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없어도, 기부는 하고 싶은 당신에게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쿠팡맨
오늘 아침 엘리베이터에서 쿠팡맨을 만났다. 다리에는 반깁스를, 양손에는 짐을 지고 있던 나에게 그는 자신의 한가득 짐을 내려놓고 나부터 도와주었다. 중요한 시간이라 1분 1초가 바빴을텐데 그렇게 선뜻 일면식도 없는 나를 기꺼이 도와준 마음이 얼마나 고맙던지..나는 엘리베이터안에서 내내 쿠팡의 만족감과 쿠팡맨들의 친절을 칭찬했다. 나는 그저 너무 기분이 좋아 그렇게 만들어준 상대방을 칭찬을 했을 뿐인데 그는 돌아가면서 쌩뚱맞게 미소가득한 표정으로 이런 한마디를 남기고 갔다.
"솔직히 저는 돈보다도 이런 좋은 말씀 들을 때가 훨씬 행복한 것 같습니다, 좋은 하루보내세요!"
기막힌 연결, 그리고 깨달음
별거 아닌 작은 말 한마디에 감동한 젊은 쿠팡맨을 보내면서 문득 내 머리속에는 쌩뚱맞게도 '기부'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올한해 코로나 때문에 다들 얼마나 힘들었던가. 많은 이들이 경제력을 잃음에 따라 따스한 손길들도 어쩔 수 없이 많이 걷혀졌을 것이다. 매년 연말마다 듣던 사람냄새 가득한 뉴스는 이제 아예 뉴스에서 다뤄지지도 않는다. 나역시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아마도 그간 작게나마 꾸준히 해왔던 기부를 더는 이어가지 못할 것이다. 즉 돈이 없어지면 기부도 당연히 못한다. .......라고만 생각해왔다, 오늘 아침 쿠팡맨을 만나기 전까지.
기부의 영어 단어는 [donate]로, [don]이라는 ‘주다’와 행동하는 것을 뜻하는 [ate]의 합성어이다. 즉, '주는 행동'이다. 대개 기부는 돈을 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가장 일반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수단이 돈이라 그런 것일게다. 그러나 정작 기부라는 단어 속에는 돈에 대한 어원이 전혀 담겨있지 않다. 그저 '주는 행동' 일 뿐. 돈이 아니라도, 누군가에게 꼭 필요하고 좋은 것을 주면 그것도 분명한 기부다. 즉 돈이 없으면, 기부도 못하겠구나 라는 걱정은 반만 맞는 소리였다. 돈으로 하는 기부를 못할 뿐인거다.
기부에 관한 편견
한번 생각해보자. 그런데 정말 돈이 최고의 기부인 건 맞나? 기부라는 건, 스스로 상대방의 플러스를 위해 나의 마이너스를 감내하는 것이다. 상대방을 더욱 많이 플러스시킬수록 가치있는 기부다. 배고픈 이들에게는 돈을 주어서 당장의 끼니를 해결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하지만 이땅에는 배고픈 이들 말고도 기부(도움)가 필요한 사람들이 생각보다 정말 많다. 배고파서 굶어죽는 사람들보다, 마음이 아파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으니까. 아래의 자료를 보라. 보건의료빅데이터개방시스템에 '우울증', '공황장애' 라고 확실하게 진단받은 사람 숫자만 약 100만명이다. 이외에도 조울증, 불안장애 등 온갖 종류의 질환명이 있었고, 대부분 5만~10만 사이의 환자수를 보여주었다. 게다가 이 숫자는 병원을 내원한 사람만 집계한 수치임을 감안할 때,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은 적게 잡아도 족히 3백만명은 넘을 것이다.
이렇게 마음이 아픈 사람들에게는 돈보다 칭찬, 인정, 감사와 같은 따뜻한 말 한마디, 나는 네 편이라는 따뜻한 눈빛 한망울이 훨씬 큰 힘을 줄 수 있다. 선생 때 나도 마음의 병을 크게 앓아본 경험이 있다. 호기 넘치게 도전했다가 크게 맛본 투자실패, 그걸 복구하는 과정에서 경험했던 너무나 쓰라린 기억들은 나도 모르게 마음에 병을 가져다 주었다. 그때 내가 완전히 무너지지 않고 다시 설수 있게 해준 건 학생들과 학부모님들에게서 들은 따뜻한 말들이었다. "선생님같은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선생님 때문에 나도 교사라는 꿈이 생겼어요" , "선생님 덕분에 우리 아이가 진짜 많이 달라졌네요, 감사합니다" 와 같은. 이 말들은 죽어가던 내 마음밭에 생기를 불어 넣어주었다. 큰 실수로 안절부절못하던 초년 교사시절에 "괜찮아 이선생, 열심히 하는 사람은 그렇게 실수도 할 수 있는거야"라며 등을 오히려 토닥여주셨던 OOO교장선생님의 위로도 나는 잊지 못한다. 이런 말들이 가진 가치를 어찌 돈과 비교할 수 있으랴.
누구나 비슷한 경험을 한 두개쯤은 갖고 있을 것이다. 따뜻한 말 한마디는 그만큼 엄청난 힘을 갖고 있다. 그것을 그리 잘 알면서도 우리는 왜 그렇게도 따뜻한 칭찬에 인색한가?! 당장 어린 내 아들녀석만 해도 그렇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나면, 맛있었다는 당연한 칭찬한마디를 못한다. 왜그런가 물어보니 민망하고 무안하단다. 녀석에게는 그게 용기가 필요한 '어려운 일'이었던 것이다.
그렇다! 따뜻한 말한마디하는 거, 쉽지 않다. 그래서 칭찬도 분명한 기부라는 것이다. 기부는 받는 이의 플러스를 위해, 주는 이가 마이너스를 기꺼이 감수하는 구조랬다. 상대방의 마음에 와닿는 칭찬 한마디 제대로 하려면,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민망할 것 같은 느낌을 이겨내야하고, 굳이 안해도 될 칭찬을 하다가 오히려 잘못될수 있는 리스크도 감내해야한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확실히 기부가 맞지 않은가?
이제부터는 따뜻한 말한마디, 위로, 칭찬, 격려 이 모든 것들을 '기부'라고 생각하고 한번 해보자. 칭찬을 위한 칭찬, 아무런 의미도 없는 칭찬을 하라는 말이 아니다. 정말 그럴만한 경험을 했을 때만 하자는 것이다.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면, 맛있었다고 엄지척을 날려주자. 괜찮은 강연을 들었다면 수고한 감사에게, 정말 괜찮은 강의였다고 고맙다고 박수를 보내주자. 아무리 내가 돈을 지불한 소비자라도, 기대 이상을 경험했다면 꼭 감사를 표현해보자. 그렇게 당신은 매일매일 찐기부를 할 수 있다. 돈은 없어도 그 정도 따뜻함은 충분히 있지 않은가?
오늘하루 우리는 얼마나 주위에 따뜻했던가? 그게 오늘 우리가 기부한 액수라고 생각하자. 돈은 없어도, 사람을 살릴 수는 있다. 2021년에는 우리 모두 기부왕이 한번 되어보자!