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머리

11월 22일, 소설(小雪)

by missingcow

이제 정말 가을도 안녕이니 맘껏 즐기라는 듯 만추의 날씨였던 주말 오후, 멀리서 온 친구와 어린 딸과 함께 점심을 먹기로 되어 있었다. 버스를 타고 약속 장소로 향하는 길에 문득, 주중보다 더 막히는 주말의 동네 사정이 떠올라 얼른 내려서 지하철로 갈아탄다.


약속시간보다 빨리 도착한 지하철역을 빠져나와 코너를 도니, 빵냄새가 구수하다. 언제나 긴 줄이 늘어서 있는 빵집 주변으로 국적불명의 한복을 입은 외국인 관광객과 휴일을 맞은 사람들이 뒤엉켜 길가 여기저기에 빵을 포장해 나와 먹고 있다. 요상한 풍경이다.


친구를 만나 무얼 먹을까 하다가 전날 오랜만의 과음으로 예전에 가던 해장하기 좋은 식당으로 가자 하니 없어졌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간 게 친구의 어린 딸이 뱃속에 있던 때이니 벌써 4년 전이다. 단정한 한옥집에 메뉴가 많지 않았지만 손맛이 좋고 방바닥에 철퍼덕 앉아 먹고 마실 수도 있는 곳이었다. 근처에 있던 또 다른 식당도 사라졌다고 한다.


아니 이럴 수가. 어째서 그렇게 훌륭한 식당들이 다 사라졌단 말인가.


"좋은 것들은 먼저 사라지나 봐요" 하고 내뱉는다. 하지만 나에게는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귀가 예민해서 스피커의 소리가 조금이라도 크거나, 취향에 맞지 않는 음악을 쏟아내는 카페나 술집은 가지 않고, 식당도 맛집보다는 내 입맛에 잘 맞고 합리적인 가격이면 즐겨 찾는다. 나에게 가성비란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한 아낌없는 소비이니 싸고 비싸다는 관점은 철저히 내 기준이 된다.


여하튼 그런 조금은 피곤하고 알 수 없는 까다로운 취향에 합격한 식당, 카페, 술집들은 안타깝게도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열심히 문턱이 닳도록 들락거리다가도 잠시 시간을 두고 돌아와 보면 사라져 버리곤 했다. 아쉽지만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아직도 꿋꿋하게 살아남은 애정하는 식당으로 향했다. 이 식당은 재료의 사용이나 조리법이 남다른 편이라 손님들의 호불호가 있는 곳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식당만의 독특한 개성을 존중한다. 주문을 마치고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음식이 나온다.


아이가 있으니 우리의 대화는 다소 산만하고 자주 흐름이 끊긴다. 그러면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친구와 이야기를 이어갈 타이밍을 조용히 기다린다. 그 와중에 옆 테이블에 앉은 60대쯤 되보이는 중년부부의 대화가 귀에 들어온다.


"아니, 이것도 국물인데 무슨 오뎅국물을 달라고 해요." 타박하듯 여자가 젓가락으로 남자 앞에 놓인 국수그릇을 가볍게 툭툭 치며 말하자 "아니 김밥은 오뎅국물하고 먹어야지" 하며 여자 앞에 놓인 김밥을 툭하고 건드린다.


다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하얀 앞치마와 모자를 둘러쓴 식당사장님이 옆 테이블에 서서 중년부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듯했다. 그런데 이내 남자의 목소리가 점진적으로 또렷이 들리기 시작한다.


한 젓가락 입에 물고 있던 국수가락을 앞접시에 내뱉으며, 조금 언짢은 소리로 "아니 왜 이렇게 싱거워요? 간을 하나도 안 했잖아요." 하더니 국수그릇에 신경질적으로 다시 털어 넣는다. "잔치국수인 줄 알고 시켰는데 이걸 어떻게 먹어요." 한다. "돈 낼 테니까 이거 다시 가져가요" 하니 동석한 여자가 안절부절못하며 "한번 말했음 됐지 그만해요. 쫌!" 하며 만류해 보지만 이미 식당 안의 공기는 싸늘하게 얼어버렸다.


이 집의 국수는 다른 식당과는 다른 국물을 베이스로 사용한다. 김밥도 나물이나 자극적인 재료를 사용하지 않는 편이니 좀 씀씀하다고나 할까? 그런 점이 나와 내 친구처럼 집밥을 자주 먹지 못하는 형편에는 가끔씩 생각나게 하는 맛인데 옆자리의 누군가에게는 전혀 맞지 않는 입맛이었나 보다.


그렇게 소동이 사그라드는가 싶었는데 이번에 우리가 앉은 테이블 뒷자리가 소란스럽다. 여자 세 명이 주문한 음식 중, 한 그릇에 모기가 날아다니다가 그만 다이빙을 해버린 것이다. 갑자기 풀려버린 가을 날씨에 눈치 없는 모기 한 마리가 생각 없이 일을 저지른 셈이다. 환불을 요구하고는 모두 쌩하고 나가버린다. 어쩐지 나와 친구는 좌불안석이 되어 버린다.


겨울의 작은 문턱, 소설(小雪)에 일어난 소설(小說) 같은 상황에 나는 현진건의 소설 운수 좋은 날을 떠올렸다.


생각지도 못한 행운으로 신이 난 인력거꾼이 병든 아내를 위해 설렁탕 한 그릇을 들고 집에 도착해서 눈도 감지 못하고 죽은 아내의 주검을 봤을 때 어떤 기분이었을까? 식당주인은 또 어떤 기분이었을까? 삶이란 참 알다가도 모를 사건들의 연속이다.


식당 안의 불길한 공기를 환기하기 위해 우리는 계산을 하며 시시 껄껄한 이야기로 연로한 식당사장님의 기운을 북돋아 준다.


식당을 나와 걷는 양 길가로 은행나무잎이 노란 카펫처럼 길바닥을 물들이고 사람들은 그 풍경 속에 완벽하게 행복한 순간들을 만끽하고 있는 듯하다. 우리는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역으로 걸으며 지금은 번듯한 가게로 거듭난 이전의 장소들을 이야기한다.


과로사로 사망한 노동자문제로 시끌벅적했던 지하철역 바로 옆 빵집의 줄은 지치지도 않는다. 그것과 이것은 다른 세상의 문제라는 듯 뭔가 초현실적이다. 해결할 수 없이 너무나 많은 부조리와 모순의 세상이라 그런 걸까?


참, 인정머리가 없다.


이 모든 소동은 숙취 탓으로 돌리기로 하자. 안 그랬으면 그 식당의 국물을 떠올리지 않았을 테고, 나도 어딘가에서 커피와 샌드위치를 먹자고 했을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