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작가 당선 이후 나의 삶의 변화
10월의 어느 토요일
나는 평일에 끝내지 못한 업무를 또 미련하게 집까지 들고 와서는
진전 없는 업무 속도에 답답해하며
알 수 없는 중압감과 불안감에 글을 써내려 가기 시작했다.
먼저 부끄러운 고백을 하나 하자면,
나는 일 년에 채 열 권도 되지 않는 책을 읽을 정도로
독서를 좋아하지도 않았고
작가라는 것에는 관심도 없던 사람이었다.
아니 돌이켜보면 중학교 때까지는
책을 좋아했고 취미로 소설 쓰는 것도 좋아했다.
남모르는 비밀을 하나 더 얘기하자면
그렇게 만든 단편소설(?)로 집에서 혼자 연기를 해 보고(!)
수정을 해 나가기도 했다.
언제부터였을까? 내가 책에 싫증을 내게 된 게.
고등학교에 올라가고 수능을 준비하면서
그리고 대학에 입학하고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치르며
한정된 시간에 읽고 이해하고 하나의 답을 찾아야 하는 상황의 반복이
주의력과 스트레스 내성이 낮은 나에게 엄청난 중압감이었고
학교를 벗어나는 순간
책에 대한 복수라도 하듯
개인적인 시간에는 일절 책을 펼치지 않았다.
그렇게 나의 지식과 세상을 보는 눈은 대학교 때까지의 독서량으로 멈춰버린 것 같았다.
소심한 변명을 하고 핑곗거리를 찾자면
원인을 '입시교육의 트라우마로 인한 독서에 대한 거부감' 정도로 붙여 두자.
주재원으로 베트남에 도착했을 당시에는
다행히 도시 봉쇄 수준에서는 벗어났지만
여전히 코로나로 인해 도시 간의 이동은 자유롭지 못했고
감염에 대한 공포감 또한 지속되는 시기였다.
거리의 시끄러운 오토바이 소음 속에서
집에 돌아오면 엄청난 적막감이
나를 알 수 없는 불안감에 놓이게 했다.
더 큰 세상을 보길 꿈꾸며 나왔지만
내가 처음 마주하게 된 이곳은
한없이 작고 폐쇄적인 외딴섬과 같았다.
베트남 로컬 사회로 진입하기 전에는
주재원 커뮤니티와 한인사회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이곳에서 나는
혼자인 것에 익숙해지는 것과
말을 아끼는 법을 먼저 배우게 되었다.
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대부분의 주재원들은 기혼 남성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고
아무리 SNS가 발달되어 있다고 해도
한국 사회보다는 정보의 습득과 변화의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아무래도 타지다 보니
기존에 형성된 커뮤니티의 유대감과 결속력이 강하고
이는 마치 학연이나 지연을 훨씬 뛰어넘는 듯 공고하고 견고해 보였다.
나는 마치 이방인 같았다.
내가 아무 생각 없이 한 말은
48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자의적 해석들로 덮여서
다시 내 귀로 꽂히는 진귀한 경험을 했고
나름 고객 접점 출신이었기에 누구와의 대화에도 자신이 있었던 나는
생전 처음 듣는 골프 용어들에
대화의 90%를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그저 미소만 짓고 있기도 했다.
(오해를 막기 위해 짚고 넘어가자면
여기서 내가 결코 어떤 무시나 억압을 당했다는 것이 절대 아니다.
오히려 모두들 싱글 여성으로 혼자 나온 나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주었지만
기존 커뮤니티에 갓 입성한 '외부인'의 시각으로서
내가 느낀 분위기를 솔직하게 말하고 싶었다.
나만이 느낀 지극히 주관적인 '심리적 벽' 같은 거라고 해 두자.)
처음에는 한국의 친구들에게 연락해서
하루 동안 참았던 말들을 쏟아내며
소중한 사람들을 많이 괴롭혔던 것 같다.
하 루 씩 - 하 루 씩 - 더해지며
베트남에서의 생활이 세 자릿수로 넘어갈 때쯤
나는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과장해서 비유하자면
그 무서운 전쟁 상황 속에서도 일기를 썼던 안네를
어렸을 땐 이해가 잘 되지 않았지만
이제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여기서 나에게 기록이라는 것은,
나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행위와 같았다.
자식을 통해 자신의 유전자를 번식하는 것과 같이
나는 여기서의 나의 시간과 존재감을 어떠한 형태로든 남기고 싶었다.
내가 그간 한국에서 일기를 꾸준히 써 오지 않았던 것은
나의 시간을 함께 기억해 줄
친구와 부모님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시월의 어느 토요일 밤,
여기 온 이래 가장 마음이 괴롭고 힘들었던 날,
한 번도 의심한 적 없던 베트남으로 온 나의 선택을
처음으로 의심하게 된 날,
나는 엄청난 불안감을 씻어낼 의식이라도 치르듯
글을 써내려 나갔고 그 글로
브런치 작가에 지원하게 되었다.
사실 작가라는 타이틀보다는
누군가에게 나의 이야기를 하고 싶고
여기서의 나의 시간을 의미 있게 포장해서 남겨줄 수단이
내게는 '글'이었던 것 같다.
그것도 어떤 계기보다는 무의식적으로 손에 잡혔던 것이
글이었다.
토요일 밤, 세 시간 정도 수정도 거치지 않고 보낸 나의 날 것의 글은
그다음 화요일 오전 출근길에 작가 선정이라는 알림으로 화답을 받았다.
사실 거창한 것도 아니지만
'브런치 작가'라는 명명은 내 삶에 큰 활기를 안겨주었다.
일상에서 글의 소재를 찾으며
회색 빛깔 같았던 일상에 색이 입혀지는 것을 느끼게 되었고
마치 내가 주인공이 되는 단편 소설을 썼던 중학생 때의 나처럼
내 삶을 글로 써 내려나가면서
조연이 아닌 주인공의 삶을 사는 것 같은 느낌을 받고 있기도 하다.
내가 절실히 필요했던 건
세상과의 소통이었던 것 같다.
다른 브런치 작가분들도 나와 같은 이유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을까?
나는 요즘 평소보다 30분 일찍 출근해서 그 시간 동안 책을 읽는다.
해외라 한국 서적을 살 곳이 마땅치 않기 때문에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휴대폰으로 독서를 한다.
좀 더 좋은 문장력을 갖추기 위해서 다시 시작한 독서는
내 일상을 크게 바꾸어 놓고 있다.
어떨 때는 10페이지를 어떨 때는 서너 페이지밖에 못 읽기도 하지만
그 30분 간의 독서를 통해 하루가 더 꽉 차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진짜 독서의 재미를 다시 느끼고 있는 듯하다.
신입작가 13일 차, 날 것의 나를 보여주는 것에 때때로 용기가 필요하기도 하지만
온전히 나의 삶을 살 수 있는 것 같아 나는 행복하다
다만, 오롯이 나를 위해 시작한 나의 글쓰기가
언젠가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글이 되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