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즈매니아에서 죽는 건 아니겠지?

서울이 몹시도 그리웠던 순간

by 미쓰양푼이

일본에서 친구들을 만나면서

다이이치의 소식을 접했다.


그가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호주에 있다는 것이었다.


그 정보를 입수하자마자

오랜만에 다이이치에게

연락을 했다.


다이이치까지

호주에서 만난다면

'그동안 못 만났던

친구들을 만나자!'라는

나의 여행 테마가

더욱더 뚜렷해지겠지 싶었다.


그는 멜버른에서

비행기로 1시간 거리인

태즈매니아란 곳에

있다고 했다.


멜버른에 현지

친구들도 있기 때문에

겸사겸사

나를 만나러

멜버른으로 오면

좋겠다고 했지만,

그는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움직일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태즈매니아로

가기로 했다.


사실 나는 그동안

태즈매니아라는 곳의 존재 조차

모르고 살아왔는데

덕분에

내 우물에 크기가

커지게 되었다.



태즈매니아에 도착했다.

멜버른과는 너무나

다른 곳이었다.


여기는 정말

시골 깡촌이었다.


공항에서

시내로 나가기 위한 지하철도,

상시로 운영되는 버스도 없었다.


셔틀버스를 타려면

3명 이상 사람을

모아야 했다.


진작에

이 사실을 알았더라면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사람들이 북적거릴 때

바로 셔틀버스를 탔을 텐데,


오자마자

졸리고 쌀쌀한 날씨를

이겨내겠다고 커피를 사며

여유를 부려 버렸다.


어느새 이 촌 동네

공항 앞은 휑하다.

사람이 없다.


이 정도로 관광객들에게

어려운 곳이 있을까 싶었다.



어쩔 수 없이

눈물을 머금고

택시를 탔다.


택시 요금 올라가는

속도를 보며

겁에 질려버렸다.

큰일 났다.


인천공항에서

서울 시내 정도의 거리라면

택시비로 10만 원도

넘게 나오겠다 싶었다.


그 값은

멜버른에서 태즈매니아까지 온

비행기 값이랑 맞먹는다.


안절부절못하며

계속 택시 미터기를

보고 있는데

다행히 공항에서

시내가 멀지 않았다.


잠시 까먹고 있었다.

여기는 시골 깡촌이다.


내 친구 다이이치


시내에 도착해

다이이치를 기다린다.


사실 정확히 몇 시에 만나자고

시간을 정하진 않았다.


내가 언제 시내에

도착할지도 몰랐고,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그가 오기 전까지

나만의 시간을 가지면 됐었기에

그를 만나는 시간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비가 내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공항에서 커피를

괜히 가장 큰 사이즈로 사서

커피가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이 커피를 들고

다른 커피숍에

들어가기도 뭐했다.


때 마침 다이이치에게

일이 생각보다 일찍 끝났고

곧 도착이라고 연락이 와서

그냥 밖에서

비를 구경하기로 마음먹었다.


비를 좋아하지 않는 내가

여행이라는 이유로

비를 즐기고 있는데,

점점 그 비가 만들어내는 추위가

나의 몸을 얼게 만든다.


금방 도착한다고

이야기하는 다이이치는

그렇게 1시간이 지나도록

오지 않는다.


갑자기 문득 떠올랐다.


그가 어떤 친구였는지 말이다.


할로윈 파티 때 란과 다이이치와 함께


그는 교환학생 시절,

내 룸메이트 란의 친구였다.


같은 센다이 출신으로

부모님끼리도

잘 아는 막역한 사이였다.


란과 가족 같았던

친구였기 때문에,

우리 방에 자주 놀러 오면서

친해졌다.


다이이치와의

추억을 더듬어 보면

하필 기가 센

여자 5명 사이에

남자 혼자 껴서

구박이란 구박은

다 받는 장면만이

그 속에 존재한다.


왜냐하면 오늘 같이

언제 도착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애매모호하게 말하고,

교통편이 좋지 않은 시골로

친구를 불러 놓고


그 어려움에 대해

일러줄 생각도 하지 못하는

그런 친구였기 때문이었다.


칠칠치 못한 행동을 일삼았던

그에게 잔소리하는 것이

우리 만남의 반복적인 패턴이었는데,

나는 그 사실을

잠시 까먹고 있었던 것이었다.


7년 만에 친구를 만나서

느낄 설렘만을 기대하고

이 먼 곳까지 와버렸던 것이

내 잘못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그가

나에게 처음으로 남긴 말은


우리 어디로 가야 해?
나 이곳 와서 일만 하느라
시내로 놀러 나온 적이 없어.
그래서 여기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조차도

너무 어이가 없어서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

그때 저 상황이 나는

너무나도 당황스러웠다.


태즈매니아 여행은

친구를 만나는 테마를

실현시킨다기보다,

예상치 못한 것을 경험하자는

내 여행의 목적이

더 어울렸다.


호주 여행 중

어디가 가장 인상 깊었냐고

물어본다면

바로 여기다.


내 친구 다이이치

덕분에 말이다.




아까 시내를 둘러보다

내가 우연히 발견한 버거집으로

그를 데리고 갔다.


다행히 그 안에서

차가웠던 몸이

데워지면서

다이이치를 향한

당황스러웠던

나의 마음도

점점 사르르

녹아내리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이야기에서는


'일본에서 여러 회사를 다녀봤지만

적응할 수 없었던 스토리'와


'여자 친구에게 차인

슬픈 멜로드라마'가

주를 이뤘다.


그래서 친구는

호주로 떠나 왔다고 했다.


갚아야 하는

학자금 대출금이 많기 때문에

돈을 벌기 위해

일만 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이이치는

연어 공장에서 일을 한다고 했다.


덕분에

그의 차에 탔을 때

코를 찌르는

연어 비린내가

아직까지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오늘 그의 모습만 봐도

왜 사회에 적응할 수 없었는지,

왜 여자 친구한테 차였는지

너무나도 잘 알 것 같았다. '


태즈매니아에서 죽는 건 아니겠지?



다이이치가

선물로 준

연어 사시미를 들고

연어 악취가 가득한

다이이치의 미쯔비시

흰색 자동차에

몸을 실었다.


여타 도시와 다르게

이곳은 호주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곳이었다.


그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캐터랙트 협곡으로 향했다.


비가 와서 그런지

입구에서부터 펼쳐지는

호수 뒤로 쫙 뻗어 있는

산의 모습이

매우 운치가 있었다.



그 안에서

공작새도 보고, 캥거루도 보고

드디어

진짜 호주라는 곳에 온

느낌이었다.


나중에

가족들과 이 운치를

함께하고 싶을 정도로

힐링이 되는 곳이었다.


그렇게 협곡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내려와서

시계를 보니

5시가 되어 있었다.


오후임에도 불구하고

태즈매니아는

밤처럼 어두컴컴하다.


많은 비가 내리고 있는

어두운 태즈매니아에서

히터가 고장 난

흰색 승용차가

연어 악취를 풍기며

달리고 있다.


겨울이어서 추웠던 것이

문제가 아니다.


다이이치는

한 손으로는

핸들을 잡고 있고,

다른 한 손으로는

수건으로

차 앞 유리를 닦는다.


계속해서 차 앞 유리에

김이 서리고 있는 것이었다.


다른 도시처럼

도로에 가로등도

적게 설치되어 있었다.


앞 유리가 뿌옇게 변해서

아무것도 안보이니

언제 사고가 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너무 위험한 상황이었다.


여기서 죽을 수 도

있겠다 싶었다.


내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에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김이 서린다는 것은

밖과 안의 온도 차이가

생긴다는 것이니

그 차이를 없애주면 됐다.


비가 많이 오지만

문을 열어야만 했다.


옷이 젖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집에 무사히 가고 싶었다.


이런 깡촌에서

죽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문을 열려고 하니


맙소사!


창문을

수동으로 여는

손잡이가 보인다.


오랜만이었다.


마치 어린 시절

도로에 즐비했던

현대자동차의 엑셀을

타고 있는 기분이었다.


레트로 감성을

물씬 풍기는

손잡이를 잡고

돌리려는데

돌아가지 않는다.


엄청난 힘을 발휘하니

그제 서야 창문이

열리기 시작한다.

내가 힘들게 창문을 여니

다이이치가

미안하다고 말한다.


내가 이 상황에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낸들

뭐하겠나 싶어

내 불안한 마음을

꾹꾹 누르고 있었는데,


나도 그 틈을 타서

궁금한 것을 물어봤다.


"도대체 이 차 얼마에 샀니?"


돌아오는 대답에서

나는 또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거 23만 km나 달린 차여서
싼 값에 살 수 있었어."


오 마이 갓!


나는 차 안으로

들어오는 비를 맞으며


'나는 명줄이 길다고 했어.
여기에서 죽진 않을 거야.'

라며

나 스스로를

달래 본다.


다행히

비를 맞은 대가로

창문에 김은

더 이상 서리지 않았고

우리는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저녁을 먹으면서

다이이치는

전 여자 친구가 그립고,

다시 만나고 싶다는 이야기를

계속해서 반복한다.


나는 속으로


'다이이치야!
미안해.
재회는
불가능할 것 같아.'


라고 말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