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에 따라 바뀌는 인생의 국영수
한국 사회는 경쟁의 시대이다. 나 또한 1등부터 꼴등까지 서열을 매기는 입시를 겪어왔고, 성장기에 배워서인지 성인이 되어서도 스스로를 습관적으로 점검한다.
“지금 나이에 이 정도면 괜찮은 걸까?”
“나는 잘 살고 있는 걸까?”
한국 사람들은 인생의 ‘커트라인’을 의식하며 살아간다. 그게 개인의 문제겠나? 사회가 어렸을 때부터 서열화를 시켰고 경쟁하면서 성장해서이지. 물론 그래서 국가 경쟁력과 성장률은 전 세계의 귀감이 될만한 수준으로 성장하였다. 좋은 점도 있다는 거 잘 안다.
하지만 이러한 인생 배경으로 인해 우리는 누군가와 비교하지 않으려 해도, 저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결국 비교하면서 방향을 찾는 게 익숙해졌다. 물론 40이 된 지금은 서로의 인생이 많이 달라져서 많이 완화되긴 하였지만...
어쩌면 본능적으로 인생을 바르게 살고자 해서 교과서적으로 참고할만한 대상을 찾는 것이기도 하지만, 솔직히 너무나 일률적이고 튀면 안 되는 경쟁적인 사회 분위기 때문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해도 그 나이 때에 맞는 국영수(필수로 해야 하는 것)를 생각하곤 한다. 20대 초반, 나의 ‘국영수’는 대학·연애·돈이었다. 그 시절에는 대학만 어느 정도 괜찮은 곳에 가면 어느 누구도 터치하지 않은 시절이었다. 고작 해야 나의 걱정은 “점심 뭐 먹지?”, “남자친구는 왜 이러지?”, “조별 과제는 누구랑 하지?” 정도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마치 봄 같았는데 그걸 몰랐다. 꽃다운 나의.... (됐다)
이제부터 본론이다. 우리에게는 험악한 사회가 기다리고 있고 우리는 취업을 해야 한다. 취업을 하면 결혼은?
20대 후반의 국영수는 아주 명확했다. 취업, 결혼, 재테크.
누굴 만나든 이 세 가지가 대화의 주제다.
“요즘 어디 다녀?”
“월세야, 전세야?”
“주식은 해봤어?”
사회가 정한 순서표에 따라 우리는 움직였다. “취업 → 결혼 → 내 집 → 아이”
그 사이에서 ‘나다운 기준’을 세울 틈은 없다. 대부분은 남들이 정해놓은 기준을 따라 내가 맞지도 않는 곳에서 ‘열심히 해야 한다’는 강박을 느꼈다. 라떼는 야근이 당연했고 심지어 공채와 수시 입사자 간에 텃새도 있었고 마음에 들지 않는 비호감 과장님의 농담을 들으며 저녁을 먹어야 했는데 그것도 아주 당연한 일이었다. 뭐 근데 솔직히 남의 돈을 버는데 어찌 내가 원하는 일만 하겠는가. 그럴 수 있지. 하지만 문제는 나는 아무 생각과 기준 없이 남들의 잣대에 나를 끼워 맞춰서 보냈다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조금씩 병들고 있었다.
삶은 현실이 되었다. 회사와 육아, 그리고 뒤늦게 떠밀려서 하게 되는 재테크. 월급으로 집을 살 수 없다는 현실, 노후는 국가가 아닌 개인이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 일을 하지 않고도 재산이 엄청난 부자들이 많다는 팩트.... 아이를 키우며, 돈을 벌며 언제부턴가 ‘돈’의 무게가 달라졌다.
20대에 돈은 사고 싶은 걸 사고, 여행을 가는 자유를 의미했다면 30대는 “앞으로 70년 어떻게 살래?"에 대해 답이 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나도 항상 ‘지금 당장’의 일에 쫓겨 재테크를 늘 후순위로 미루다가, 갑자기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걔 주식으로 돈 벌었대.”
“그 친구는 부동산 투자로 성공했대.”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했나? 비슷한 대학을 졸업한 친구들의 잔고가 각기 달라지니 배가 뒤틀렸다. 아... 이미 늦었나?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 돈 과외? 돈 학원? 다 필요 없고, 그때부터 책을 사고 뉴스를 보면서 벼락치기를 했다. 음... 역시 나는 벼락치기가 맞아. 우선 돈 정리부터 시작했다.
정리란 단순히 지출을 줄이거나 주식을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무엇에 가치를 두는지를 명확히 했다. 우리가 살아야 하는 주택, 노후 준비, 절세가 되는 연금 등등
그리고 내 소비들도 정리를 했다. 명품도 안 사는데 카드값이 늘 빠듯하다면, 그건 ‘눈에 잘 안 띄는 작은 소비’가 반복되고 있다는 신호다. "오늘 거래처 때문에 기분이 안 좋으니 올영 들려야지, 빵집 가야지." 티 나지 않는 2~3만 원짜리 소비. 이 습관이 매일 누적되니 결국 한 달치 월세와 맞먹는 금액이 버려졌다.
사실 많은 소비는 불안의 표현이다. 남들과의 비교, 자존감의 흔들림, 혹은 ‘나도 잘 살고 있다’는 자기 확신을 돈으로 사는 것. 아니 월급으로 명품백 하나 살 수 있잖아. 그니까 사는 거다. 할부로... 나도 어엿한 사회인이라는 증표로 의미 없이...
스타벅스가 좋은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커피 맛’ 때문이 아니라 그 공간이 주는 여유 때문이다.
매장 안의 음악, 사람들의 소음, 따뜻한 조명, 그 속에서 잠시 ‘나 혼자 있는 시간’을 가지는 만족감.
하지만 그건 집에서도 만들 수 있다.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향을 피우고, 책 한 권을 펼쳐 놓으면 충분하다. 결국 내가 좋아하는 것은 공간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였다.
가제노타미의 저소비 생활 中
이렇게 ‘좋음의 본질’을 이해하면 소비가 훨씬 줄어든다.
나는 소비 충동이 올 때 정리한다. 청소를 하거나 물건의 배치를 바꿔본다. 정리하다 보면 이미 가진 물건의 존재를 다시 발견하게 된다. “이거 새로 살 필요 없네.” 끝
그래도 안될 경우 일에 집중한다. 소비의 욕구는 지루함에서 비롯된다. 몰입은 돈보다 더 큰 만족을 준다.
그래도 안되면 이미 가진 걸로 즐거움을 만든다. 새 옷을 사지 않아도 조합을 바꾸면 새로운 스타일이 된다.
새 가구를 사지 않아도 배치를 바꾸면 신선해진다.
이 세 단계를 거쳐도 사고 싶으면 산다. 그리고 누린다. 그걸로 내가 행복하면 돈을 쓰는 가치가 있는 것이다. 무조건 절약이 아닌 소비를 정리하고 누린다.
의식주를 고르는 기준도 마음에 들게
의(衣): 나에게 잘 어울리는 옷, 나의 장점을 드러내는 옷
식(食): 나의 심신을 편하게 하는 음식
주(住): 내가 지내기 편하고 안정되는 공간
가제노타미의 저소비 생활 中
이 기준만 분명히 해도 소비의 80%는 걸러진다. 이런 식으로 나의 기준으로 소비를 정리한다.
그리고 이렇게 인생, 돈, 생활을 ‘정리’하는 습관을 들이면 불필요한 지출은 자연스럽게 줄어든다. 그 대신 필요한 시간과 진짜 가치 있는 소비만 남는다.
많은 소비는 정신적 보상심리에서 비롯된다. 불안하고, 외롭고,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낄 때 우리는 그 공허함을 ‘물건’으로 채운다. 하지만 물건이 익숙해지면 또다시 공허함이 생긴다. 근본적으로는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돈은 안 사려고 해서 절약하는 게 아니라 정리를 함으로 안 쓰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