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조건

12월 22일 , 동지(冬至)

by missingcow

자동차에만 올라타면 사람들은 조급하고 폭력적이 되곤 한다. 걷는 속도의 수십 배로 달리면서도, 앞차가 조금만 굼뜨면 서슴없이 경적을 울린다.


순간 헐크로 변해 버리고 마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인간이다.


나에게는 지독히도 사람들을 멀리하던 시절이 있었다. 가진 거라곤 치기 어린 자만심과 세상을 향한 저항과 반항감뿐이던 그 즈음, 나보다 더 세상과 거리를 두고 살던 한 화가지망생이 있었다. 그녀는 연고 하나 없는 시골로 내려가 인간보다 고양이가 더 신뢰할 수 있고 교감할 수 있다는 이유로 여러 마리의 고양이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그녀의 작업실은 우사 옆 폐건물이었다. 소똥 냄새가 진동했고 건물 상태도 열악했지만, 임대료가 저렴했고 무엇보다 널찍한 공간을 온전히 자기 취향대로 쓸 수 있었다.


당시 나는 영화감독을 꿈꾸며 첫 영화를 찍기 위해 여기저기를 수소문하던 중에 그녀와 연락이 닿았고 그녀는 흔쾌히 자신의 공간을 촬영 장소로 내주었다.


조건은 단 하나, 고양이들을 잘 돌봐달라는 것이었다. 그 호의가 비극의 씨앗이 될 줄은 몰랐다.


당시는 고양이 중성화수술이 보편화되지 않았고, 마침 발정기였던 수컷 고양이 한 마리가 촬영 도중에 허술한 방충망을 찢고 가출을 해버린 것이었다. 촬영은 중단되었고 스텝들은 고양이를 찾기 위해 사방팔방으로 돌아다녔었지만 결국 고양이는 찾을 수 없었다. 집주인이 돌아오는 날짜를 보며 고양이 이야기를 어떻게 꺼내야 할지 막막해졌다.


나는 아직도 고양이 소식을 전해 들은 순간, 나를 향해 꽂히던 그녀의 살기 어린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다행히 며칠 뒤, 고양이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무심히 집으로 돌아왔고, 한참을 지나 그 고양이는 천수를 누리고 고양이별로 돌아갔다고 전해 들었다.


그녀와 나는 그 사건을 계기로 멀어졌고, 훗날 다시 마주친 그녀는 이미 그 일은 잊은 듯했지만, 나는 여전히 그 경멸의 눈빛을 기억하고 있었다. 사라진 고양이를 찾던 그때의 죄책감을, 그녀가 조금만 이해해 주었더라면 하는 마음이 오래도록 남았었다.


고양이를 향한 그녀의 절대적 애정과, 타인을 향한 냉담함 사이의 간극이야말로 인간의 본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싹트기 시작했던 것이다.


바로 그 순간, 한 중년 여성이 아슬아슬하게 도로를 건너고 있는데 차 한 대가 신경질적으로 위협하듯 그녀 앞을 쌩-하고 지나간다. 그 여성은 놀란 듯 그 자리에서 잠시 얼어붙은 모양으로 서있다가 부리나케 자리를 모면하고 반대편으로 사라진다. 그 길은 대로도 아니고 등산객들이 오가는 좁은 이차로였기에 누구나 살짝 방심할 수 있는 길이다.


세기의 발명품인 자동차는 우리의 연약한 몸 정도는 한순간에 종이장처럼 구겨버릴 수 있는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다.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우리는 매우, 자주, 그 사실을 잊어버리고 만다. 생과 사를 가르는 핸들과 페달은 결국, 그것을 쥔 우리의 마음에 달려 있다.


뒤돌아서면 남의 흉을 보기도 하고, 이상한 오해로 누군가를 미워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인간은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과 파괴하는 마음을 동시에 지닌 모순적 존재이다.


일 년 중 가장 어둠이 극에 달하는 동지(冬至)를 지나 감흥 없는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나니 얼굴이 따가울 정도로 바람이 차갑다. 겨울이 깊어지니 대중교통보다는 자동차로 이동하는 경우가 늘어난다. 가끔은 나도 순간 화도 나고 어이가 없는 상황을 도로에서 마주치지만 어느 영화의 대사를 떠올리곤 한다.


"우리, 사람은 못되어도 적어도 괴물은 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