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밖에서 무너져 버린 10대의 패기

패기가 컬처쇼크와 만났을 때!

by 미쓰양푼이
21살. 일본으로 어학연수를 갔다.

사촌오빠가 일본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어서

입주 전에 오빠네 집을 방문했다.


오빠가 고등학교를 자퇴했기 때문에

내가 고2 때 자퇴가 하고 싶었는지,

오빠가 일본에 있었기 때문에

내가 일본에 간 것 인지는 모르겠으나,


오빠와 나 사이엔

지우고 싶지 않은 추억과

지우고 싶은 사건들이 많다.


왜냐하면 우리는 같은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한 동문이기 때문에

얽히고설킨 이야기가 많다.


두 살 터울인 오빠는

내 친구들의 친언니, 친오빠들과 친구였기 때문에, 우리가 사촌지간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동네를 지나가면 오빠 친구들이

누구 동생 아니냐면서 아는 척을 했다.


웃긴 건 우리는 학교에서 오며 가며

인사를 한 번도 한 적이 없다는 거다.


두 살 밑인 내 친동생과도

마찬가지이다.

내 친구들도

내 동생이 지나갈 때마다

누구 동생 아니냐며

그렇게 말을 많이 걸었는데..

내 동생도 그런 상황을

참 싫어했다.


친구들 사이에서 평판 좋던 오빠 얼굴에
내가 침을 뱉은 적이 있다.


내가 오빠 친구 앞에서

실수를 한 적이

진짜 딱 한 번이 있는데

그 일로 인해 오빠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개념 없는 애로 낙인이 찍혀버렸다.


내가 잘못을 한 것은

인정을 한다.


하지만 그 실수를

직접 본 오빠 친구가

'모터 달린 입'을 가지고 있어서

여기저기 다 이야기하고 다닌 건지,


한 사람한테

이야기한 것이

그렇게 일파만파로 퍼져

나간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난 내가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개념 없는 사람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이것도 오빠한테

직접 들은 것이 아니라

오빠랑 중3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 언니한테 들은 사실이다.


그만큼 우리 동네는 좁았다.


그런 좁은 동네를 벗어나

더 넓은 세상으로 떠난 것이니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것들이

많지 않을 수가 없었다.


첫날부터 나를 반겨준 것은

내 검지 두 개를 붙여놓은 것 같은 크기의

대왕 바퀴벌레였다.


나 홀로 집에 있는데

갑자기 집에서

푸드덕하는 소리가 난다.


엄청난 크기의 바퀴벌레가

미친 듯이 날아다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컬처 쇼크’였다.


그 정도 크기의 바퀴벌레도 처음이었고,

날아다니는 것 역시 그동안 본 적이 없었다.


내가 움직이면 갑자기

그 아이가 나한테 돌진할까 봐

밖에 나가버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인적이 드문 암울한

동네 분위기를 감지했기에

늦은 밤에 나갈 수도 없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나는 예전에 오빠가 키우던

푸들 강아지 '샐리'가 되어

오매불망 오빠를 기다릴 뿐이었다.


오빠가 들어오자마자 ‘샐리’처럼

현관문 앞에 있는

나를 보고 깜짝 놀란다.


바보같이 왜 그렇게

처량하게 앉아 있느냐는 것이었다.




고3 야간 자율 학습시간이다.

창가 쪽에서 아이들이 웅성웅성거린다.

왜 그런지 봤더니

복도 밖에서 죽은 바퀴벌레가

날아왔다는 것이었다.


그 아이가 살아 움직이고 있지 않은데도

우리 반 친구들은

그 존재 자체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급기야 친구들은 그 주변을 피해

책상까지 옮기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을 바라보면서

저 죽은 것이 혼자 날아올 수가 없었을 텐데,

어떻게 저 아이가 이곳으로 올 수 있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우리 학교는 남녀공학이었지만,

남녀 분반이었기 때문에

직감적으로 건너편 남학생 반에서

던졌겠구나 싶었다.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쓰레받기로 그것을 쓸어 담아

똑같이 그쪽 반 창문으로 던져 버렸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그 바퀴벌레가

어떤 한 남학생 머리 위로

정확히 떨어졌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 장면을

그 반 담임 선생님께서 정확히 포착하신 것이다.


바퀴벌레가 학생 머리로

떨어진 것을 보신 이상

선생님께서는 우리 반에 오셔서

확인할 수밖에 없으셨을 것이다.


"이 반에 바퀴벌레 던진 사람 있어?"


순간 마음이 덜컹했지만

당당했다.

왜냐하면 우리 반도

피해를 봤기 때문이다.


"제가 던지긴 했는데요.
7반에서 먼저 던져서 던진 거예요!"


"그래? 알았어!"


선생님께서는 쿨하게

바로 7반으로 돌아가신다.


사실 앞 반에서 던졌다는

정확한 증거가 없었으니

그 순간 조마조마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몇 분 뒤 선생님께서는

두 명의 남학생을 데리고

우리 반으로 다시 오셨다.


"얘네 둘이 던졌다고 하니까
너네가 시키고 싶은 것 다 시켜."


뻘쭘해하는 두 남학생이

교탁 앞에서 쭈뼛쭈뼛 서있다.


우리는 그들에게 노래를 시켰다.

민망해하며 들어오던 수줍던 모습들은

온 데 간데 사라지고,


드렁큰 타이거

'남자기 때문에'라는 노래를 부른다.



https://youtu.be/SareAFGSzLs

2003년 고3이었던 우리들의 추억의 음악


정확하게 말하면 랩이다.

"절대로 울지 않아.
난 남자기 때문에.
너 대신 내가 맞아.
난 남자기 때문에."


40명의 여학생들이 모여 있는 반에

남학생 둘이 와서

'남자기 때문에'를 외치며

패기 넘치게 노래하는데,

어느 누가 좋아하지 않을까?


우리 반 전체의 웃음소리가

3층 전체를 발칵 뒤집어 놨다.


그랬더니 7반에서도

바퀴벌레 던진

여학생을 부르는

환호성이 들려온다.


흥부자인 나는

가서 춤출 의향도 내심 있었지만,

7반 선생님께서 한껏 달아 오른

그 분위기를 정리하셨다.


왜냐하면 우리는 고3이었기 때문이었다.

계속 놀 수가 없었다.




그때 그 공간에서

같이 공부하던 친구들은

각자의 꿈을 향해

서로 다른 학교, 다른 과로 진학했다.


나도 고등학교 때 세웠던 목표를 향해

이곳 일본에 와있다.


그런데 첫날부터 쉽지 않았다.


교실로 날아 들어온 바퀴벌레를

반대표로 쓸어 담아 다시 던지던

나의 10대 때 패기

처음 본 대왕 바퀴벌레 앞에서

와르르 무너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