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세상을 담아내기엔 여행자의 그릇이 작았다.
멜버른에 도착하니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었다.
말이 안 통한다는 것이 이렇게
스트레스받는 일인 줄 몰랐다.
호주에 처음 왔음에도 불구하고,
한국말이 들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대충이라도 알아듣는 영어가 나오니
최소한 무섭지는 않았다.
버스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안내방송에 귀 기울이면 됐었다.
나에게 위협적인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지 아닌지도
지나가는 사람들의 대화를 통해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하물며
어디든 자동화 시스템이
갖춰져 있는
멜버른 시티에서는
누군가와 불필요하게
대면할 필요도 없었다.
멜버른은
나에게 완벽했다.
도착하자마자
들린 편의점에서
내가 중학교 때 즐겨 듣던
추억의 노래
'Jamiroquai의 Canned Heat'가
나를 반겨 준다.
https://youtu.be/_Sedt2LhOmc
원래 내가 이곳에 살았던 것 마냥
음악은 한 방에 나를
멜버른에 적응시켜버린다.
멜버른이 처음인지라
길을 잘 알지 못해서
당황스러울 법도 한데,
구글 지도는 내 발이 되어
올바른 곳으로
나를 안내해주고 있었다.
야라강 주변 수많은 사람들에게
파묻혀 스크램블 교차로를 건너는 데
오묘한 기분이 든다.
내 삶의 주인공은 ‘나’이듯이,
내 옆으로 지나가는 사람의
인생 주인공은
‘그 사람’이라는
사실을 자각한다.
그래서 나는 단지
옆을 지나가고 있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그 사람의 인생 드라마 속에서
엑스트라가 되어 버린다.
우연찮게 내 카메라에
포착된 당신도
내 드라마 멜버른 편에
찬조 출연을 한다.
이 드라마를 시청할 때마다
다시는 마주 할 일 없는
당신이란 사람은
매 번 내 친구가 되어 줄 것이다.
친구가 생겨
삶이 충만해진다.
마치 세상을
다 가진 것과 같은
충만함이다.
그 느낌이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스쳐가는 인연들까지
내 눈에 사로 잡혀버리는
멜버른에서의
여유로움이라고
말하겠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이 멜버른에서의
마음의 평화도
광저우에서의 답답함을
경험한 직후였기 때문에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을.
사실 호주에서는
음식이 내 입에 맞지 않아
고생했었다.
숙소도 12인실
호스텔이었기 때문에
불편했다.
겨울이라
해가 짧았던
어두컴컴한 멜버른의
주변 환경 덕분에
사람들은 10시가 되면
취침을 하기 시작했다.
올빼미인 나에게
일찍 자는 분위기는
낯설었다.
하물며 아침 비행기를 타기 위해
새벽에 일어나야 했을 때도
알람을 설정하는 것조차도
미안해서
깊게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곳에서의
불편했던 상황들은
내 마음속에
저장되어 있지 않았었다.
언제나
절대적인 것은 없었다.
내가 나라는 인생의
드라마를 어떤 의도를 갖고
기획하느냐에 따라
여유로울 수도 있고
각박해질 수도 있는 것이었다.
13년 전 유럽여행을 통해
내가 나에 대해
'여행을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규정했었던 것도
여행이 문제가 아니었다.
나라는 여행자에게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여행을 임하는 나라는
사람의 그릇이
너무나도 작았기 때문에
그 큰 세상을 담아내기가
심히 벅찼던 것은
아니었나 싶다.
드디어
내 인생 드라마 속에서
여행이라는 에피소드를
색 다르게
연출할 시기가
찾아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