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에게 뺏기지 않은 토요일에는

멕시코 가정식 엔칠라다(enchilada) 만들기

by 제이조이



제대로 된 무더위는 아직 맛도 안 본 것 같은데 9월이 성큼 찾아왔어요. 알피는 조금만 더 기다리면 홍시를 먹을 수 있어서 벌써부터 행복하대요. 홍시 귀신이거든요. 그러고 보니 알피가 한국에 온 지 만 일 년이 다 되어가요. 우리가 사계절을 온전하게 같이 보낸 건 처음이에요.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면서 철마다 다른 풍경을 마주하고, 제철 과일을 사 먹고, 갑자기 쏟아진 비에 홀딱 젖기도 하고, 추워서 달달 떨기도 하고, 이마에 따뜻하게 햇살을 담뿍 받으면서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벌써 한 바퀴를 돌아 다시 9월을 맞이하게 됐네요. 마음 가는 대로 이곳저곳 색칠하듯이 살았던 지난날들도 가끔 그립지만 따뜻한 중심이 있는 지금의 일상도 좋아요.


그나저나 일상의 자유로움은 언제 되찾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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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칸쿤배낭여행. 코로나가 단지 맥주이름이었을 때가 그립다



코로나 때문에 되는 일이 없는 요즘이에요. 예매했지만 취소되어버린 공연만 몇 개인지 몰라요. 요가랑 근력운동도 한동안 열심히 하고 있었는데 이젠 집에서 하는 방법밖에는 없어 보이고요. 도서관은 언제 마지막으로 갔는지 기억도 안 나고, 이번 주부터는 어학원 수업도 화상으로 전환되면서 수업도 반토막이 났어요. 그렇지만 한가했던 토요일, 알피랑 하루 종일 시원한 집에서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그레놀라를 볶고, 엔칠라다(Enchilada)를 입안 가득 우물거리며 좋은 영화를 두 개나 연달아 보는 재미만큼은 코로나에게 뺏기지 않았죠.






엔칠라다 만드는 법을 알려드릴게요. 또띠야 안에 치킨이나 치즈를 넣고 돌돌 말거나 접어서 매콤한 살사(소스)를 뿌려먹는 요리예요.


먼저 또띠아부터 만들어요. 이번에는 말린 옥수수를 처음부터 갈아서 준비하지 않고, 시중에 파는 옥수수 가루를 물과 함께 반죽해서 또띠아를 만들었어요. 이게 조금 더 얇고 연한 느낌이라 튀겨야 하는 음식에 더 잘 어울리더라고요. (만들기 간편한 건 말할 것도 없고요!) 반죽을 손으로 둥글린 다음에 또띠야 프레스에 올려놓고 꾸욱 눌러요. 반죽이 너무 질면 떨어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손에 묻지 않을 정도여야 해요. 제가 동그랗고 납작한 또띠야를 떼어내면 알피가 바로 받아서 팬에 구워요. 앞 뒤로 1분 20초씩 구우면 노릇노릇 맛있는 또띠야가 탄생해요. 또띠야를 구울 때마다 신기한 건 안쪽으로 따뜻한 공기가 들어가면서 그 얇은 반죽이 공처럼 부풀어 오르는 거예요.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직접 반죽을 치대고 눌러서 만드는 뿌듯함과 기대감도 함께 부풀어 올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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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랑 너의 사랑 또띠야




이번 엔칠라다는 닭고기를 넣을 거라서 닭을 미리 삶아뒀어요. 제가 닭 뼈를 바르는 동안 알피가 살사를 만든다고 재료를 준비해요. 치킨 스톡(닭 육수)은 만들어졌기 때문에 같이 끓인 양파와 마늘을 건져서 블랜더에 갈 거예요. 그런데 냉장고를 뒤지던 알피가 뭐라고 해요.


"자연아. 실란트로(고수) 없어요"


고수를 별로 안 좋아했던 때가 분명히 있었던 것 같은데, 멕시코 음식을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먹게 되었던 것 같아요. 고수는 집에서 걸어서 십 분 거리인 작은 야채가게에서 싸게 팔아요. 바람도 쐴 겸 제가 고수를 사러 나갔어요. 상쾌한 바람을 쐬고 싶었으나 이날은 얼마나 습하고 더운지 온풍기 바람 같은 게 불어오더라고요. 횡단보도를 기다리는 대신 그나마 시원한 지하철역을 통과해서 천천히 걸었어요. 드디어 가게에 도착했어요. 그러나 고수가 없네요. 이게 무슨 일인가요. 그래도 간 김에 뭐라도 사 와야 할 것 같아서 아침으로 먹을 사과 한 봉지와 애호박을 샀어요. 집으로 돌아와서 알피에게 슬픈 소식을 전했죠. 뭐 어쩌겠어요. 없으면 없는 대로 만드는 거죠. 다시 옷을 편하게 갈아입고 닭 뼈를 마저 바르려고 하는데 알피가 말했어요.


"자연아. 매운 고추 없어요"


아니 진작 말할 것이지. 알피는 이번엔 자기가 다녀온다면서 주섬주섬 앞치마를 벗어요. 에라이, 땀 흘린 김에 제가 다시 가는 게 낫죠. 신발을 신고 다시 야채가게에 가려다가 혹시나 해서 집 앞 편의점에 들렀어요.


"청양 고추 없죠?"
"여기 있는디?"


멋진 편의점이에요. 청양 고추 한 팩을 들고 잽싸게 집으로 올라왔어요. 알피 눈이 동그래졌어요.


"봤지? 한국이 이런 곳이야"


알피가 살사를 만드는 걸 구경했어요. 아까 말했던 치킨 스톡 250ml, 양파 4분의 1쪽, 마늘 두 개와 청양고추 두 개, 그리고 그린 토마토 250그램을 블랜더에 넣고 가는 거예요. 그린 토마토(tomatillo)는 어디서 났냐고요? 한국에는 없는 품종이라 예전에 해 먹었던 Puerco en pipian에는 이미 만들어진 그린 토마토 살사 소스를 넣었거든요. 이번에는 캔에 들은 그린 토마토를 주문해봤어요. 방금 따온 싱싱한 토마토는 물론 아니지만 대안으로는 나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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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matillos! 캔으로나마 만나서 반가워




이제 거의 다 되어가요. 둘 다 배가 고파서 손놀림이 바빠졌어요. 아까 구워두었던 또띠야를 꺼내요. 프라이팬에 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또띠야를 하나씩 앞 뒤로 기름에 3초 정도씩 담갔다가 건져요. 튀긴다고 하기엔 살짝 적시기만 하는 느낌이에요. 그리고 알피에게 재빨리 건네주면 알피가 또띠아에 그린 살사를 충분히 묻히고 안에 닭고기를 채우고 나서 반으로 접어요. 순식간에 한 접시에 세 개씩 그득하게 채워졌어요. 남은 살사를 자작하게 뿌린 다음에 사워크림을 뿌리고 리코타 치즈를 적당히 얹어요.


잠깐. 그 위에 채 썬 생양파를 가득 올리기 전에는 완성이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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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칠라다(Enchilada)를 만들어 먹는 토요일 오후




살사에 고수가 빠지니 알피가 원했던 그 맛은 아니었나 봐요. 전 그저 맛있었어요. 담백한 닭고기와 고소한 또띠야, 그리고 매콤하면서도 새콤한 그린 살사의 조합이 상상이 되시나요. 그리고 홈메이드 사워크림과 리코타까지. 사실 세 개씩이나 먹기엔 살짝 지루할 수도 있는 맛인데 생양파가 입맛을 계속 돋워주어서 눈 깜짝할 사이에 접시를 비웠어요. 물론 살사까지 싹싹 긁어먹었죠.



+ 이번엔 다이애나 할머니의 레시피 대신 알피 레시피로 만들었어요. "왜?" 하고 물어봤더니 "너도 밥 하면서 레시피 안보잖아"라고 대답하네요.


Well, fair enough.



요리할 때 가장 행복한 멕시코 남자와 맛있게 먹고 글 쓰는 게 세상 가장 즐거운 한국 여자가 함께 삽니다. 영화 <줄리 앤 줄리아>에서 영감을 얻어 다이애나 할머니의 멕시코 가정식 레시피를 매일 하나씩 만들어 감탄하며 먹고 기록합니다.

Recipes from Diana Kennedy X Alfie cooks & Jay writes

Instagram @jogum_stra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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