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5일, 소한(小寒)
눈이 나빠지기 시작한 건 아마 2, 3년 전쯤이었을 것이다.
정확한 시점을 특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그날의 장면은 아직도 또렷하다. 건널목 신호를 기다리며 표지판을 올려다보던 순간, 눈동자가 제각각 움직이는 것 같은 기분과 함께 갑자기 초점이 풀려버렸다. 글씨는 흐릿해졌고, 잠깐이었지만 세상이 어긋나 보였다.
놀라서 바로 옆 건물 안과로 들어갔다. 증상을 설명하자 의사는 잠시 눈을 들여다보더니 별일 아니라는 듯 걱정된다면 황반변성 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결과는 정상이었다. 내 눈은 멀쩡했다.
그 이후로도 비슷한 일은 반복되었다. 몸이 피곤한 날에는 시야가 흐려졌고, 컨디션이 좋을 때는 아무 일 없다는 듯 괜찮아졌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는 운전할 때 안경이 필요해졌다. 안과에서는 가까운 글씨는 잘 보이니 노안은 아니고, 그냥 시력이 나빠진 거라고 했다.
그냥 눈이 나빠진 것이다.
평생 양쪽 눈은 1.5와 1.2 사이를 유지해 왔다. 특별히 관리하지 않아도 늘 그 정도였다. 하지만 이제는 1.0과 0.9 사이를 오간다. 의사는 근시라고도 설명했다. 처음으로 안경을 갖게 되었고, 도수를 살짝 넣은 렌즈를 쓰고 길을 걸었을 때 세상이 출렁거려 잠시 속이 메슥거렸다. 지금은 그 감각에도 익숙해졌다. 하지만 앞으로 더 나빠질 거라는 것도 알고 있다.
눈을 시작으로 내 신체가 조금씩 그렇게 변화하는 것이다.
나는 선천적으로 아주 미미한 사시가 있다. 피곤하거나 눈을 오래 쓰면 눈동자가 살짝 풀려 버린다. 어릴 적 멍하니 TV를 보고 있으면 한쪽 눈이 바깥을 향해 묘한 표정이 되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동생은 소리를 질렀다.
“언니, 눈 좀 똑바로 떠.”
그 말이 우스운 기억으로 남아 있지만, 지금의 나는 그 상태를 더 자주 자각한다. 의식하지 않으면 눈동자들은 금세 제 자리를 벗어난다.
하루 중 눈을 쓰는 시간이 워낙 많다 보니 요즘은 안약도 자주 넣는다. 일정이 많은 날에는 집에 돌아와 불을 최소한으로 켜고 눈을 쉬게 한다. 가끔 어두운 방에서 물건을 찾을 때는 눈을 감고 손으로 더듬는다. 신기하게도 원래 자리에 있는 물건은 눈으로 찾을 때보다 더 정확하게 찾아내곤 한다.
우리가 본다는 건 무엇일까.
눈앞에 있는 풍경과 사물, 존재를 인식하는 일 말이다. 철학적인 의미를 덧붙이지 않아도, 실제로 ‘본다’는 감각이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눈이 아니라, 손끝의 감각과 기억이 사물을 더 또렷하게 볼 수 있다는 것을, 눈을 감으면 가장 먼저 눈앞에 펼져지는 하얀 설경이 증명한다.
눈이 수북이 쌓여 세상의 소음이 사라지고 오로지 내 입김 소리만 들리던 길을 걷던 기억. 일요일 이른 아침, 아버지와 함께 오르던 설산의 차갑고 아릿한 공기와 시린 발끝의 감각 그리고 앞서가던 오빠의 등에서 희미하게 피어오르던 체온의 아지랑이. 전날 밤의 폭설 걱정을 한숨에 날려버릴 만큼 쨍한 햇살을 받아 눈이 시린 설원을 오래도록 바라보던 겨울 아침의 풍경.
소한(小寒)이 지났고, 새해도 시작되었다. 아직 눈을 보기엔 날이 좋다. 마음은 눈밭에 뒹구는 강아지처럼 설국열차라도 타고 어딘가로 떠나고 싶지만, 그 마음을 꾹 눌러 담는다.
눈이 나빠진다는 건, 노화가 시작되었다는 신호를 내 몸이 보내는 일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가장 선명했던 시절의 기억들이 때때로 눈앞에 불려 온다. 언젠가 다시 그 하얀 풍경을 내 눈에 담으러 떠날 수 있기를 바라는, 2026년의 첫 주가 조용히 시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