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3일, 상강(霜降)
작은 여름이라는 이름을 가진 꼬맹이는 지루한 얼굴로 묻는다.
“언제 가요오오.”
오랜만에 소식을 전한 친구는 이제 다섯 살이 된 그녀의 어린 딸을 몇 시간만 맡기고,
중요한 볼 일을 좀 볼 수 있겠느냐고 한다.
다행히 한가한, 아니 한가하기로 한 일정이니 흔쾌히 그러자 하고는 주말 오전, 이 꼬마와 무얼 하고 놀아볼까 궁리를 한다.
꼬맹이의 엄마가 이런 걸 좋아하고,
이런 건 좋아하지 않는다고 귀띔을 해주었지만 항상 무생물과의 교감에만 익숙한 나는
예측 불가능한 존재를 몇 시간이라도 돌봐야 한다고 하면 예외 없이 INTJ 모드는 오류를 일으킨다.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른 아침, 친구는 볼일을 보러 나가고,
나는 꼬맹이가 좋아하는 세 가지 파스텔톤의 어린이용 매니큐어를 신중하게 색의 순서를 맞춰가며 열 개의 손톱에 꼼꼼히 발라준다.
그리고 대망의 하이라이트 — 부러진 왕관을 대신할 새 왕관을 사기 위해 약 20분 거리의 잡화점에 가기로 한다.
차를 타고 가자는 이 단호한 아이를 설득하는 데 몇 분을 쓰고 나서야 현관문을 나선다.
날은 흐렸지만, 기분이 정말 좋아 보이는
꼬맹이의 현란하게 화사한 핑크색 드레스와
뒷마당에 소복하게 핀 가을 국화를 곁에 두고
기념사진을 남기려 불러 세우는 순간,
이끼 낀 마당의 습기에 발이 미끄러졌다.
아이가 울음을 터뜨릴 새라 까르륵 웃어버린다. 아이를 얼른 일으키자, 마치 기억의 버퍼가 몇 초쯤인 양 꼬맹이도 순식간에 좀 전의 사건을 잊어버리고 따라 웃는다.
이제 겨우 아침 10시를 지나고 있다.다섯 살인 아이에게 “30분만 기다리면 가게가 문을 여니 조금만 기다리자”라고 하니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얼마 안가 금새 같은 질문을 또 한다.
아직 시계를 볼 줄 모르는 나이이니 같은 대답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문득, 이 작은 아이가 느끼는 시간은 어떤 것일까 궁금해진다. 세상을 살아가는 단위이자, 사람들과의 약속인 시간을 모른다면 이 세계의 시간은 어떻게 느껴질까 하고 말이다.
아마도 즐거운 일을 기다릴 땐 한없이 늘어지는 시간일 것이고, 괴롭고 힘든 일이 다가온다면 그것은 초조할 만큼 빠르게 느껴질 것이다. 시간의 개념은 절대적이지 않다. 그것은 관념적이며, 상대적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의 감정과 의식에만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에게도 저런 시간의 감각으로 살았을 시절이 있었을 텐데, 마음껏 누렸을까?
꼬맹이의 맑은 눈을 보며, 그 어느 때보다 수다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고, 금새 웃다가도 울상을 짓는 아이를 보니 어느 정도 마음이 놓인다.
적어도 이 꼬맹이에게는 — 기억하지 못할지라도 —지금의 순간순간은 적어도 찬란한
시간일 테니까 말이다.
돌아오는 길에 아이는 다리가 아프다고 한다.
나는 “이모가 어부바해 줄까?” 하니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살레살레 흔든다. 오십이 넘은 부실한 이모에게 하는 단단한 배려라 생각한다.
오전에는 비가 내리고, 오후에는 말짱하게 비가 개는 나날이다. 도로가에는 낙엽들이 나뒹군다. 두 모녀를 기차역에 내려주고 돌아오는 길이 왠지 더 썰렁하다.
이제 진짜 가을이 가려나 보다. 쌀쌀맞은 애인처럼 금방 왔다가 가는구나.
춥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