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페(Sope)를 먹어보셨나요?

내가 맛보는 것을 당신도 맛볼 수 있다면

by 제이조이



If you could see what I see, you'd be blinded by the colours

내가 보는 것을 너도 볼 수 있다면 넌 아마 그 색깔에 눈이 멀어버릴 텐데.


Kacey Musgraves의 Rainbow를 흥얼거리면서 식탁을 차려요. 오늘의 메뉴는 소페(sope)예요. 갓 구워 노르스름한 또띠아 위에 올려진 검은 콩 페이스트와 그린토마토 소스,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치즈, 딱 맛있게 구워진 스테이크, 그 위에 올린 신선한 빨간 토마토와 하얀 양파, 초록의 청양고추, 고수, 싱그러운 연두색의 아보카도가 색의 향연을 이뤄내고 있어요. 방금 따라낸 시원한 맥주의 하얀 거품도 함께요. 칸쿤의 파란 바다와 부서져내리는 하얀 파도가 생각나요. 노래를 계속 불렀어요.


Yellow, red and orange and green, and at least a million others
노란색, 빨간색, 주황색과 초록색, 그리고 적어도 백만 개의 다른 색깔들.






먼저 옥수수 반죽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요. 일반 또띠아보다는 도톰하게, 그리고 가장자리를 손으로 조물조물해서 얕은 턱을 만들어줘야 해요. 이렇게 생긴 모양을 소페라고 불러요. 납작한 접시 같은 소페를 잘 구운 다음 식지 않게 오븐에 보관하는 동안 콩을 요리할 거예요. 사실 저는 콩밥도 콩자반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 알피가 콩 한 봉지를 사 왔을 때 시큰둥했어요. 알피는 저의 미적지근한 반응에는 상관없이 잘 씻은 콩을 찬물에 넣고 몇 시간 정도를 불렸어요. 그러고는 프라이팬에 볶은 양파와 함께 콩을 넣고 뭉근하게 끓여내는데 이때 소금을 좀 넣어요. 잘 저어가면서 익히다 보면 팥죽 같은 제형이 되는데 그러면 다 된 거예요. 살짝 찍어먹어 보니 제가 좋아하는 짭짤한 맛이에요! 음, 이건 먹을 수 있겠어요. 미국식 아침식사로 흔히 먹는 달큰한 맛이 아니어서 다행이에요.







자, 이제는 소페 위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부드러운 콩을 한 스푼 떠서 잘 펴 발라요. 그 위에는 그린 토마토소스를 충분히 얹고요, 아까 작게 썰어둔 하얀 양파를 그 위에 뿌려요. 그리고 고다 치즈를 얹어서 오븐에 다시 넣는 거예요. 멕시코에 있었더라면 와하카(Oaxaca) 치즈를 넣었을 텐데 아쉬워요. 와하카 치즈는 쉽게 말해 스트링치즈인데 멕시코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반 키로 씩 사다 놓고 매일 먹곤 했어요. 신선한 치즈를 바로 잘라 저울에 무게를 달아서 파는 단골 치즈가게가 있었거든요. 넓적한 치즈를 쭉 찢어서 쫄깃한 결을 음미하면서 먹는 맛이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멕시코 사람들이 치즈를 엄청나게 많이, 또 다양하게 먹는다는 사실 알고 계셨어요?







멕시코 식당에서 흔히 먹는 소페에는 스테이크를 올리지 않는대요. "이건 아주 고급스러운 버전이야" 하고 알피가 말했어요. 스테이크를 한 입 크기로 길게 썰어서 잘 녹은 치즈 위에 올리고 제가 가장 좋아하는 살사 'pico de gallo(피코 데 가요)'를 만들어요. 토마토와 양파, 청양고추, 고수를 썰어서 라임즙을 뿌리고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하면 되는데 잘 익은 아보카도가 있어서 함께 넣었어요. Pico de gallo는 닭의 부리라는 뜻이에요. 엄지와 검지 손가락으로 집어먹어서 그 모양이 꼭 닭의 부리 같다고 했던 것 같아요. 이 살사를 소페 위에 듬뿍 얹으면 완성이에요.







한입 베어 물었더니 쫀득한 또띠아와 부드럽고 짭조름한 콩, 고소한 치즈, 그 위에 올려진 육즙이 풍부한 스테이크, 입맛을 산뜻하게 잡아주는 피코 데 가요가 입 안에서 폭죽을 터트리는 맛이 나요. 입 안에서 무지개 파티가 일어나고 있는 느낌이에요. 그동안 멕시코 요리를 해 먹으면서 "이건 내일 당장 만들어서 팔아도 되겠다" 하는 말이 나왔던 건 이 소페가 처음이에요. 소스가 흘러서 팔꿈치까지 내려가는 줄도 모른 채 먹는 데에만 집중했어요. 머릿속으로는 우리의 소페가게를 그리면서요.


언젠가 정말 우리만의 공간을 갖고 싶어요. 그곳에서 브런치도 팔고, 쿠킹클래스도 하고, 스페인어 모임이나 멕시코 독립기념일, 죽은 자 들의 날(Día de muertos)을 기념하는 파티도 열고, 멕시코 여행 강연도 열거예요. 늘 '언젠가'라고 생각했던 일인데 소페를 먹다 보니 마법처럼 모든 게 선명하게 그려지는 것 같고 뭐랄까, 정말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몽글몽글 들어요.


소페는 용기를 주는 음식인가봐요.




요리할 때 가장 행복한 멕시코 남자와 맛있게 먹고 글 쓰는 게 세상 가장 즐거운 한국 여자가 함께 삽니다. 영화 <줄리 앤 줄리아>에서 영감을 얻어 다이애나 할머니의 멕시코 가정식 레시피를 매일 하나씩 만들어 감탄하며 먹고 기록합니다.

Recipes from Diana Kennedy X Alfie cooks & Jay wri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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