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내린 첫눈.
가을의 끝자락이란 생각은 했지만, 코끝이 시리다거나 털부츠 안 발가락을 웅크려 종종거릴 정도로 춥지 않았기에 갑작스러운 느낌이었다. 한통의 전화 예고도 없이 비밀번호 누르고 들어오는 시어머니를 맞닥뜨린 것처럼.
그만큼 무방비 상태에서 맞이한 첫눈은 그야말로 대설이었고, 지역마다 편차가 있었지만 폭설 주의보가 내리는 등 하루가 온종일 시끄러웠다.
종일 오락가락하는 날씨. 눈발이 날렸다가 우박이 쏟아지기도 하고, 해가 비추는가 싶더니 쌍무지개가 뜨기도 했다. 정말이지 변덕스러운 날, 유난스레 해야 할 일마저 손에 안 잡혔다. 어영부영 한나절이 지나고, 아이들이 학원 수업을 마치고 순차적으로 들어왔다. 아니, 들어왔다기보다 완전무장을 하고 나갔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가방만 던져놓고 부츠에 목도리에 장갑 끼고 쏜살같이 나갔으니 말이다.
세상이 하얀 눈으로 온통 덮였는데 얼마나 놀고 싶었을까? 눈싸움도 하고 눈사람도 만들고. 친구와 함께 공들여 눈을 굴리더니 제 키만큼 커다란 눈사람을 완성했다. 어른의 도움 없이 아이들 힘만으로 만든 첫 눈사람이었다. 얼마나 뿌듯해하는지, 내 손을 잡아끌며 조잘조잘 설명하기 바쁘다.
아이와 맞잡은 손에서 찬기가 느껴졌다. 손끝이 빨개지며 시리도록 익어가도 집으로 후퇴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래 한번 실컷 놀아봐라. 한참을 눈밭에서 놀고, 눈사람과 사진도 찍고. 늘 조용했던 작은 놀이터에 왁자지껄 아이들이 몰렸다.
"안돼! 만지지 마!"
"그래, 우리가 만든 거야. 건들지 마!"
"한번 만지면 뭐 어때?"
눈사람을 사이에 두고 신경전이 벌어졌다. 큰 눈사람을 만들기엔 엄두가 안 났는지, 우리 아이들이 만든 눈사람 곁을 맴돌며 시샘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치사하네. 이따 저거 부숴버리자!
흥!
그냥 하는 소리겠거니, 부러워서 하는 소리겠지 하며 식식거리는 아이들을 달래 집으로 들어왔다. 꽁꽁 언 손발도 녹이고 저녁을 먹어야 했기 때문이다. 뚝딱 저녁상을 차려 아이들을 불렀는데,
"어? 쟤네들이 진짜 우리 눈사람 뿌셔-"
식탁에 앉으려던 큰 녀석이 어느 틈에 창가로 갔는지, 놀이터를 내려다보며 안절부절이다.
"와아, 눈쇄살인마네. 나빴다. 진짜!"
둘째도 큰애 옆에 붙어 덩달아 식식댄다. 슬쩍 다가가 창밖을 내려다보니 이미 머리와 몸이 분리된 눈덩이는 더 이상 눈사람이라 부르기 민망할 정도였다.
당장 뛰어내려 가 한소리 하겠다는 아이들을 진정시키고, 눈사람을 만들고 난 뒤에 벌어지는 상황을 우리가 다 통제할 수는 없다고 일러줬다. 그러고 나서 그런 행동으로 인해 알게 모르게 슬퍼하는 누군가가 생긴다는 사실을 기억하라고 했다. 지금의 너희들처럼.
어떻게 참냐고, 엄마 같으면 기분 안 나쁘냐고 묻는 아이들에게 내가 말해줄 수 있는 건 이게 최선이었다. 당장 내려가봤자 싸움이 될 게 뻔한데 어떤 부모가 싸움을 부추기겠나. 셋이 같은 마음으로
"나쁜 녀석들, 똥이다 똥!"
욕 한번 해주고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저녁을 먹었다. 그런데 왠지 미적지근한 기분이 들었다. 나 역시 그 아이들의 행동이 내심 못마땅했기 때문이었다.
눈사람 신경전이 있은 다음 날.
엘리베이터를 타는데 한쪽 벽에 종이 한 장이 붙어 있다. 큰아이가 아는 눈치인지, 어제 눈사람을 같이 만든 친구가 적어놓은 호소문이라 했다. 줄노트에 반듯하게 써 내려간 글은 자신의 서운한 감정 표출부터 눈사람을 부순 친구를 향한 훈계까지 완벽했다.
그 호소문을 읽으면서 후회가 조금 밀려왔다.
나는 왜 아이의 표출하는 분노를 막아 세우기만 했을까. 아이들 어떻게 행동하는 게 좋을지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면 내 아이들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 어른으로서 사건을 현명하게 해결할 방법을 아이들에게 제시했다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저녁, 큰 아이가 당장 내려갔다 해도 주먹다짐을 하거나 싸울 위인이 아닌 걸 알면서, 혹시나 하는 그 마음에 아이를 완전히 믿어주지 못했던 거였다.
어떤 방식이 옳은 선택인지 판가름할 기준은 없고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또박또박 적어 내려간 노트 한 장으로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이렇게 아이들을 통해 하나 또 배워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