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라고 모두가 음악 들으려고 사무실에서 에어팟을 끼는 건 아니랍니다
미즈짱, 내가 예민한 거야?
툭탁 툭탁 툭툭-
정말, 오늘 만큼은 견딜 수가 없었다.
옆 테이블의 베트남 직원의 타자소리를..
그래서 고민고민하다 겨우 나의 팀원, 나의 단짝 미즈짱에게 물어보았다.
나만 그녀의 타자 소리를 시끄럽다고 생각하는 건지..
(사실 속으로는 '제발 너도 그렇다고 해 줘'라고 하면서)
"쟤 타자 소리 진짜 심하게 시끄럽지 않아? 내가 예민한 거야?"
"음, 시끄럽긴 해요. 사무실이 조용해서 더 그런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팀장님이 물어봐서 시끄럽다는 걸 인식했어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내가 예민해서 시끄럽다고 생각하는 걸까, 시끄러워서 내가 그 소리에 더욱 예민해진 걸까.
타자의 강도와 빠르기를 보았을 때 백퍼 아니 이백퍼
일을 하는 게 아니라 뒷담화 메신저를 하고 있는 거다.
일을 하는 거면 마우스도 쓰고 할 텐데
생각이 이에 미치자 "내가 바로 젊꼰(젊은 꼰대)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타자기 빌런은 그렇게 툭탁툭탁 분노의 타자질을 하더니
사무실을 나가서는 30분 뒤에 다시 들어왔다.
나가서 무얼 하고 오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30분 동안 살 것 같았다.
업무에 다시 몰입을 하고 있는데
다시 돌아온 타자기 빌런은 사무실에서 베트남 직원들과 큰 소리로 잡담을 하며 떠들었다.
그러고 나서는 자리에 돌아가 또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자판을 두드렸다.
음악을 듣는 건지 그녀의 이어폰 사이로 전자음이 얄궂게 흘러나왔다.
올해 과장으로 승진한 그녀는 사무실 내 최고참 베트남 직원으로
진급 후 더욱 의기양양해졌다.
상하관계 문화가 뚜렷한 베트남에서는 승진 후 애티튜드가 저렇게 확 달라지는
직원들이 더러 있다고 한다.
'조용히 하라고 할까? 참을까?'
여러 번 고민 끝에 오늘도 나는 귀마개 대신 음악이 나오지 않는 에어팟을 귀에 꽂았다.
내가 제대로 얘기를 하지 못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베트남 직원들이 '민중봉기'를 일으켰던
전설로만 들었던 한 일화가 있다.
베트남에는 도시락 문화가 발달되었기 때문에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점심시간이 되면 현지 직원들이 자신의 책상에서 도시락을 까고
식사를 했다고 한다.
베트남 음식 특유의 향신료로 인해
익숙지 않은 냄새가 온 사무실을 뒤덮은 건 말할 바도 아니다.
또한 베트남 사람들 라이프스타일 특성상 점심뿐 아니라 아침, 간식까지 모두 도시락으로 해결을 하니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음식 냄새를 참는 것이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이에 (지금은 그만두신) 한국 주재원 부장님이
"누구도 도시락을 싸 오지 말라, 직원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해라."라고 지시를 내렸고
이에 평소에는 수더분해 보였던 베트남 직원들이
"우리의 식사권을 보장해 달라"며 울면서 민중봉기(?)를 일으켰다고 한다.
마치 민족 말살 정책을 펼치는 악덕 일제에 투항하는 독립투사들처럼 말이다.
이에 냄새가 나지 않도록 최대한 탕비실이나 직원식당에 가서
도시락을 먹도록 중간 타협을 보았다고 한다.
어쩌면 사무실 기본 에티켓이라고 생각하는 '정숙'이라는 부분도
현지인들에게는 너무 까탈스러운 한국인의 문화라고 느낄까 봐
쉽사리 말을 꺼내기가 힘들었다.
괜스레 "한국인이 사무실에서 말조차 제대로 못하게 한다, 우리를 억압한다" 할까
두려웠다.
MZ라고 다 음악 들으면서 일하려고 사무실에서 에어팟 끼는 게 아니다
요즘 SNL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사무실에서 에어팟을 끼고 일하는
MZ직원들의 모습이 희화화되곤 하는데,
물론 100에 80은 카페에서 음악 들으며 공부하는 것처럼
일의 집중(?)을 위해 음악을 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 같이 사무실 소음 빌런들 때문에
비(非) 자발적으로 에어팟을 끼는 사람도 있다.
주황색 귀마개를 대놓고 끼고 있는 것보다는 낫지 않은가
그러니 개념이 없다고 선입견을 가지기 전에
먼저 그 직원에게 무얼 듣는지 한 번 물어보시라
툭탁탁탁 툭탁툭탁 툭탁툭탁툭탁
한국 본사와의 화상회의를 위해 에어팟을 꼈는데
타자기 빌런의 소리가 견고한 노이즈 캔슬링을 뚫고 고막에 흘러들어왔다.
오늘도 마음에 참을 인(忍)을 수없이 새기며
회의의 볼륨을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