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행하는 여자

내가 이곳저곳 돌아다니지 않는 이유

by 미쓰양푼이

여행을 싫어하는 내가

내 여행을 좀 더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해서

책을 챙겼다.


「생명을 짜 놓은 노동, 고병권」 이란

책을 들고 도쿄에 갔다.


나의 열정 에너지를

일에다 다 쏟아 버리느라,

삶에 아무런 여유도 없었던

나의 지난날을 돌아보며

‘노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내리고 싶었다.


14년 전 하네다 공항에서

블루칼라로 일하면서

맛보았던 노동의 의미 역시

활자로 음미해보고 싶었다.


「노동이란, 인간이 어떤 ’ 수단‘을 가지고 ’ 대상‘에 작용을 가해, 그것을 ’ 자신의 ’ 목적‘과 필요’에 맞게 변형하는 일」


언제나 자기 합리화에 능한

나는 그 구절을 읽고

노동으로 인해

지친 내 영혼을 어루만져 본다.


다행히 내 노동은 목적성을 갖고 있었어!’라고

나 스스로를 위로하며

사유하는 여행에

빠져들고 있었다.



광저우로 들고 갔던 책은

「미중 전쟁의 승자,

누가 세계를 지배할 것인가?

(중국 편), 이성현」이다.


'미중 무역전쟁'에 대한

관심은 많았지만,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그 문제에 대해 눈여겨보지 못했었다.


그래서 중국을 경유지로 선택했다.

‘앞으로 세계의 패권을

누가 차지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이다.


광저우에 있는 카페에서

책에만 온전히 집중해본다.


중국어가 들려와도

무슨 말인지 모르니깐

방해받지 않는다.


그리고 감사하게

중국 정부가

한국과 소통할 수 있는

SNS 접속을 다 차단해 놨기 때문에

내 신경이

생산적이지 않은 곳에

분산될 일도 없었다.


덕분에 미중관계에서

아직은 그래도

미국이 우세하다는 것에서부터,

미중관계에서도

샌드위치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한국의 위상까지

여러 정보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당당하게 중립외교노선을

취할 수 있는 힘이

한국에게는 없었다.


원칙 없이 편 가르기에

합류했다가는 두 강대국 모두에게

눈 밖에 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한국은 경제성장이

가져다준 도취에서 벗어나

철저히 실리외교를 해야 한다.」고

책은 말하고 있었다.


세계 패권 싸움에서

새우등이 터지지 않으려면

‘실리에 입각한 원칙’을

세우는 것이 중요했다.


책은 나에게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흔들림 없는 스스로가 되어라.’

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이것이 바로

내가 국제 관계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이다.


국제관계는

언제나 나라는

개인이 이 사회에서

어떻게 관계를

맺어 나가야 할지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해 주기에

참으로 유의미하다.



멜버른에서 읽은 책은

「여행의 이유, 김영하」이다.


제목을 기가 막히게

잘 지은 것 같다.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사람들이

선택하기에 제격인 책이었다.


특히 나같이 여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은 사람에겐

타인의 여행에 대한

생각이 궁금한 법이다.


게다가 통찰력 깊은

유명 작가의 시각은

더욱더 말이다.


나는 관심 없던 호주에서

좋아하지도 않는 여행을 하며

김영하 씨의 여행 이야기를

내 여행에 대입하고 있었다.


멜버른에서

태즈 마니아로 가기 위해

공항에서

생각 없이

앉아 있다가

책을 펼쳤다.


여행의 목적에 대해

이야기하는

페이지가 나왔다.


책에서 말하는 그것은

'예상치 못한 것들을

경험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도

내 여행의 목적으로

삼아 본다.


여행하는 내내

원치 않은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그 목적을

상기해보는 것을

시작으로

내 머릿속 프로세스를

전개시켜 보았다.


택시 뒷자리에서 요금 올라가는 것만 바라보고 있던 순간


덕분에 공항에서

시티까지 나가는

택시요금이 빠른 속도로

올라가는 것을 보면서도

평정심이 유지되었고,

비 오는 것이 정말 싫은 내가!


비가 오지 않을 때는

무겁게 들고 다닌 우산을

멜버른에 놓고 와서는!


비 오는 태즈 마니아를

우산이 없이

바라봐야만 했을 때!


원래는

엄청 짜증 났어야 하는 상황인데!

그 운치를 즐기고 있는

나 자신과 마주한다.


상황이 어찌 되었든

예상치 못한 일들을

경험하고 있기에

나의 여행에 대한 목적은

달성되고 있었다.


그러니 그것만으로 성공이다.

짜증을 낼 이유가 없었다.

평소에 원치 않은 일에

직면하게 되면

온 에너지를 다 써가며

감정적으로 대하기 일쑤였는데,

덕분에 지난 나의 날들을 반성한다.


엄청난 수확이었다.

배움을 주는 경험을

얻었다는 가치만으로

값어치를 매길 수 없이

소중한 인생의 해프닝들에 대해,

내가 예상하지 못했다고 해서

혹은 원치 않았다고 해서

일희일비하지 않을 것을 다짐해 본다.


'여행이 나를 변화시키고 있는 것인지

책이 나를 변화시키는 것인지'에 대한

정확한 인과관계를 규명할 수는 없었지만,


확실히 낯선 곳에서

책을 읽으며 사유하는 여행은

나를 성장시켜주고 있었다.


「여행의 목적은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고, 자신과 세계에 대한 놀라운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 그런 마법적 순간을 경험하는 것, 바로 그것이다.' - 여행의 이유, 김영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