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따져보지 않고 바로 시작해 버리다 보니...
지인들에게 칭찬받는 것이 하나 있다면
나의 추진력이다.
한 가지 생각에 꽂혔을 때
바로 저돌적으로 밀어붙이는 것이
내 장점이라면
단점은 성급함이다.
결국 나는 언제나 빠르게 결단하고 행동하는데
그 결과가 좋으면 추진력이라는 이름이 붙고,
그것이 나쁘면 성급함이라는
명찰이 붙는 것일 뿐이다.
27살 기자를 준비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갈팡질팡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언론고시 스터디 모임에
추진력 있게 가입했다.
결국 모임에 성실히
참여하지 못했던 나에게
스터디 리더는
결국 돌직구를 던졌다.
'27살의 책임감이 필요한 시점이네요'
35살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책임감을 탑재하지 못했는데,
27살엔 그 책임감이 있었을 리 만무하다.
옛날부터 지금까지
책임지지도 못할 일을
성급하게 결정해버린 탓에
감당하지 못할 비난과 자괴감으로
언제나 내 어깨는 무겁게 쳐져 있었다.
2019년 6월 9일.
난 내일 호주로 여행을 떠난다.
한국은 여름으로 접어드는데,
계절이 반대인 호주에 가기 위해서는
코트와 패딩을 챙겨가야 한다.
겨울옷들이 평택에 살고 있는
동생 집에 있기 때문에
차를 끌고 그것들을 가지러 간다.
그런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경부고속도로로 진입하기 일보 직전에
내 차 모니터에 경고 메시지가 들어왔다.
'시동을 거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3분 안에
시스템이 꺼집니다.'
분명히 시동을 걸고
도로에서 달리고 있는데
시동을 걸으라고 한다.
이 상태로
경부고속도로에 진입하면
큰일 나겠다 싶어
긴급출동 콜센터로
전화를 건다.
하지만 보증기간이 끝났기 때문에
긴급출동을 하지 않는다는
답변이 돌아올 뿐이었다.
일단 방전일 수 있으니
20분 정도 운전해보고
계속 그 경고등이 들어오면
발전기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했다.
지시대로 따랐고 경고 메시지는
역시나 사라지지 않는다.
여기서 다시 나의 성급함이 발동한다.
내일 불편한 마음 상태로
여행을 떠나고 싶지 않기에
지나가다 보이는
공업소에 바로 들어가 버린다.
일요일이기 때문에
공식 서비스 센터는 하필 휴무이다.
그래서 보험회사 견인차를
불러도 바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지금 당장
내 차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다.
공업소에 들어갔더니
발전기의 문제인지 아닌지를 알려면
배터리를 교환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작년 서비스 센터에서
배터리를 교환해야 할 시기이긴 한데
몇 달 더 연명 가능하니
문제가 될 때 다시 오라고 했었다.
그래서 배터리 문제일 것이라고
혼자 성급하게 단정 지어 버린다.
적정 가격이 얼마인지도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그냥 무조건 바꿔달라고 한다.
왜냐하면 빨리 이 문제를 완벽히 해결하고
난 내일 호주로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배터리를 교환했다.
그런데 내 예상과 달리
시동은 걸리지 않는다.
역시나 발전기 문제였다.
사실 20분 동안 달렸음에도 불구하고
경고등이 사라지지 않았으니
발전기가 문제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전문가의 의견을 무시한 채
4년밖에 안 된 차의 발전기가
고장 났을 리가 없다는
나만의 직관으로 문제를
성급하게 판단해 버렸다.
빠른 해결을 위해 몇 시간 동안
발을 동동 굴렀음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변한 것이 없었다.
배터리 값보다도 약 10배가 비싼
발전기 가격에 추가 비용을 지불할 뿐이었다.
나는 좀 더 사용할 수 있는 배터리를 폐기했다.
성급하게 배터리를 교체하느라 적정 가격 보다도 더 높은 값을 치러야만 했다.
결국 돈은 돈대로 쓰고
차 문제를 온전히 다 해결하지 못한 채
불편한 마음으로 여행을
떠나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카드로 발전기 값을 결제했다.
(몇 달에 거쳐 그 빚을 갚았다.)
27살에 추진력과 성급함을
혼동하지 말라는 경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뭐가 문제인지도 모른 채,
그 짓을 35살까지
반복하고 있었다.
그런데 감당할 수 없는 비용을
치르고 나서야 그것이
문제였다는 것을 자각한다.
그래서 그런지 내 통장잔고에는
돈이 한 푼도 남아 있질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