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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자연 Nov 08. 2016

멕시코 도로 위의 재주꾼들

빨간 불이 켜지면 그들의 퍼레이드가 시작된다




도로에 빨간 불이 켜지고 차들은 일제히 정지한다. 

지금이다. 


저글링을 하는 꼬마, 양 손에 손걸레와 물뿌리개를 들고 돌아다니며 멈춰 선 차를 닦는 소년, 자동차 사이사이를 다니며 츄러스를 파는 청년, 갓난아이를 등에 업고 손을 벌리며 구걸을 하는 아주머니. 


이들은 갓길 또는 안전지대에서 기다리다가 빨간 불이 켜지면 저마다의 퍼레이드를 시작한다. 









내가 만난 도로 위의 재주꾼들



어느 나라를 가도 노숙자들은 꼭 있지만 유난히 멕시코에서는 큰 도로 한가운데서 이들을 만난다. 차들이 멈춰 선 그 몇 분을 이용하여 최대한 돈을 버는 것이다. 도로에서 위험하지 않을까 싶지만 이들은 자신의 무대에서 그다지 내려올 생각이 없어보인다. 츄러스나 싸구려 비닐 가방, 장난감 등을 파는 사람들은 만물상 정도로 칭하면 되지만 다른 이들은 호칭이 좀 고민이다. 노숙자라고 부르기에는 이 사람들이 실제로 거처가 있을지도 모르기에 적합하지 않다. 그렇다고 편의상 거지라고 부르자니 나름대로의 특기를 살려 저글링이든 마술쇼든 보여주면서 구걸을 하는 사람들에게 예의가 아닌 것 같다. 그래서 난 이들을 도로 위 재주꾼이라고 부른다.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교차로에 늘 나와있는 엄마로 보이는 여인과 꼬마가 있다. 구걸에 호소력을 더하려고 일부러 자기 애도 아닌 애를 데려다가 함께 구걸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다. 그러나 엄마와 아이 모두 윗입술이 위로 올라가 다물어지지 않는 모양이 영락없이 똑같은 모녀지간이 분명했다. 신호가 바뀌어 차들이 서면 이들은 재빨리 도로 한복판에 선다. 체구가 작은 여인은 동그랗고 단단한 어깨 위에 아이를 올린다. 곧 아이는 오렌지만 한 공 세 개로 능숙하게 저글링을 한다. 앗, 아이가 실수로 공 하나를 바닥에 떨군다. 엄마는 별 일 아니라는 듯이 발로 떨어진 공을 툭 쳐 올려 손으로 척 잡아 아이에게 올려준다. 묘기가 끝나고 차 사이사이를 다니며 돈을 구걸하는 아이에게 우린 창문을 열고 방금 편의점에서 산 시원한 물 한 병을 건넸다. 아이는 잽싸게 엄마에게 달려가 물을 안긴다. 둘이 속닥속닥 하더니 아이가 우리 차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여인의 입모양이 말한다. "Gracias" (감사합니다) 


이에 비해 안쓰럽기는커녕 괘씸한 아저씨도 하나 있었다. 저글링을 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한눈에 봐도 눈빛이 맛이 간 게 마약쟁이가 분명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공 대신 주먹만 한 돌 세 개를 머리 위로 던져가며 공연을 하는 게 아닌가. 약에 취해서 돌을 자꾸 떨어뜨리면서도 매번 용케 주워가며 형편없는 묘기를 고집스럽게 이어가고 있었다. 그 모습이 당황스러우면서도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가만 생각해보니 대놓고 웃었다가는 돌을 앞유리를 향해 냅다 던질 것 같아 힘들게 참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저글러들을 제외하면 대개는 신호가 걸리면 기다렸다는 듯이 세제와 걸레를 들고 다가와 차를 닦아주고 몇 푼씩을 받아가는 소년들이다. 얼마나 잽싼지 신호마다 한 대씩은 말끔히 닦는다. 2인 1조 일 경우에는 두 대씩도 닦는 것 같았다. 물론 차 전체를 세차하는 건 아니고 앞, 뒷유리, 사이드 등 보이는 곳을 위주로 닦는 식이지만.





이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제각각이다.
안쓰러워하거나 귀찮아하거나. 



아침 아홉 시에 보았던 그 작은 소녀가 오후 네시에도 같은 땡볕 아래에서 저글링을 하고 있는 걸 보면 마음이 아프다. 테니스를 치러가면 그 또래의 세련된 아이들이 나이키, 아디다스 운동복을 빼입고 신나게 뛰어노는데 그때마다 괜히 그 소녀가 눈에 밟혀서 짠하다. 베이커리라도 들렀다 오는 길에 아이가 보이면 반갑게 창문을 열고 크로와상을 건네기도 했다. 그렇지만 도로의 사람들이 언제나 이렇게 애틋하게 느껴지는 건 아니다. 누가 봐도 방금 세차하고 나온 차를 굳이 닦아주겠다며 흥정을 하려 할 때는 사실 귀찮고, 얼굴에 희한한 피에로 분장을 하고 창문을 두드렸던 한 걸인 때문에 기겁을 한 적도 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소년을 보았다. 



그 소년은 검은 SUV 차량의 유리를 닦는 중이었다. 소년의 손놀림은 잽쌌다. 곧 신호가 바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역시나 마무리하듯이 차를 쓱 닦자 파란불이 마법처럼 켜졌다. 소년은 돈 몇 푼을 받고 한 발짝 뒤로 물러서고 차들은 다시 쌩쌩 달리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소년이 성호를 긋는 것을 본 건.


어깨엔 자동차 앞유리를 닦던 걸레를 걸치고, 한 손에는 비눗물이 찰랑거리는 파란 양동이를 든 채로 소년은 잠시 멈춰 거룩한 표정으로 가슴에 성호를 긋더니 이내 잰걸음으로 멀어져 갔다. 제때 길을 건너지 못한 나는 소년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그 이후부터는 그들이 안쓰럽거나 귀찮게 느껴지지 않는다. 하루를 열심히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걸 알기에. 그리고 Gracias, 감사가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나도 글을 쓰기 전에 작은 기도를 먼저 드려본다. 꿈이 있음에 감사하고, 하루하루 그 꿈을 이루며 살 수 있음에 감사하다.


오늘은 그 소녀가 엄마와 언니와 함께 까먹을 수 있도록 마트에서 오렌지 세 개를 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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