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야 미안해, 오늘은 네 이야기를 좀 해야겠어
나한테는 몇 안 되는 강남 토박이 친구가 있다. 강북에서만 15년을 살아오다가 회사 동기로 강남 토박이들을 처음 알게 되었다. 신기했다. 그 유명한 8 학군 출신에 도곡동 거주자. 메이크업했음에도 모공하나 보이지 않는 피부와 차분단 몸짓, 남녀 모두가 좋아할 만한 예쁜 외모와 바른 성격을 가졌다.
당연히 인기는 많았지만 남자들은 함부로 그 친구에게 대시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신입사원 시절 월급 꼬박꼬박 모아서 일 년에 하나 살법할 만한 가방이 이미 출근용 데일리백으로 여러 개 가지고 있었고 명품 스카프는 그렇게 고급지게 활용한다는 것을 그녀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또 다르게 알게 된 강남인은 대학교 동기 오빠이다. 피부가 하얗고 키가 큰 길쭉한 사람. 항상 검은 티에 청바지를 입지만 깔끔하고 멋있는 인상이 풍기는 사람이다. 좋은 향수 냄새, 아나운서 같은 톤의 말투는 잘 배우고 귀하게 자란 사람의 특유한 분위기를 보여줬다.
나에게 강남인은 그런 느낌이었다. 언제나 부러웠고 오를 수 없는 백조 같은 예쁘고 멋진 존재들이었다. 내 강북친구가 21살 때 압구정 다녀와서 한말이 기억난다.
야 강남애들은 방금 샤워하고 온 애들 같아
깔끔하다는 말을 그렇게 했다. 물론 우리도 결코 초라하지 않았지만 그냥 같은 티와 청바지를 입어도 느껴지는 분위기와 깔끔함이 압도했다.(물론 브랜드는 다르다) 그런데 그렇게 부러울 것 없는 친구가 내일모레 마흔 싱글이 된다. 그리고 인생에 힘이 다 빠진 애처럼 푸념을 한다. 나의 워너비였던 강남친구가.
그녀는 부모님과 사이가 참 좋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이 가이드해 준 인생을 살아왔다. 학원, 여행, 어학, 생각 등 그래서 학벌도 좋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 친구는 자신의 인생에 대한 결정을 스스로 해본 적이 없다. 심지어 취업을 어디로 할지 부모님과 결정했다. 그럴 수 있다. 근데 결혼이나 큰 중대한 일은 스스로 결정하지 못한다. 남자친구와 만난 지 8년이 되어가는데 결혼을 해야 할지 안 해야 할지 아직도 고민한다. 하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걱정이 태산이라 만나면 계속 같은 질문만 한다. 결혼한 나에게 결혼생활은 어떤지, 애를 낳은 나에게 육아는 어떤지, 그렇게 나의 결혼생활 7년 동안 그녀는 간접체험만 해왔다.
작은 것도 결정한 적이 없는 그 친구를 보고 처음에는 신중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좀 망했다는 생각이 든다.(미안;) 사실 너무 친해서 그 친구 앞에서도 말해버렸다.
뭐든 나 스스로 해보면 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뭘 잘하는지. 그러면서 나에 대한 결정력이 키워지고 결정의 기초체력이 점점 키워지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결정 근육이 아예 퇴화해 버린 것 같다.
2. 더 좋은 것이 있을 거라는 파랑새 증후군
가난하게 크지도 않았지만 나는 항상 재화가 한정되어 있었다. 이거 아니면 이걸 골라야 하는 상황, 기회를 잡지 않으면 빼앗기는 상황. 그래서 나는 항상 빠르게 결정하고 그 결정을 잘 되는 방향으로 밀고 나가는 데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끝까지 가본다. 물론 뒷걸음질 치면 떨어지기 때문에 생존을 위해서 끝까지 버틴 적이 많다. 당장 이직할 곳이 없으니 회사를 출근했고, 일을 배워야 하니 선배들이 무시해도 참고 버텼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존버'의 시간 덕분에 뿌리를 내려보니 깊이를 알고 스스로도 업그레이드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만약에 토 나오는 텃세와 야근에 도망쳐서 1년 단위로 회사를 전전했다면 아마 지금 나이에는 쓸모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젊고 똑똑한 인재들이 넘쳐나는 마당에 버티는 힘도 없다면 누가 나 같은 노땅을 쓰겠는가. 그리고 신입 때 1년씩 이직하면 연봉이 얼마나 오르겠나. 한 회 사에서 승진하고 뿌리를 내려야 이직해도 정착해도 연봉이 팍팍 뛰지.
젊을 때는 파랑새를 찾아서 이직하는 친구들이 용기 있고 멋있어 보였다. 근데 그게 나중에는 인생의 태도로 변하더라. 결혼생활도 못하겠으면 이혼하고, 회사도 못 다니겠으면 이직하다가 40대부터는 점점 작은 회사규모로, 점점 연봉을 깎아서 가다가 사회 비판만 하게 되는 비관주의자로 전락하였다. 대기업 다니는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몇 변의 이직을 하다가 이제 부서이동으로, 내가 적응을 못할 리가 없다는 이상한 생각으로 남 탓을 하게 된다.
유망한 친구들이 참 안타깝다.
서울에서 대학, 회사 생활을 하면서 참 신기했던 게 있다. 강남 사는 친구들은 '나 도곡동 어디에 살았어' 이렇게 말한다. 강남이 아니라 특정 지역을 말한다. 나중에 알았다. 강남 안에서도 급을 나누고 비교하는 심리가 본능처럼 깔려 있다. 본래 토박이, 중간에 합류한 이주민, 아예 관계없는 무관계자까지... 자랑과 비교를 하고 싶은 심리는 본성인가 보다. 그런데 이런 비교 참 의미 없다.
예를 들어 공부에 재능 있는 아이가 아이돌을 꿈꾸는 친구를 따라 외모 가꾸기에만 시간을 쏟는다면 어떻게 될까? 결국 그 친구는 아이돌이 되겠지만 본인은 대학도 못 가고 자신의 재능도 썩히게 된다. 서로 가진 재능과 환경이 다른데 왜 이렇게 타인의 속도에 나를 맞추려 할까? 진정한 비교는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 사이에서만 이루어져야 한다.
잘되고 싶은가? 그럼 이 세 가지를 반대로만 하면 된다.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한 것을 정답으로 만들며, 타인이 아닌 어제의 나와 비교하는 삶. 그것이 마흔 이후의 인생을 지탱하는 진짜 근육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