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피의 다정한 식탁에서 글쓰기

초여름 - 가을의 기록을 마치며

by 제이조이



정말이지 요즘은 빛과 색에 흠뻑 빠지기 좋은 나날들이에요. 멕시코 음식, 아니 멕시코를 사랑하는 이유는 너무나 많지만 그중에서도 색깔 때문이에요.


그동안 제 몸과 마음이 거쳐온 여러 나라들을 기억하는 방식은 다 달라요. 미국은 활기와 공기의 냄새로, 유럽 쪽 나라들은 공간적인 느낌과 온도로, 호주는 소리와 마음속의 어떤 아늑함으로 기억해요. 멕시코는 단연 색깔이에요. 눈을 감고 멕시코를 떠올려요. 알록달록한 색깔의 낮은 건물들을 걸어서 지나 자주색 꽃이 만발한 어떤 가게의 입구에 도착해요. 좋아하는 식당이에요. 빛이 잘 들어 환한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으면 곧 테이블 위에 여섯 가지 다른 색깔의 살사 소스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노란 또띠야와 함께 색의 향연이 가득 차려져요. 안타깝게도 코로나가 진정될 때까지는 멕시코에 가지 못하겠지만, 멕시코 음식은 집에서 해 먹을 수 있어요. 알피가 있으니까요.






멕시코 음식을 본격적으로 해 먹기 시작한 건 지난 6월부터예요. 그 전에는 한국에 처음 온 알피가 먹어 봐야 할 한국 음식이 넘쳐났으니 멕시코 음식 생각이 나지 않았죠. 가끔 "알피야 멕시코 음식 그립지 않아?" 하고 물으면 알피는 고개를 저으며 "불고기도 맛있고, 잡채도 맛있고, 밥이랑 반찬이랑 너무너무 좋아"라고 대답했어요. 그러다가 어느 날 홍대에 놀러 갔다가 오랜만에 멕시코 식당에서 타코를 먹고 돌아오는 길에 우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외쳤어요.


"멕시코 시장에서 파는 옥수수 또띠아로 만든 진짜 타코 먹고 싶다"

"나도! 라임도 뿌리고 여러 가지 살사도 막 듬뿍듬뿍 얹어서 먹고 싶어"


그래서 우리는 집에서 멕시코 가정식을 만들어 먹게 되었죠. 다이애나 할머니의 레시피를 따라 영화 <줄리 앤 줄리아>처럼 알피가 하루에 하나씩 요리를 하고 저는 그걸 글로 써서 매일 포스팅하는 것이 저희의 프로젝트였어요. 글을 쓰는 속도가 너무 느려서 그동안 만든 모든 요리를 다 소개하진 못했지만요. 20분이면 꼴깍 해치워버리는 이 맛있는 요리들을 준비하는 데는 세네 시간, 글로 쓰는 데는 사나흘이 걸리곤 해요.(물론 글 쓰는 자가 게으른 탓) 다이애나 할머니의 레시피를 거쳐 알피의 손을 통해 만들어진 요리를 눈으로, 손으로, 입으로 한껏 즐긴 후 제가 가진 단어라는 재료들로 다시 요리하는 건 참 근사한 경험이었어요. 물론 앞으로도 이어질 이야기들이고요.


딱 하나 불만이 있다면, 초여름에 시작한 이 프로젝트 덕에 올 겨울 맞는 바지가 없다는 거예요.


그래도 좋아요.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었어요.




<알피의 다정한 멕시칸 식탁>은 앞으로도 꾸준히 차려집니다. 곧 이어질 겨울 이야기도 기대해주세요. 늘 맛있게 드셔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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