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과 유령

12월 7일, 대설(大雪)

by missingcow

무거운 현관 유리문을 밀고 나가니 희뿌연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동시에 하늘에서 '우르릉 쾅!' 하고 날벼락을 치는 것이 아닌가. 장마도 아니고 진눈깨비에 천둥이라니.. 워낙 비현실적인 일들이 일어나는 요즘이니 그러려니 하고 차에 시동을 켠다.

순간 불길한 느낌이 들며 오늘은 운동을 가지 말아야 한다는 강한 '촉'이 발동했지만, 그냥 길을 나선다.


하... 왜 그랬을까.


내가 사는 동네는 서울의 중심지에 산으로 둘러싸인 경치 좋고 공기도 맑은 곳이지만, 가벼운 산행처럼 가파른 한 고개를 넘어야 하는 곳이다. 맨 처음 이사를 결정하기 전에 가장 큰 고민거리이기도 했다. 이사하고 처음 맞이하는 겨울이지만, 눈이 오면 펼쳐질 재난상황은 이미 초봄에 이사를 들어오면서부터 나의 작은 걱정거리였는데, 이제 진짜로 겨울이 되어 버린 것이다.


시계를 보니 5시 45분쯤이다. 해는 이미 내려앉아 어둑어둑한데 반대편 차선의 차들이 내리는 눈에 당황한 듯 엉금엉금 기어가기 시작한다. '지금이라도 돌려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며 눈과 손 그리고 머릿속이 바쁘다. 지금 돌리면 이 불길한 예감을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냥 달리기로 한다. 머릿속으로 체육관을 향하는 산길에 눈이 쌓여 미끄러지는 상상을 하니 뒷골이 오싹하다.


트레이드 밀에 달린 모니터로 틈틈이 뉴스를 체크한다. 가끔씩 천천히 걸으며 집으로 가는 길의 소요시간도 핸드폰으로 확인해 본다. 7시가 넘어서자, 집으로 가는 시간이 조금씩 늘어나는 걸 보고는 마음이 급해진다.


운동을 하러 온 것인지 걱정을 하러 온 것인지 후회가 막심하다. 이 무슨 봉변이란 말인가. 아니, 나에게는 선택의 순간이 있었는데 어째서 지금에야 이런저런 생각에 안절부절이란 말인가.


사실, 나에게는 하늘이 무너져도 지켜야 하는 나와의 약속이 있다.

그것은 바로 하루에 30분 이상의 운동이다. 단순히 몸건강을 위한 것이 아니라 종일 책상에 앉아 일하는 나는 몸을 움직이는 시간이 내 머릿속을 비우는 일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생각을 리셋하는 시간으로 스스로 정한, 일종의 의식이자 루틴인 것이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꼭 그렇게 지켜보자고 다짐한 지 반년째이다. 바로 오늘이 그 '눈이 와도'에 해당하는 날이었고, 나는 나와의 약속을 지키고자 불 보듯 뻔한 불행한 결말을 선택한 셈이다.


8시가 넘어가니 소요시간이 1시간이 넘어간다. 두 눈을 의심하며 아무리 새로고침을 해도 시간은 1분, 2분씩 늘거나 줄어들 뿐 분명 1시간 7분이 찍힌다. 아무리 천천히 간다 해도 15분이면 집차고에 도착한다. 그런데 1시간이라니.. 하지만 별도리가 없으니 4배의 귀가시간이지만 벌을 받는 심정으로 도로에 나선다.


머리를 쓴다고 돌아가는 길을 선택했으나, 그건 이미 도로에 나서자마자 소용없는 일임을 깨닫는다. 내가 가는 방향은 물론이고 반대방향의 도로에도 이미 차들이 줄지어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지르고 있고, 자동차 브레이크 등이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붉게 빛난다.


'왜 그랬을까.' 하면서도 '1시간은 괜찮아' 라며 스스로를 위로하지만 아무리 가도 내비게이션의 시간은 줄지를 않는다. 이미 눈은 그쳤고 통제하던 주요 순환도로들도 다시 길이 열렸다고 하는데도 도로상황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그 와중에 너무나 배가 고파온다. 차 안을 필사적으로 뒤적거려 보니 지난가을에 엄마가 흘리신 듯한 사탕 두 알을 발견한다. 문득 차 안에 먹을 것을 곳곳에 숨겨두던 지인의 재난에 최적화된 차를 떠올린다.


2시간이 넘어가니, 이제는 생각할 힘도 없이 그냥 가다 서다를 그저 반복할 뿐이다.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하며 남은 소금사탕을 입에 넣는다. 마지막 식량이니 최대한 조금씩 아껴먹는다. 그러면서도 어이없는 웃음이 피식하고 새어 나온다. 누구를 원망해야 하지? 하늘을? 이 정도 눈발에 도시가 마비되는 이 상황은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걸까? 언제부터인가 세상에 이해하지 못하는 일들이 너무나 많이 일어났다. 엄청난 폭염과 폭우 물론 폭설 그리고 전쟁까지. 사람들이 한순간에 생사를 가르고 삽시간에 다른 상황이 눈앞에 펼 져지는 것이다.


사실 1999년, 21세기를 앞둔 우리는 밀레니엄이라 부르며 미래에 대한 낙관을 노골적 희망을 드러내며 축포를 터트렸었다. 인터넷이 전 세계를 연결하고, 깜짝 놀랄 만인 신세계가 열릴 것이라는 희망말이다. 하지만 21세기는 안타깝게도 한 치 앞도 예측하기 어려운 불확실성의 시대로 점점 정체성을 굳혀가는 듯하다. 기후변화와 환경파괴, 전쟁, 자국보호주의적 국가 간 정책, 극심한 자본주의의 심화 등의 뉴스로 하루하루가 참 스펙터클하다.


결국 10~15분 남짓의 귀갓길이 3시간이 되는 마법을 경험하고는 뉴스에서나 보던 상황이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음을 확인하고야 말았다. 안전하다고 믿었던 보호막이 사라지고 각자 알아서 살아내야만 하는 세상의 경고말이다.


차라리 유령이 도와주었더라면 하는 인고의 세 시간이 지났다.


뻐근한 엉치뼈를 풀며 생각한다.

미래가 불안하고 앞날을 점칠 수 없을 때 리더가 필요한 것이다. 그날 밤 우리의 리더는 어디서 무얼 하고 있었을까?


깊어가는 겨울의 대설(大雪)을 앞두고, 2025년의 첫눈의 기억은 그렇게 영원히 기억될 것 같다. 아직도 도로에 있을 사람들 모두가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