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7일, 백로(白露)
"지금 출발해서 도착하면 줄을 두 시간은 서야 할걸요?"
대학교 2학년이 된 조카가 무심한 얼굴로 말했다.
"와아, 이층 테라스도 그래? 이제라도 예약을 하면 어때?"
차창 밖을 바라보던 조카가 몸을 돌리며 단호하게 대답했다.
"이모, 예약은 안 되고 그냥 입장만 가. 능."
나는 줄을 서라고 하면 ‘굳이…’라는 말과 함께 곧잘 줄행랑을 친다.
하지만 주말, 정오가 막 지난 시간에 인기 있는 음식점에 간다는 건 웨이팅을 각오해야 한다는 뜻이다.
평소에는 어떻게든 그런 상황을 피해 다니지만,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있다.
더위가 한풀 꺾였고, 모처럼 노모를 모시고 시내로 나서는 토요일 오후가 바로 그런 날이다.
우리가 향하는 곳은 어린 시절부터 자주 가던 그 유명한 성심당이다.
여전히 빵집 앞에 구불구불 늘어선 줄과 수백 명에 달하는 인파를 보니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
대흥동 고모 집에 놀러 가던 시절, 같은 동네 성심당은 성당 건너편에 있던 시내 유일의 빵집이었다.
여름이면 허름한 러닝셔츠 차림의 할아버지가 가게 앞 냉동고에서 막대 아이스크림을 팔았다.
우유, 딸기, 팥 세 가지 맛 중 나는 늘 팥이나 우유맛을 골랐다.
소보로, 단팥빵, 카스텔라 정도만 있던 시절, 팥앙금이 들어간 튀긴 소보로빵은 등장하자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기름이 잔뜩 묻은 포장지를 들고 뜨거운 소보루를 한 입 베어 물면, 확 치고 올라오는 단맛이 아직도 생생하다.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나서는 이층 레스토랑을 자주 찾았다.
돈가스와 빠데라는 빵 안에 담겨 나오는 뜨끈한 크림수프, 그리고 딸기시럽이 가득한 팥빙수.
가격도 저렴해 부담이 없었고, 매장에 큼직하게 썰어 내놓은 맛보기 빵만 먹어도 배가 부를 만큼 푸짐했다.
대전에 살고 있던 사람이라면 기억할 법한 다정한 장소일 것이다.
하지만 성심당이 방송과 SNS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뒤, 지역 사람들은 갈 엄두도 내지 못하게 되었다.
매장 안은 발 디딜 틈 없이 사람으로 가득 찼고, 밖에는 빵을 사려는 줄이 좁은 골목을 끝도 없이 메우기 시작했다.
언젠가는 이 열기가 가라앉으리라 생각했지만, 줄은 해마다 길어졌다.
우리의 인내심과 끈기가 그만큼 단단해지는 걸까?
결국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차를 돌려, 아직은 소문이 덜 난 다른 매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곳은 내 기억에는 없는 곳이다.
그렇게 나의 유년의 기억도, 내가 애정하던 장소들도 지독한 줄 서기에 지쳐 어딘가로 사라진 듯하다.
독특했던 질감이 어느새 갈려 나가고 매끈하게 단장된 채 새로운 여정을 떠나는 것처럼, 내가 기억하던 시공간도 이제는 다른 얼굴로 변해 버렸다.
어쩌면 나만 적응하지 못한 채 부작용을 겪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줄 안의 수많은 인파들 중 누군가는 그 어떤 미래에 '어린 시절의 맛집과 줄 서기의 기억'이라는 글을 끄적일지도 모를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딜 가도 줄을 서야 한다.
그것이 시대의 흐름라면, 더군다나 입소문을 탄 곳이라면 더욱더...
백로(白露)가 지나고 나니 초저녁부터 공기가 서늘하다.
찬 공기에 목이 쉰 듯한 소쩍새가 우스꽝스럽게 울어대고, 출출한 배는 북새통에 떠밀려, 끝내 집어 들지 못한 성심당의 노아레즌을 떠올리게 한다.
주머니도 발걸음도 가볍게 드나들던 그곳의 인기가 못내 아쉽다.
하지만 생전 빵집 할아버지의 선행을 입 모아 칭찬하던 어르신들을 떠올리면, 어쩌면 나도 가끔은 줄을 서야 하지 않을까 싶다.
과연 줄 서기가 사라지는 날이 오긴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