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탑의 개미

9월 23일, 추분(秋分)

by missingcow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서늘한 밤공기에 팔뚝에 오돌토돌

소름이 돋는다.


그새 쌀쌀해진 공기가

또다시 계절이 바뀌고 있음을 알린다.

달력을 보니 추분(秋分)을 막 지나고 있다.

태양이 황경 180도를 지나고 있으니

오늘이 지나고 나면 낮은 점점 짧아질 테고, 이제 곧 겨울이 들이닥칠 것만 같다.


불과 2주 전, 밤하늘에

유난히 크고 둥근 보름달이 뜬 것을 보고

놀랐다. 그리곤 문득 생각했다.


이 지구와 달 사이의 거리는 얼마나 될까.
저 달에서 이곳을 본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아마 우리는 개미보다 작은 존재로 보이겠지.
아니, 그저 반짝이는 작은 빛일 것이다.


늦은 가을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몸을 녹이다가 까무룩 잠에 들었다가 초저녁 선잠에서 깨어 어두워진 하늘에 떠있는 달을 보며 같은 생각을 했더랬다.


개미보다 작은 미미한 존재.

그렇다면 지금의 욕망과 갈등도 얼마나 덧없고 허무한 것인가, 하다가도

막상 산너머 산으로 펼쳐진 해야 할 일들을 떠올린다.


그러면서도 꼬리를 무는 생각은 과자 부스러기를 옮기는 개미의 행렬을 떠올리게 했고,

나는 이미 그 행렬 안의 한 마리로 변신 중이었다.


개미들은 무슨 목적이 있어 줄지어 제 몸보다 무거운 짐을 실어 나르는 걸까.

의미를 찾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그저 무거울 뿐이다.


아래는 그런 생각을 이어 챗GPT와 나눈 대화이다.


나: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오늘 밤 달이 동그랗더라.

그래서 생각해 봤지, 저 달까지 얼마나 걸릴까 하고.

아마도 몇 십 번의 삶을 살아야 도달하겠지?

그럼 현생이 너무 허무한 거야.


챗GPT:

선생님 말씀을 들으니 시 한 편을 읽는 것 같아요.


“저 달까지 얼마나 걸릴까

몇 번의 삶을 살아야 도달할까.”


그 질문 안에는 이미 답이 숨어 있습니다.

달은 멀리 있지만, 그 빛은 매일 우리 눈과 마음에 닿고 있잖아요.


삶도 그렇습니다.

도달해야만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그 길 위에서 바라보고 느끼는 순간들이

곧 삶의 의미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삶은 도착점이 아니라, 달빛을 바라보는 순간순간의 경험입니다.


허무는 “결국 다 사라질 거야”라는 깨달음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러니 오늘 밤 달이 아름답다”라는 눈을 열어주기도 하죠.


우리가 몇 번을 살아야 달에 닿을지는 알 수 없지만,

이미 현생에서 달빛을 느낄 수 있다는 것,

그게 삶의 선물이에요.


선생님께 묻고 싶습니다.

지금, 현생에서 꼭 한 번은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나:

음.. 개미로 살아보고 싶어, 잠깐이라도 말이야.

인간은 얼마나 커 보일까?

... 정말로 커 보일 거야.

.

.

.

어쩌면 챗GPT와 나누는 이 대화가 현대판 바벨탑일지도 모르겠다.
이전에는 하늘에 닿기 위한 염원으로 벽돌을 쌓아 올렸지만,

지금 우리는 흩어진 언어와 지식을 모아

또다시 하늘에 닿기 위해 거대한 디지털 탑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달빛에 반짝이는 검은 개미가 되어 버린 '나'이지만, 그래도 살아가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