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주재원들이 복귀하지 않는 이유
지난 연말에 한국에 갔을 때
나는 마치 이방인으로서의 기분을 느꼈다.
하얗고 키 큰 사람들,
이른 아침임에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정갈하고 패셔너블하게 갖춰 입은 옷차림,
오토바이 대신 세단으로 가득 찬 도로,
오랜만에 듣는 지하철 음악 소리
마치 여기가 북유럽의 한가운데
스웨덴 어디쯤에 온 듯
홀린 듯이 지나가는 사람들과 풍경을 바라보았다.
지하철에 자리가 많이 있음에도
일부러 출입구 쪽에 기대 서서
스쳐 지나가는, 꽁꽁 언 한강의 모습과
나의 모교의 풍경을 연신 카메라에, 눈에 담았다.
문득 내 머릿속을 스친 생각이 있었다.
다시 한국에 적응할 수 있을까?
누가 보면 십 수년 해외생활 한 사람 같지만
사실 나의 베트남 체류기간은
겨우 1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렇게 학수고대하던 한국 휴가였음에도
아이러니하게 나는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물속의 기름처럼
섞이지 못하고 붕 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의 인파 속에서
나 또한 어딘가로 향해 가야 하는
'one of them'이었다.
이 속에서 나는,
승진과 연애, 돈과 같은 옷들을 켜켜이 껴입고 있는
작년의 나 자신을 마주하였다.
잊고 있었는데 다시 생각이 났다.
원래의 나
늘 똑같은 일상, 더딘 성장을 벗어나기 위해
나는 한국을 떠나왔던 것이다.
사실 베트남에서는
한국에서 보다는 '조금은 특별한 존재', '이상(理想)의 나'로 지내고 있다.
나의 소울메이트 미즈짱은
종종 내게 'Fair Skin'을 가졌다고 칭찬을 하는데
그때까지 그 단어가 무엇인지 알 지도 못했다.
찾아보니 백인 등을 향해 흰 피부를 묘사하는 말로
'White Skin' 대신 이 단어를 쓴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하얀 피부도 아니고
노란 피부(?) 축에 속하는 나로서는
그저 감개가 무량할 따름이었다.
대학원에서도 베트남 친구들은
내게 매우 많이 우호적이고 호의적이다.
어떤 친구들은 농담으로
나를 '퀸(Queen, 여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박항서 감독님과 여러 K-드라마를 통해
베트남의 '한국'에 대한 이미지 자체가 긍정적인 것이다.
연애와 결혼은 포기했지만
외로움의 대가로 얻은
회사의 적잖은 주재수당과 주택지원금 또한
나의 생활을 보다 풍요롭게 했다.
무엇보다 영어로 일을 하고, 해외에서 대학원을 다니며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삶을 살고 있다는 부분이
나의 자존감 상승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만약에 다시 한국에 돌아간다면
왠지 나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것만 같았다.
분주한 이 사람들 속에서
'이겨야만 하는 경쟁'을 다시금 되풀이해야 할 것 같다.
여러 이유로
해외 주재원으로 나간 사람들은,
현지와 한국의 이질감을 견디지 못하고
많은 경우 복귀를 하지 않고, 아니 못하고
현지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고 한다.
특히나 베트남의 경우
해외주재원의 복귀율이 어느 나라보다 떨어지는데,
한국보다 물가 수준(Living Cost)은 낮지만
한국과 비슷한 삶을 향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몇 년간의 주재생활로 자신감을 확보한 주재원들이
현지 사업가로 전향을 한다는 것이다.
어떤 삶이 맞다 틀리다 할 수는 없지만
나 스스로 다짐하는 것은
경쟁이 두려워, 경쟁을 피하기 위해
복귀를 포기하지는 말자는 것이다.
다시 돌아갔을 때는
나의 삶이 다시 원점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베트남에서의 시간만큼
다른 차원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