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오의 팔레르모

1월 20일 대한(大寒)

by missingcow

하강하는 비행기 창문 너머로 커다랗고 둥근 민둥산이 보인다. 활주로 옆에 나무 하나 없는 황량한 석회암투성이 바위산이라니.. 착륙을 앞둔 기체가 낮게 기울 때까지도 환영처럼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늦은 나이에 떠난 유학시절, 항상 바바리코트를 입고 콧수염을 멋지게 기르고 다니던 동급생이 있었다. 이마에서 정수리로 이어지는 부분이 유난히 반질거려 강의실 형광등 아래에서는 백열등처럼 보이곤 했던 그 역시, 늦은 나이에 유학을 왔지만 외국어에는 지독하게도 소질이 없어 보였다. 수업마다 있는 토론시간에 자주 말문이 막히곤 해서, 그의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만큼이나 우리도 그를 애처롭게 바라보곤 했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학교와 멀어진 그와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눈 것은 졸업을 앞둔 어느 오후였다. 학교에만 파묻혀 여행 한 번 가지 않은 것이 못내 아쉬워, 그의 고향 이탈리아에서 가장 좋은 여행지를 물었더니, 그는 여전히 서툰 단어들로 설명을 하더니, 이내 핸드폰을 꺼내 이탈리안 특유의 과장스런 몸짓으로 이탈리아 남쪽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동안 그가 보여준 가장 확신 있고 자신감 넘치던 모습이었다.


팔레르모의 6월은 예상보다 훨씬 뜨거웠다. 정오 무렵, 밥을 먹으러 나온 사람은 나 혼자인 듯 거리는 비어 있었는데, 길을 걷다 보면 햇빛에 달궈진 대리석의 열기가 샌들바닥을 뚫고 올라오는 듯하고, 정수리에 내리 꽂히는 작열하는 태양에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이탈리안 허풍을 믿은 내가 바보지.."


유일하게 문을 연 젤라토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끼워주는 빵(brioche con gelato)을 먹으며 그늘에 앉아 허기를 달랬다. 해가 저물기 시작하자 가게들이 하나둘 불을 켜고, 낮 동안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골목을 채웠다. 밤이 깊어질수록 거리의 활기가 낮의 열기를 밀어내듯 살아났다. 구운 꼬치냄새를 타고 호텔까지 선명하게 들리는 시원한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웃음소리를 들으며 잠에 들었다.


이후로 시작된 나의 이탈리아 여행은 시칠리아섬을 시작으로 피렌체로 이민을 간 친구 가족과의 인연으로 이어져 지금에 이르고 있다.


사실, 나는 직업상 많은 나라들을,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체류하며 지냈던 시간이 많았다. 지구의 북쪽에서 남쪽에 이르기까지 정말이지 많이도 돌아다닌 셈이다. 그 많았던 나라들 중에 이탈리아는 조금은 특별하다. 아니 특별하다기보다는 편안하다고 해야 할까? 한국, 특히 서울에서 밀도 있는 시간을 보내고, 일 년에 몇 주 정도를 이탈리아 특유의 느긋함을 만끽하며 친구와 목적 없이 골목길을 탐색하고, 친구 가족들과 저녁을 하고 와인을 마시며 밤이 깊도록 얘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바닥난 에너지가 다시 차올랐음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독일의 소설가 괴테는 귀족출신에 바이마르 궁정의 관료로 평생 안정된 공직자로 살며 화려한 문학적 성취를 이루었지만, 그의 일생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아버지와의 갈등, 관료생활이 주는 창작의 고갈과의 싸움으로 파우스트를 완성하기까지 60년이나 걸렸고, 실연으로 자살충동은 물론 번아웃으로 이탈리아로 2년간 여행을 해야만 했다.


그가 천국이라 칭한 나폴리 광장에 서서 괴테의 동상을 보니, 언뜻 태양에 드리워진 그의 그림자가 보이는 듯했다. 아마도 나의 번아웃의 도피처가 되어준 이탈리아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던 만큼, 그도 이탈리아 여행을 기록하지 않고는 못 배겼으리라.


이제, 나도 매년 갈 수 있는 시간의 여유를 더 이상 찾을 수는 없게 되었지만, 겨울이면 아침 일찍 일어나, 설탕이 듬뿍 뿌려진 빵에 카푸치노를 홀짝이며 하루를 시작하고는 아침 시장을 보러 가던 그 시간들을 떠올린다.


대한(大寒)에 시작되는 매서운 추위는 겨울의 절정을 느끼게 하지만 동시에, 저 멀리 봄이 천천히 다가오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무엇인가 원하는 것이 보이지 않을 때는 계절이, 시간이 어쨌든 제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만 같다. 괴테가 파우스트를 포기했다면, 우뚝 선 그의 동상도 나폴리 광장에서 볼 수 없었을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