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교차점

10월 8일, 한로(寒露)

by missingcow

비가 내리기 시작하니 마음이 급해진다.

아빠와 얼굴도 뵌 적 없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몇 해전, 세상을 떠나신 고모부가 모셔진 곳으로 향한다.


시내에서 불과 15분 남짓 거리에 있는 천주교공원묘지는 대대로 천주교 신자인 우리 가족을 모신 곳으로, 어릴 적부터 일 년에 적어도 두 번은 소풍가듯 가던 가족의 기억이 가득한 곳이다.


지금은 시원하게 뚫린 고속도로를 이용하면 10분 정도에 닿을 수 있지만, 이전에는 2차로의 한적한 오솔길이 유일한 도로로, 오래된 플라타너스 나무들이 양갈래로 늘어서 있어 가을이면 아늑하게 그림자를 드리워주고, 코스모스며 가을 들꽃들이 한들거리는 길을 따라 달리다 보면 어느새, 공원묘지입구에 다다르고는 외길이 시작된다.


가끔 들어가는 차와 나오는 차가 맞닥뜨리면 조금이라도 길을 넓혀 보려는 양측 운전자들의 곡예 운전으로 그야말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릴 넘치는 명장면이 펼쳐지곤 했다. 그 사이, 나는 수도 없이 한 뼘정도의 길아래 개울가로 굴러 떨어지는 상상을 했었던 좁은 길이었다.


산중턱에 차를 세우고 우리는 바리바리 싸운 성묘음식을 들고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수많은 묘를 지나는 길은 꽤나 가파르고 위험할 만큼 좁았지만, 삼촌들이 주워준 밤송이를 발로 살살 비벼 까고, 도토리를 주우며 가다 보면 어느새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묘가 보이기 시작했다.


가족친지들이 부지런히 양옆에 선 편백나무들을 가지치기도 하고 산소에 돋아난 잡초들을 뽑기 시작하면, 아이들은 입고 간 가을잠바를 벗어 땀을 식히며 어른들이 일을 마치길 기다렸다. 그리곤 성묘음식을 펼쳐놓고 산소를 향한 좁은 길목에 모두가 일렬로 길게 절을 바치고는 음복은 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촌들과 함께 이름 모를 산소들의 아래위를 폴짝거리고 뛰어다니며, 메뚜기와 잠자리를 잡고 저 멀리 높아진 가을하늘과 한눈에 들어오는 풍경 속에서 서로 아는 장소를 찾아내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런 기억들이 빼곡히 담긴 길은, 납골당이 생겨 돌아가신 어르신들이 이사한 이후로 더 이상 찾지 않게 되었다. 납골당은 하늘을 막지 않고 야외에 둥근 원형으로 배치되어, 자연, 공기, 바람 그 어느 하나 막힘이 없지만 비가 오면 참 곤란하다.


오빠의 채근으로 일찍 나선, 올해 성묘길은 나와 오빠 그리고 엄마 이렇게 단출하다.

성묘를 마치고 나니 빗줄기가 거세진다. 몇 대 없던 차들도 뒤엉켜 혼잡해지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우리는 얼른 그 자리를 빠져나온다.


무언가 아쉬워 우리는 근처 카페에 들러 차를 마시기로 한다. 창너머로 공사장 안전복과 안전모를 쓴 마네킹이 교통정리경광봉을 들고 처량하게 내라는 비를 맞고 있다.


엄마와 오빠는 엄마의 납골당 예약과 아빠납골당 자리 이전을 의논하고 있다.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아빠는 급하게 다른 납골당에 모셨다가 수년 전에 이 곳에 합류를 한 셈인데, 이번에 자리를 옮기면 두 번째 이사를 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듣고 있을 아빠의 시니컬한 미소가 그려지는 듯 하다.


비는 점점 사그라들고 지도를 보니 최근에 관심을 두던 조사지가 정말 코앞이다. 오빠에게 양해를 구하고 잠깐 들렀다 가자고 하니 흔쾌히 그러자 한다. 엄마는 어디 좋은 곳에 가는 거냐고 하신다.


그곳은 사실 6.25 전쟁당시 수천 명의 민간인 학살이 일어난 현장으로 지금은 평화공원을 추진하고 있어, 소박한 집모양의 건물과 비석이 전부인 곳이다. 막상 도착해 보니 너른 공터에 무성한 잡초들만 가득하고 비에 젖어 질척거리는 땅이 먼저 밟힌다.


엄마와 오빠는 차에 계시길 당부하고, 혼자 잠시 둘러보는 걸음마다 깜짝 손님에 놀란 풀벌레들이 푸드덕 달아나기 바쁘다. 임시로 지은 간이건물의 벽마다 학살의 기록들이 끔찍한 사진들이 인쇄되어 둘러져 있고, 비석에는 하얀 국화들과 리본이 가득하다.


무료로 나눠주는 책자들을 챙기고는 얼른 차로 돌아가려니, 멀찌감치 엄마가 걱정스런 모습으로 얼른 오라는 손짓을 하신다. 엄마를 속이고 이런 곳에 모신 것이 미안하면서도 상황이 우스워 입가에 웃음이 살짝 번진다. 오빠가 차에 시동을 걸자 엄마는 나에게 조그마한 스프레이통에 넣어둔 성수를 연신 뿌려대신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 이런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이 지금도 믿기지가 않는다.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성묘길에서 불과 3분여 거리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이름 없이 사라져 갔다는 것이 초현실적이고, 도착해서 본 그 폐허와 비석에 나부끼던 하얀 리본이 눈앞에 아른거려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추석의 긴 연휴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이제 낮동안은 여전히 덥지만 아침저녁으로 공기가 차다. 한로(寒露)가 지났으니 연휴 동안 긴팔옷을 꺼내고 여름옷은 정리해야지 하며, 눈여겨 둔 마당의 대추나무를 올려다본다.


추석에 자리를 비운 동안 비바람에 대추들이 떨어져 있었다. 왜 아무도 주어가질 않는 걸까 라며 멀쩡한 대추들을 주어 본다. 새파란 대추는 아삭하고 꽤나 달지만 이미 빨갛게 농익은 대추들은 나무 데크에 여기저기 나동그라져 짓이겨지고 뭉개져 있다.


붉게 물러터진 대추의 진동하는 단내 속에서, 낮게 깔린 비 냄새와 흙냄새가 뒤섞인다.

그 냄새가 낮은 탄식처럼 가슴을 스치듯이 다시 한번 끔찍한 비극의 시간이 떠오른다.


나의 아름다운 한 때의 기억과 역사적 기억의 교차점이 그토록 가까운 공간에 존재했다는 것이, 지금도 알 수 없는 기분에 휩싸이게 하는 것은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