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픈 보스와 행동대장

11월 7일, 입동(立冬)

by missingcow

지난주, 정원사 몇 분이 다녀간 뒤 정원은 상고머리가 되었다. 무성하게 얽히고설켜 있던 가지들을 다 쳐내고 나니 정원이 휑하다. 커다란 은행나무와 잡초들이 제멋대로 자라던 구석에 여름내 자취를 감추었던 나무테이블과 벤치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하늘은 높고 따뜻한 햇살에 기분이 좋아 은행의 체취가 스민 벤치에 앉아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땅을 내려다보니 반짝이듯 붉게 익은 열매들이 정원 곳곳에 흩어져 있다.


이사 온 집의 뒷마당 정원에는 이름 모를 나무들이 계절의 순서대로 각기 다른 열매들을 내어 주는 재미가 있다. 햇빛이 닿으면 루비처럼 투명하고 영롱하게 빛나던 이 열매는 알고 보니 구기자였다. '충분히 익으면 말려서 차를 해 먹어야지' 하고 마음먹었는데, 정원사들이 가지들을 사정없이 솎아낸 탓에 어느새 자취를 감춰 까맣게 잊고 지낸 것이다. 얼른 바닥에 쪼그려 앉아 주섬주섬 열매들을 주워 담는다. 바닥에 반사된 가을 햇살에 눈이 시리다. 그때였다, 낯선 기척이 느껴져서 고개를 돌리니 무언가 휙 스쳐 지나간다. 며칠 전 나를 유독 따라다녀 어떤 분이 "고양이 주인이세요?"하고 물었던 삼색 어른 고양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아이라면 숨지 않았을 것이다.


잠시 후, 바스락 하는 소리와 함께 바로 옆에 치즈냥이 새끼 한 마리가 나뭇잎 사이로 얼굴을 내민다. 한눈에 봐도 아직 어린 데다, 제대로 먹지 못한 듯 비쩍 말라 있다. 굶주림이 이 아이를 여기까지 이끌었을까. 하지만 내 손에는 그저 나무 열매 한 줌뿐이다. 경계심이 가득한 녀석은 내가 허리를 조금만 펴도 폴짝 달아난다. 배는 고프고 인간은 두렵고-참 복잡한 심경일 것이다. 나 역시 어쩔 수 없이 조용히 집 안으로 들어선다.


다시 책상에 앉으니, 지난 몇 년간 내 인생에서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시골에서의 생활이 머리를 스친다. 그것은 말 그대로 어느 날 문득 결정되어 그냥 일어난 일이었다. 흙 속에 묻힌 듯한 시간과 공간에서 뼛속까지 도시인이었던 나는, 낯선 환경에서 충분히 괴로워하고 막연해하며 나름대로 적응을 하기 위해 애썼다. 그렇게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시간을 보내고 나니 실재하지도 않는 대상을 향한 부정과 분노를 멈추게 되었고, 주변을 둘러보니 마치 디톡스를 마친 것처럼 이전과는 다른 세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새순이 돋는 새싹과 계절을 알리는 꽃들, 아침과 밤을 알리는 시계 같은 새소리들, 폭우가 쏟아진다는 예보를 알리는 욕실 창가의 말랑말랑한 청개구리와 소박한 열매과 곡식들, 그리고 한없이 아름다운 설경으로 시간의 흐름과 공기를 느끼니 호흡이 안정되고 세상을 향한 냉소를 조금씩 덜어낼 수 있게 되었다.


그 시절에 산책길에 만나는 동네 친구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바로 무려 여남은 마리의 고양이들이었다. 시골버스의 단출한 정류장에 내리면 바로 보이는 담벼락에 이 녀석들이 일렬로 식빵을 구우며 범상치 않은 눈을 꿈벅하며 '왔느냐' 하는 소리 없는 인사를 나누다 보니,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이 친구들은 시골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사료와 물을 주고 쉴 곳을 내어 주니 사실 건강하고 뭔가 느긋한 분위기마저도 풍겼지만, 그래도 냄새나는 쓰레기장이 길냥이들에게는 최애의 장소였다. 동네 토박이 냥이들도, 먹이를 찾아 잠시 찾아든 길냥이들도 그곳에서 인심 좋게 나눠준 사료를 먹거나 남은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뒤졌다.


그런 기억을 더듬으며, 부쩍 추워진 밤기온에 낮에 본 새끼 냥이가 눈에 밟혀 재활용 쓰레기장으로 나가 본다. 아니나 다를까 낮에 본 녀석이 쓰레기봉투에 머리를 처박고 내가 온 줄도 모르고 뭔가를 허겁지겁 먹고 있다. 어미는 어디로 간 걸까? 주변을 둘러보니 아, 다른 새끼냥이 한 마리가 어둠 속에 잔뜩 웅크린 실루엣으로 앉아 있다. 조심스럽게 야옹하고 부르며 따듯하게 데운 분유를 내려놓자마자 치즈냥이가 달려와 할짝할짝 잘 먹는다.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두 마리 모두 있는 힘껏 목청 높여 야옹거리며 내 발걸음을 따른다. 무얼 말하려고 하는 걸까? 배가 너무 고프니 먹을 것을 더 내놓으라는 항의 같다. 하지만 분유 말고는 줄 수 있는 것이 오늘 밤엔 없다.


다음 날, 새끼고양이용 사료와 습식캔을 사고 다시 찾아가 보니, 주차장 한편에 바닥에 담요를 깔아놓고 토끼인형이 들어있는 종이 박스가 보인다. 옆에는 스테인리스 빈 사료그릇 두 개와 물그릇이 놓여 있다. 됐다. 누군가 이 아이들을 돌보고 있단 뜻이다. 얼른 사료와 깨끗한 물을 따르고 잠시 지켜보니 점박이가 달려온다. 머리를 거의 밥그릇에 넣고 열심히 먹는 모습으로 보니 마음이 놓여 자리를 떠난다. 사실 그 옆에는 여자아이들만 지내는 보육원 건물이 있다. 부모가 없거나 부모가 원치 않는 아이들이 지내는 곳이라고 가끔 인사를 나누는 옆집 이웃이 귀띔을 해주었다. 해질 무렵에 아이들이 까르륵하고 웃는 소리가 나곤 해서 저긴 어떤 곳일까 하고 궁금했었는데 그런 사연이 있는 곳이었다. 아이들이 종이박스와 인형을 마련해 주었구나 하니 마음이 놓인다.


늦가을의 마지막 절기, 입동(立冬)이 지나면 이제 정말 겨울이 시작될 것이다. 하얀 눈이 내리면 왠지 모르게 소음도 줄고 오히려 포근한 기분이 드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다. 하지만 시골에서는 폭설이 내리면 도로가 얼고 이동할 수가 없어, 곤란하게 되는 일이 다반사였다. 하지만 얌전히 눈이 녹기만을 기다리는 수밖에 다른 수가 없었다. 애를 태우기보다는 그렇게 뭔가에 순응하고 인내하는 방법을 터득했다고나 할까?


똘똘하지만 한쪽 귀와 콧등에 상처가 보이는 치즈냥이는 잠깐만 봐도 생의 의지가 강하고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점박이는 경계심이 강하지만 얼굴에 카리스마가 넘쳐난다. 보스와 행동대장 형제인 것이다. 이 새끼냥이들에게 내가 지극정성 캣맘이 되어 줄 수는 없겠지만, 지금처럼 내 방 창문 너머로 바라보며 가디언정도는 되어 줄 수 있을 것만 같다.


언젠가 덥석 주워온 길냥이를 끝까지 책임지지 못한 자책의 기억이 나의 내부 어딘가에 지금도 매달려 있고, 그동안 스치듯 지나간 고양이들과의 짧은 인연처럼 그런 순간들이 쌓이다 보면, 언젠가 나만 없는 고양이에서 나도 있는 고양이가 되어 주는 마법의 순간이 찾아올 것이다.


밤이 깊어 재활용장의 불빛도 꺼져 창문 너머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창문을 닫으려다 차가운 유리가 손끝에 닿아 움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