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쥐어짠 노동으로 얻은 당신의 돈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카드 명세서가 도착했다.
통장에 낼 수 있는 돈은 한정적인데
카드 값은 언제나 무한대로 밀려온다.
거기다가 주유소에서 기름을 가득 넣었을 때,
15만 원이 선 결제된 후
15만 원이 자동으로 취소되고
기름 넣은 만큼만
재결제가 되어 있어야 하는데,
선 결제 취소가 안 되어 있다.
카드 명세서엔 돈이 이중으로 부과되어 있다.
내가 고급 휘발유도 아닌
경유를 가득 채우고 낸 돈은
바로 21만 6천 원!
카드회사에 전화하고,
카드 값 이체하고
어쩌고 저쩌고 하다 보니
1시간이 훌쩍 넘어있었다.
혹시나, 내지 않아도 되는 돈을
내는 것은 아닌가 싶어
카드 명세서를 꼼꼼히 보기 시작한 것은
얼마 안 된 일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두 번째이다.
그렇다.
난 저번 달부터
이 짓을 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꼼꼼하게 확인하면
1시간 이상이 걸리니
그동안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나에겐 사치였다.
물론 그 시간을 만들 수 없을 정도로
절대적으로 바쁜 것은 아니었다.
돌이켜보면 '연봉을 높여야 해!
앞으로 좋은 곳에 살고 싶어!
멋진 차를 끌고 싶어!'와 같은
당장 현재 상황과는 거리가
먼 미래만 바라보면서
달려왔던 것 같다.
분명히 나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는데
장애물에 걸려 넘어진 것 같은
이 허무함은 어찌 설명할 수 있을까?
‘눈 감고 달리다 벽에 부딪쳤던 달려라 하니’가
되어 버린 느낌이었다.
나는 현재를 점검하지 않고
미래만을 위해 전력 질주하면서
계속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를 하고 있었다.
21살에 운전면허를 땄다.
운전은 나에게 신세계였다.
차라는 나만의 공간에서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드라이브하는 것만큼 신나는 일도 없었다.
운전의 행복을 막 맛봤을 때,
엄마가 해외여행을 간 적이 있다.
1주일 정도 엄마 차를 쓸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다.
그런데 엄마한테 차 열쇠를 달라하면
분명히 안 줄 것을 알았기 때문에
엄마가 짐 싸고 있는 동안에
몰래 차키를 복사해왔다.
그 후 엄마는 원래 차 키를 들고 떠나셨고,
나는 그동안 복사한 차키로
자유롭게 운전의 낭만을 만끽했다.
엄마가 돌아와서
'가득이었던 기름이 다 사라졌다며
차가 한 자리에 계속 오래 세워져 있으니
누가 기름 빼간 걸까?'라고 말할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내가 이런 뜬금없는 고백을 하는 이유는
그 정도로 나는 운전하는 것이
좋다는 걸 말하기 위함이다.
운전이 재밌다 보니
자연스럽게 좋은 차를 끌고 싶다는 생각이
남들보다 컸던 것 같다.
31살에 차를 샀다.
물론 내가 감당하기에 벅찬 차를 샀다.
난 이 시대를 대표하는 카푸어가 되었다.
내가 짊어져야 하는 부담감을 외면한 채
그 차 브랜드 이미지가 마치 나 인양
4년 동안 나는 참 트렌디하게도 살았다.
돈을 버는 족족 차 할부금에 갖다 바쳐야 했다.
소비 패턴이 차를 끌고 다니는 것에
맞춰져 있다 보니,
서울에 계신 주차장 소유주 분들께
많은 힘이 되어 드렸고,
교통 범칙금으로도
나라 발전에도 크게 기여를 했다.
내 노동의 결과물들은
그렇게 내 창고에 쌓이는 것이 아니라
남의 창고에 쌓여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