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에 목숨 건 할아버지

당신에겐 언제 '심리적 허기'가 찾아오나요?

by 미쓰양푼이

특정 여행지에

애착을 가지려면

그 지역의 음식이

입에 맞아야 한다.


그래서 그동안

내가 방문했던 여행지 중에

음식으로 우열을 가린다면

단연코 바르셀로나이다.


바르셀로나 바닷가 앞에서

해산물 풍미 가득한 빠에야에

달콤한 상그리아를 곁들였던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환상 그 자체였다.


낮에는 40도가 넘는

폭염 덕분에

에어컨 바람을 쐬러

지하철 안에만 있었다.


딱히 추억으로

기념할만한 것이

그곳에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바르셀로나는

빠에야와 상그리아 덕분에

나의 최애 여행지가 되었다.


음식 스트레스는 밥과 신라면으로 해결


호주에서는 먹는 것이

가장 스트레스였다.

호주를 대표하는

이렇다 할 음식도 딱히 없었고,

전반적으로 음식이 짰다.

더 큰 문제는

갑자기 낯선 환경 때문에

내 몸 안에 있는 회충들이 놀랐는지

앉아 있다 서기만 해도

배가 고파지는데,

그 배고픔은 여태까지

내가 느껴보지 못한

참을 수 없는 그런 것이었다.


원래 나는 불규칙적으로

식사를 하는 스타일이다.


무엇인가 해야 할 일이 있으면

배가 고파와도 그것을 참는다.


할 일에 매진하다가 그 일을 끝내고 나면

결국 배고픔이 무뎌질 대로 무뎌져 있다.


허기는 나의 일상에서는

대수롭지 않은 그런 것이었는데,

호주에 와서 그것에 전복당하고 있는

내 모습이 낯설기만 하다.


"민희야. 밥이 없어. 밥 해놓고 가야 해."
"민희야. 선희가 순천에 내려간대. 밥 할 사람이 없으니깐 와서 밥하러 와주렴."
"민희야! 밥!"


할아버지께서는

밥에 목숨 건 사람처럼

하루 종일

밥 이야기만 하신다.


밥통에 밥이 없으면

세상이 무너질 것처럼

큰일이라도 난 듯

밥을 찾으셨다.


호주에 가서 배고픔에 허덕이는
나의 모습을 보니
할아버지께서 왜 그토록
밥에 집착하셨는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할아버지께서는

평생 동안

'밥, 밥' 거리신 것은 아니었다.


할아버지께서 이렇게

밥 이야기를 하시게 된 것은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후부터였다.


할머니의 부재에

누구보다도 공허함을

느끼던 사람은

할아버지셨는데,

할아버지는

그 심리적 허기짐을

끼니를 챙기는 것으로

해소하고 계셨던 것이었다.


내가 본 할아버지 마지막 식사 모습


호주에서 여행을 하며

느꼈던 여유는

사실 나에게 익숙한

그런 것이 아니었다.


과거를 후회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다시

되돌리는 삶을 살았었다.


매일매일

내 능력 이상의 것들을

해나가야 하는 상황이

놓여졌기 때문에,

쉴 틈도 없었다.


미래에 대해서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에,

그 대비책에 대한

공상으로

머리는 항상 복잡했다.


그런데 호주에서는

그런 것들을 할

필요가 없었다.


평소에는 과거의 후회, 미래의 불안에
사로 잡혀 있었다면,
이곳에서는 현재 즉 지금
이 순간만 중요했다.


일상적으로

해오던 것을

여행지에서는 할

필요가 없다 보니

지금 현재 내가 느끼는

배고픔에만

온전히 집중하게

되었던 것이다.


내가 여행지에서

규칙적으로

해야 할 일이라고는

끼니 챙기는 것

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허기는

여행지에서 무시할 수 없는

그런 것이 되어버렸다.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나


할아버지도 할머니께서 떠나셨다고

계속 울고 계실 수 없었다.


과거에서만 존재하던 할머니를

놓아드려야만 했다.

그리고 할아버지께서 느끼실

미래의 불안인 죽음이라는 것으로부터도

도망치셔야만 했다.


그 불안은

젊은이들의 불안과는

차원이 다르다.


느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감히 뭐라 말할 순 없지만,


공포를 느낄 정도로

견디기 힘든 그런 것이 아닐까?


그런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현재에 더욱

집중하셨어야만

했을 것이다.


그 수단은

매일매일 규칙적으로

챙겨야 하는

세 번의 식사가 되었고,

이것이 바로 할아버지께서

'밥, 밥' 거리셨던 이유였다.


할아버지께서 떠나가실 때, 이 세상 아쉽지 않으시도록 제가 더 멋지게 이어나가겠다고 말씀드렸다. 약속을 지켜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