복할 거란다.


"God Bless You!"

그것도 천진난만하고

사랑스러운 얼굴로 말이다.


사실 돈을 안 줬으면

바로 악마 같은 얼굴로

돌변할 인상의 소유자이긴 했었다.


그렇다고 무서워서

돈을 준 것은 아니다.

그냥 주고 싶었다.


그만큼 내가 여유로워졌음을 느낀다. 심리적으로 말이다. 이 심리적 안정감은 '방금 먹은 한국음식 덕분이었을까?'라고 반문해본다.


멜버른

현지인으로부터 받은

축복 메시지에 탄력을 받아,

다시 본격적으로

책 읽기에 돌입하려고 한다.


패기 있게

책을 집어 들었지만,

나는 바로 좌절해버린다.


바로 옆 테이블에

한국인 여자 두 명이 와서

내 독서를 방해했기 때문이다.


사운드의 힘은 텍스트의 힘보다 강했다. 내가 집중하고자 하는 텍스트보다 소리로 들려오는 내 모국어에 온 신경이 쏠린다.


갑자기 어떤 말도

이해하지 못했던

광저우가 그리워진다.


책을 읽는 여행으론

중국이 제격이었다.


책에서 눈을 떼고

딴생각을 하고 있는 찰나

갑자기 내 옷으로 무언가가 튄다.


옆에 있는 여자가

껌을 씹으며

딱딱 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었는데,

그 행위로 인해

쪼개진 미량의 껌 쪼가리가

그녀의 입 밖으로부터 튀어나와

내 옷에 착륙한 것이다.


참으로 세상은 요지경이었다. 내 옷에 붙어버린 껌 쪼가리를 바라보니 하필 껌 색깔도 초록색이다. 누가 초록색에 대해 힐링의 대명사라고 말했나?


지금 이 순간만큼은 떼어내고 싶은

색깔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게 나는

멜버른에서

한국의 파릇파릇한 흔적들

마주하고 있었다.


여행지에서 지친

여행자는

한국의 흔적을 찾아가며

힐링을 하다가도,

그 흔적의 도가 지나쳐버리면

곧바로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한다.


낯선 곳에서

지쳐버린 한국인들은

소주를 찾아 헤맨다.


그것에 위로를 받고

안정을 되찾지만,

충분히 힐링이 됐다 싶으면

마가리타와 같은 것을 찾기 위해

떠나가 버린다.


그래서 그런지

멜버른의 코리안 레스토랑에서는

일타쌍피로

힘이 되어 주는

‘소주 리타’를

팔고 있었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